"민준 씨 와이프, 참 착하시네요."
남편 골프 모임에 손님으로 온 여자가 그렇게 말했다. 남편을 친한 동생이라고 부르며 살갑게 챙겨주는 모습을 보며 내 얼굴은 순간 달아올랐다. 하지만 웃으며 미소를 지어 보이고 말았다. 다른 일행들도 있었고, 더 이어갈 대화도 마땅치 않았다.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착하다는 말이 귓가에 맴돌며 자꾸만 내 속을 거슬렸다.
남편는 골프 모임이 많다. 82년생만 모인 82모임,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든 골좋다 모임, 제주 골프인들이 모인 제골조 모임, 또래 남자 다섯이 만든 친목 모임, 최근 새로 생긴 오비 모임까지. 한 달에도 몇 번씩 정기 모임을 나가고, 그 외의 벙개모임도 자주 있다.
제주에 우리 가족이 내려와 정착한 지 벌써 10년.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시작한 삶이었다. 남편은 살아남기 위해 골프를 택했고, 사람들을 만나며 인맥을 넓혀갔다. 자영업의 무게와 스트레스를 골프에서 풀기도 하고, 모임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또래들과 어울리며 버텨내고 있었다.
모임은 여자도 남자도 많고,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저녁 식사 후에는 노래주점, 2차, 3차, 마지막 해장국까지 이어졌다. 낮엔 골프, 밤엔 술. 가게에서 회식을 하면 꼭 술자리가 끝까지 이어졌다. 남편은 다 영업이다, 내 몸 불사른다며 억지로 술을 마신다고 했지만, 나는 그 말이 쉽게 와닿지 않았다.
착하다는 말을 듣고 괜스레 마음이 쓰라린 건, 아마도 나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져서였을 것이다. 남편은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고, 모임 좋아하는 사람으로 밖에서 활발히 움직인다. 반면 나는 묵묵히 가게를 지키며 내조만 하는 모습이, 마치 누군가에게는 단순히 착하기만 한 여자로 비춰진 건 아닐까.
예전 회사다니던 워킹맘 시절이 떠올랐다. 남편이 자영업을 한다며 당당하게 말하던 시절, 나는 조금 더 여유롭고 우아한 일상 속에 있었다. 그때의 내가 잠시 그리워졌다. 코로나 막바지 무렵, 남편은 혼자 가게를 운영하기 벅차다며 나에게 함께하자고 했다. 이번이 마지막 부탁이다라는 말에 결국 나는 회사 일을 내려놓고 남편과 가게를 꾸려가기 시작했다. 사실 그 전에도 수차례 제안이 있었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식당일이 싫었고, 남편 일이니까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함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의 삶, 아이들의 미래, 가게 매출은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남편은 밖에서 사람을 만나고, 나는 안에서 자리를 지킨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같은 삶을 지탱해가는 것이다.
오늘도 남편은 영업을 한다며 모임으로 향하고, 나는 식당 안에서 묵묵히 하루를 이어간다. 누군가의 눈에는 그저 착하다고만 보일지 몰라도, 나는 내 몫의 삶을 살아 내는 사람이다. 타인의 평가에 머무르지 않고, 내 자리에서 꿋꿋이 서 있는 한 사람으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