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올해 시작한 것 중 하나는 요가입니다. 시작하면 무엇이든 비교적 꾸준하게 지속하는 스타일이라 어느새 2개월이 되어가고 있고, 자연스레 하나 둘 몸에 대한 감각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특히나 참 내가 나의 몸에 대해 많이 모르고, 무뎠구나를 깨닫게 되며 괜히 나와 가장 가까이 지내온 나 자신의 몸에 대해 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나의 몸에 대해 자주 깨닫게 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발로 밀어내는 힘이 약하다는 점입니다. 이는 최근에 사선으로 매달려있는 줄에 몸을 기대어 벽을 밀어내는 동작들을 하면서 명확해졌는데, 양발로 잘 밀어내지 못하다 보니 허벅지, 괄약근, 복부 쪽에 힘이 전달되지 않아 벽을 밀어내면서 코어의 힘으로 지탱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계속 반복되었습니다. 양발로 벽을 밀면서 공중에서 몸을 세운 자세를 유지하려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허리로 버티기가 힘들기 시작했죠. 그러면서 나의 양발이 밀어내는 힘이 부족함을 절실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평상시에는 이러한 사실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길을 걷는 데 특별하게 무리가 없는 한 내 양발이 땅을 잘 밀어내고 있는지 좀처럼 신경을 쓰게 되지는 않을 테니까요. 단지 중력에 몸을 맡긴 채로 이동만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만보를 걷더라도 사실 걷는 것이 아닌 붕 떠다녔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몸은 점차로 흐물흐물 중력의 방향으로 향하며 바뀌어가겠죠.
이러한 몸과 중력과의 관계를 떠올리는 중에, 저의 자유 연상은 계속 팔랑팔랑 퍼져나가 아동과 외부의 영향과의 상관관계로 이어집니다. 사실 저에게는 프랑스에서 보낸 시기가 마치 또 한 번의 출생에서부터의 성장 과정의 재경험을 떠올리게 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실제로 말을 할 수 없는 시기(‘말을 할 수 없는’이라는 의미의 라틴어인 infans처럼 말이죠)나 ‘Non(아니요)’의 시기 등 다양한 발달 과정을 실제적이면서 동시에 상징적으로 다시 거친 듯하고, 그 와중에 특히나 ‘아니요’의 시기는 개인적으로 참 인상 깊게 남아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프랑스에서 제가 경험한 중요한 가치라고 여겨지는 것이 바로 ‘아니요’나 ‘하지만(Mais)’과 같은 한계 짓기의 단어들을 통해 개인을 개별적 주체로서 구성하게 해주는 양육/교육환경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Mais를 달고 다니는 친구와 대화할 때, 솔직하게는 짜증이나 불만이 올라올 때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돌아보면 그러한 ‘구성적인 한계’의 경험은 긍정적이고 즐거운 경험으로 남아있습니다.
개인적 자유 연상의 여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다시 몸과 중력의 관계로 돌아오자면, 중력과 같은 외부의 힘과 영향에 대해 가끔씩은 감각하며, 두발을 단단히 딛고 허리와 어깨도 활짝 피면서 저항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보다 나 자신의 존재를 느끼고, 알아가며, 건강하게 형성할 수 있기 위해 말이지요.
마무리로서 요가 시작 전 따뜻한 햇살, 음양이 두드러진 사진 한 장 더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