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익숙함으로부터 거리두기

by 디나모

요즘 저는 바뀐 이름을 지인들에게 천천히 알리는 동시에 공식화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지만, 이름을 바꾼다는 것, 그 마음을 먹는다는 것만으로도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불려진 익숙함으로도 그렇고, 부모님이 주신 이름이니 그 안에 담긴 의미(또는 욕망)를 끊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겠죠.


부모님을 운운하니 뭔가 거창 해지는 면이 있는 듯 하지만, 분명 이름이란 것이 가진 상징성이 작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소개할 때 아마도 가장 먼저 시작하고, 떠올리게 되는 것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더군다나 한국에서는 많은 경우 한자로도 쓸 수가 있게 되어 (부모님이 이름처럼 되기를 기대하시는) 의미까지 담을 수도 있으니 이름이 개인에게 가지는 무게감이 더욱 크게 느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모님들은 당연히 이름을 짓는데 많은 고민을 할 겁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무언가를 전하려는 마음이 자연스레 생기게 되는 것 같아요. 프랑스에서 있었을 때 기억이 나는데, 우리네처럼 의미를 담기보다는 개인적인 취향으로 짓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아마도 떠올리는 쟝이나 프랑스와 같은 전통적인 프랑스식 이름과는 다른 케빈과 같은 영어식 이름을 듣게 되기도 하고 또는 뭔가 동경하는 문화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을 짓는 것도 접하게 됩니다. 프랑스인과 다른 국적 출신의 이주민이 커플인 경우, 예를 들어 프랑스-한국 커플이라면 첫 번째 이름은 거주하는 해당 국가, 프랑스 이름식으로 짓더라도 – 또는 프랑스식과 한국식이 묘하게 퓨전 된 방식이거나 - 신분증에서만 보게 되는 두 번째 이름 또는 세 번째 이름에 자연스레 한국적인 색채가 드러나는 이름을 짓곤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상담 중에 한 내담자의 경우에는 임신 기간 동안 아주 가까운 친지가 고인이 되어 이를 기억하는 의미로(또는 문화적으로) 그 이름을 아이에게 주었던 경우도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이름이란 것이 ‘부모’에 의해 부여된 다양한 의미와 욕망, 그리고 문화적 맥락 속에 위치하며 기본적인 ‘계승’의 역할을 하다 보니, 참 이름을 바꾼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언젠가부터 어떤 어색함,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이다라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동시에 제 스스로가 의미적으로 보다 바라는 이름을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있었고, 올해는 정리와 변화라는 내면의 바람을 더 감각하게 되고, 듣고 싶은 마음에 – 누가 물어보면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대신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하니 바꿀 수 있는 것을 찾던 중에 이름이라도 바꿔본다라고 우스겟 소리로 답을 하지만 - 스스로 자신이 어떠한 옷을 입을지 결심을 할 필요를 더욱 느끼게 되었습니다. 물론 부모님에게는 전화를 드리는 ‘의식적 행위’로나마 ‘무의식적 허락’을 구하는 절차를 거치게 되기는 하더라고요.


전환의 과정에서 당연하겠지만, 아직 두 이름이 공존하고 있는 과정입니다. 여전히 많은 곳에서, 또 많은 분들이, 가까운 분들이라면 더욱 이전 이름으로 저를 기억하고 불러줍니다. 물론 그분들 중 또 많은 분들이 새로운 이름으로 힘을 실어 불러주시려고도 합니다.


익숙함이란 이름으로 지금까지 내가 걸치고 있던, 외부에서 주어졌을 수 있는 욕망의 라벨이 어디에서 왔고, 내가 원하는 것인지를 가끔씩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리적 거리,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심리적 거리와 독립을 만들어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사고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니 제가 해외에서 만났던 이주민분들 또는 한국으로 떠나온 국내 거주 프랑스어권 내담자들 몇몇을 떠올리게 됩니다. 물론 그 동인이 항상 분리되거나 개별화되는 방향만은 아닌 듯합니다. 오히려 더욱 그 욕망의 대리 실현에 충실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동일한 결과를 가지고 오지 않을까 싶기는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자세히 이야기를 쓸 기회가 있겠죠. 여하튼 거창하게 이름까지 바꿀 필요는 없겠지만, 자신의 이름이 달린 책자의 목록에서 몇몇 챕터는 스스로 선택한 옷을 입고 써내려 나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 모든 것이 한 권의 책으로 엮어질 테지만 말이지요.


KakaoTalk_20220220_144108216.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Dalida, 노스탤지어의 한 장을 떠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