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닭갈비 추억처럼

by 봄날의춘천저널

내 인생 첫 가족외식 메뉴는 닭갈비였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빠 회사에서 나온 사진관 쿠폰으로 다 같이 가족사진을 찍었다. 그때 중3, 중1, 초등학교 5학년 여동생들과 하나뿐인 남동생, 그리고 아빠, 엄마 총 7명 모두 함께한 외출도 처음이었다. 아빠는 남색 양복을 입고, 엄마는 블라우스, 나와 중학교 여동생들은 나란히 교복을 입었다. 아직도 눈에 선한 가족사진이다. 춘천 시내에서 가족사진을 찍고 명동 닭갈비 골목에서 닭갈비를 먹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대가족 빠듯한 살림에 외식은 할 수가 없었다. 아빠, 엄마 동생들과 둘러앉아 다 같이 먹던 닭갈비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내가 어릴 적 1980년대 정부는 아들딸 구별하지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고 할 때가 있었다. 손주를 바라시던 시부모님 압박으로 아들을 낳아야만 했던 부모님은 결국 다섯째에 아들을 낳았다. 초등학교 시절 가족 수 조사를 손을 들어 했을 때 맨 마지막으로 남은 건 나밖에 없었다. 창피하거나 부끄럽다는 마음 대신 대식구 중에서 오 남매 우리 가족이 남들이 뭐라 생각하든 소중했다.

그래서일까 요즘 식당에서 오 남매 혹은 대가족이 함께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면 괜히 마음 한쪽이 뭉클해진다. 누구에게나 처음의 외식, 처음의 가족사진이 있고, 사랑과 희생이 있는 부모님의 시간이 있다는 걸 안다. 일주일 중에서 일요일 저녁이 제일 손님이 많다. 가족과 나들이 후에 집 근처 식당에서 외식하고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동아이를 키우는 가정도 많지만, 아이가 세 명 이상 되는 가정도 많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저조하다고 하지만 가게 주변에는 다자녀가 있는 집을 자주 본다. 부모님을 포함하면 아이들 두 명 이상이 와서 식사하는 때도 많다. 가게에서 가장 큰 테이블로 안내한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때론 꾸지람을 듣는 아이들도 있다. 각자 태블릿을 보면서 식사하거나, 집이 가까우니 아이들 먼저 챙겨 먹여 집에 먼저 들여보내는 예도 있다. 가게에서 일하면서 식구가 많이 온 가족을 보면 어릴 적 내가 보이고 부모님이 보였다.


부모님과 함께한 추억 하나하나를 꺼내 보고 들여다보면 꿈 많았던 내가 보였고, 어려운 살림에 큰딸 학원비를 꼬박꼬박 주시던 부모님의 짠하고 애달픈 마음을 알게 되었다. 오 남매 중에서 첫째여서 형제 중에서 잘 되길 바라셨고, 동생들 본보기가 되라고 뒷바라지 해주셨다. 어릴 적 소중한 추억을 꺼내 보며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힘으로 버텨본다. 언젠가는 내 아이들도 나와 같은 기억을 품고 살아가며 힘들 때 꺼내 볼 수 있는 추억이 있었으면 좋겠다. 오롯이 우리 가족이 따뜻하고 배불렀던 그 날의 닭갈비 추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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