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생활지원과 결합된 심리사회적 지원

난민을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

by 디나모

최근 한 아프리카의 C국에서 온 한 분을 만나면서 예전에 그분과 함께 한 그룹과 멤버들을 떠올릴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그룹은 바로 국제난민지원단체인 피난처와 협력하여 진행한 아프리카 프랑스어권 싱글맘들의 자조그룹인 Brave women(프랑스어로는 les femmes courageuses)였습니다. 코로나 발생하기 전 3년 정도 운영을 하였는데, 코로나 이후 만남이나, 재원의 어려움으로 흐지부지된 상황이네요. 참 어렵게 3년이란 시간 동안 함께 만들어 왔는데 코로나 상황으로 만들어 간 시간과 노력에 비하면 다소 너무 쉽게 사라지는 상황이 참 안타까운 듯합니다. 그럼에도 분명 여전히 남아 지속되는 무언가, 예를 들면 그룹원들은 나름 소통의 방에서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봅니다.




천천히 최초 모임을 떠올려봅니다. 최초에는 1, 2분을 위한 개별 또는 그룹 심리 세션으로 시작했던 기억이 납니다. 한국에서 영어 이외의 언어로는, 물론 영어 역시 비용적 측면에서 접근이 쉽지는 않지만 적어도 언어적인 희소성은 덜하기에, 심리상담을 받는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하기에 제가 남성임에도 불구하고, 싱글맘 모임을 시작하게 된 일일 테지요. 그러기에 어느 정도 관계들이 생기면서, 다양한 주제에 대해 거리낌 없이 이야기했던 기억이 나네요. “므슈 오(Mr. OH), 므슈 오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어?”라며 놀람 반 놀림 반으로 이야기하면서 말이죠. � 초반에 저에게, 그리고 그룹의 방향에 있어서도 참 많은 변화를 주었던 말이 떠오릅니다. 이후 그룹의 리더가 되어 주도적으로 참여를 한 B 씨에게 세션에서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본 일이 있는데,


“재밌는 게임을 하거나 이야기를 하면 좋겠어. 현실은 너무 힘든 상황인데 계속 그 이야기만 하고 싶지는 않아.”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인데 당시 저에게는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이건 아마도 저의 무지함과 프랑스에서 제가 경험한 개인적 배경 차원으로, 개인의 역사에 보다 초점을 맞추는 심리학적 접근방식과 일반 상담 세팅에 아직은 익숙했기 때문이라고 여겨졌습니다.1) 아마도 여러 계기 중, 난민들을 위한 ‘심리’ 지원에 있어서, 이들을 다양한 측면으로 바라보고2) 강점에 보다 초점을 맞추며 다양한 영역을 통합한 ‘심리사회적’ 관점으로 전환되는 데 있어 개인적으로 중요한 일화였다고 여겨집니다.


워낙 프랑스어로 된 여성 그룹을 찾기가 어렵기에, 점차 한두 분씩 늘어나면서 어느새 10명 정도에 이르기도 했고, 중요한 이슈 중 하나인 경제활동과도 연계되어 미약하지만 지속되는 와중에 의미 있는 작업을 공동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그룹원들의 공통 이슈인 임신, 출산, 양육과 관련되어 당사자분들의 지혜를 모은 소책자를 만들어보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재난 시 정신건강 및 심리사회적 지원에 관한 개입 피라미드’에서의3) 2번째 층위인 ‘지역사회 및 가족 지원’에 해당될 수 있는 활동의 하나로서, 소책자의 서문에서 쓴 것처럼 삶의 여러 중요한 사건들의 하나일 수 있는 출산을 문화적 레퍼런스가 전무한 곳에서 경험한다는 것은 엄청난 심리적 어려움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에, 심리사회적 보호 요인을 강화하기 위해 기존에 지역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자원에 연결하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출산 후 미역국을 주더라라는 이야기는 참 무딘 문화적 감수성이 아쉽기도 한 동시에,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소책자를 만들어 내는 과정은 길고 고된 작업이었지만, 그 많은 녹취를 풀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아마도 피난처에서 함께 해주었던 간사님들과 인턴분들의 조정과 도움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세션들이 진행되는 와중에 그룹원 간에 끈끈해지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나 마지막 세션에서 – 제가 당시 방글라데시 로힝야 캠프 아동의 심리사회적 지원 사업의 PM으로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진행되고, 너무 궁금한 주제라 - ‘아버지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요?’ -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돌아온 이후에 녹취를 하였는데, 당사자분들 스스로, B 씨가 주재하며 진행한 것은 그간의 변화를 잘 보여주었던 에피소드로 여겨집니다.




그룹의 마지막 모임 이후, 그 지속 기간만큼의 시간이 지난 지금 다시 돌아보면, 국내에 거주하는 난민들의 체류적인 취약성, 그리고 이와 연결되어 늘 우선적인 필요로 언급되는 경제 활동에 충분하게 해답이 주어지지 못한 점, 언어문화적 공유에도 불구하고 물리적인 거리로 인해 모이는 데 한계가 있는 국내의 많은 지역에서 도시 난민이라는 세팅의 한계들이 떠오릅니다. 그럼에도 생활지원(livelihood) 섹터와 연결되어, ‘심리사회적 웰빙을 보호 또는 촉진, 심리적 고통의 예방 또는 감소’라는 MHPSS의 목적과 활동을 사업에 반영하여 진행한 의미 있는 국내 사례로 여겨집니다. 또한 스태프들이 매년 펀드를 찾으며 그룹에 활력과 생명을 불어넣기 위한 노력에도 – 또 다른 노력의 일환으로 국내 싱글맘 단체와의 만남도 떠오르네요 - 궁극적으로 그룹이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당사자들이 그룹 내에서 각자 자원과 임파워먼트의 씨앗을 찾았기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이렇듯 서로에게 힘이 되는 그룹이, 계속 지속되지 못한 점이 다시금 아쉬워지지만, 그룹원 모두에게 소중한 경험과 여전히 자원으로 존재할 것으로 희망하며 믿습니다. 마치 얼마 전 우연히 만난 초등학교 저학년의 똘망똘망한 B 씨의 딸처럼 말이죠.


*** 사진의 책은 난민들의 피난처와 함께 제가 아프리카 프랑스어권 싱글맘 그룹을 3여 년 운영하며 임신, 출산, 양육에 대해 당사자분들의 지혜를 담은 소책자(용감한 여성들의 지혜)의 표지입니다. ***


1) 다층적 지원 개입 피라미드에서 실제로 가장 상단의 전문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인구는 – 대규모 비상사태에서 수적으로는 많은 수가 될 수 있겠지만 - 전체 피해 인구 대비 적은 비율의 사람들만이 필요로 한다. (IASC, 2016)

2) 우리의 원조 제도는 오로지 부정적인 효과에만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모두는 피해자들에게 어떤 형태의 지원이 제공되기 위해서는 그들이 어떤 특정한 형태의 취약성에 의해 식별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Renos Papadopoulos, 2007)

3) 재난 시 정신건강 및 심리사회적 지원에 관한 개입 피라미드 (IASC, 2007)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재난 시 변화는 어디에서 비롯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