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1일 있었던 산불도 어느새 2달을 훌쩍 넘겼습니다.
3월 23일부터 산청, 의성 현장에 가 시작한 지원이 지난 5월 26일 청송 여러 경로당에서 심리사회지원 프로그램까지 진행하고, 일단은 쉼표를 찍게 되었습니다.
참 넓은 지역에 오랫동안 이어진 산불이었습니다. 물론 지나간 2달(3월 중순에서 5월 중순까지)이라 하니 ‘어느새’라며 과거형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현장에서는 재난 이후를 ‘여전히’ 살아내야 하는 엄연한 현재 진행형의 상황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소진의 증상도 겪게 되고 여러모로 정신없이 보낸 2달의 시간을 의미화를 위해 기억에 남는 몇몇 키워드로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과 산불 이후의 상흔, 그리고 그 영향 가득한 삶을 기억하면 좋겠다 싶은 마음에 기록을 남겨봅니다.
2016년 경주 지진 이후 국내외 무수한 재난 현장을 지속적으로 다니면서 늘 듣게 되는 “평생 처음...”은 이곳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 기억은 참으로 강렬하게 우리의 몸과 마음에 계속 남게 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재난 상황에서 취약한 상황에 놓일 수 있는 이들인 재난 약자(노인, 아동, 이주민 등)에게는 많은 경우 신체적, 인지적, 언어적 제한 등과 같이 가중되는 어려움으로 인해 적절한 지원의 사각지대에 있을 수 있기에 더욱 특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산불 지역의 한 대피소에 집단으로 있었던 아동, 청소년들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체육관과 같은 일반 대피소에서는 청소년기에 더욱 민감할 수 있는 사적인 공간(물리적, 심리적)의 보장이 더욱 어려운 상황이고, 이들의 필요에 기반하면서도 보호의 측면에서 아동 청소년에게 보다 적합한 환경이 되기 위해 고려해야 할 지점이 많아보였습니다. 실제로 다음과 같은 어려움을 듣게 되었습니다.
"...주변에서는 소리가 계속(쿵쾅쿵쾅) 들리지, 밤에는 몇몇 어른들의 우는 소리가 들리지, 중간중간 외부에서 텐트를 그냥 열어보기도 하니 깜짝 놀라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해요. 그리고 아침에는 새벽 6시부터 대피소에서 불을 키는 상황이니... 그리고 원하는 간식이 있었으면 좋았겠다 하더라고요."
이후 이들을 위한 심리교육 차원에서의 프로그램과 이와 연결된 맞춤형 마음돌봄키트를 준비하며 참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였는데, 이를 어린이날에 전달하며 찐하게, 함박웃음으로 감사의 마음을 받았던 기억은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많은 수의 피해자가 발생하고, 시시각각으로 그 상황이 변하는 재난 현장에서 개별적인 접근과 지원이 정말 쉬운 일은 아니지만 결국 시간과 마음이 기본일 터이고, 모든 것은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구나를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이번 현장에서 개인적으로는 참 의미있는 발견이지만 여전히 아쉬웠던 지점은 바로 또다른 재난 약자인 이주민에 대한 고려였습니다. 그간의 기억으로는 거의 처음으로 이주민들의 대피현황을 상황판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국적이나 언어가 확인되지 못한 상황에서 과연 어떻게 필요한 정보들을 전달할 수 있으며, 기본적인 서비스에 접근하는 것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습니다. 지역 내 이들에 대한 이해와 전담기관의 부재(가족센터의 경우 그 지원 대상자가 주로 결혼이주여성이기에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식별과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음), 또한 미등록이주민의 경우 재난 이후 보편적이고 포괄적 지원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체류 자격으로 인해 아마도 접근, 파악 자체가 어려운 상황도 충분히 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지금까지 비가시적이었던 이들이 존재함을 공식적으로 보게 된 반면, 아쉬움은 여전히 컸습니다.
마지막으로 돌봄을 제공하는 이들이 지쳐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역시나 마음에 남고 또 남습니다. 그리고 감사한 마음을 전해봅니다.
올초 있었던 제주항공여객기 참사를 포함 여러 재난 현장을 돌아보면, 당연하겠지만 같은 순간이나 현상을 경험하더라도 우리 모두가 다 같은 것을 보고 있지는 못하구나를 자주 느끼게 됩니다. 아동, 청소년, 이주민과 같은 재난 약자들처럼 우리가 보지 못하는 존재들을 보다 가시화하며, 이들의 목소리와 필요가 더 잘 전달될 수 있도록 고민과 실천을 계속 이어나가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