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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by 디나모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문득 불안이 몰려오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난주 어느 날 문득 갑작스러운 불안에 휩싸였습니다. 특히나 잠자기 전, 그러한 불안이 엄습하여 한동안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무언가 현재 나의 상황에 대하여 인지되고 감각된 불안정으로부터 시작한 불씨는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라는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활활 타올랐습니다. 다행스럽게 피곤이라는 상태가 어느 정도 진화를 해준 덕분에 어느 순간 스르르 잠에 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잔불들은 좀처럼 꺼지지 않은 채 다음날에도 여전히 마음과 머리 한편에, 요가를 위한 여정에도 여전히 남아있었습니다. 평상시처럼 천천히 자전거를 타고 가다 보니 문득 예전 생각이 나며, 선물로 받았던 책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예전 프랑스의 한 아동 청소년 의학심리센터(CMPEA, Centre Medico–Psychologique Enfant et Adolescent)에서 - 참고로 프랑스에서는 사설 심리센터는 제가 알기로는 전무하고, 물론 개인 psychologist 또는 여럿이 모여서 자신(들)의 공간에서 상담, 치료하는 경우는 있지만 대부분이 지역사회로 나와 있는 공공의 CMP에서 1차적으로 상담 및 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 인턴을 하던 당시 함께 한 동료분이 선물로 준 책이었는데, 그것은 바로 어빈 얄롬의 실존주의 치료(Therapie existentielle)였습니다. 실존이란 단어가 습관적으로 익숙하기는 했지만, 정신분석학적 학풍이 대세인 프랑스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있는 상황에서 심리치료와 관련되어 듣게 되는 실존은 아무래도 생소한 개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첫 소개 챕터에서부터 심플하게 설명되어 있는 인간의 존재론적 궁극적 이슈들(죽음, 자유, 삶의 의미, 근본적인 고독), 개인이 이러한 이슈들을 마주하는 순간순간 겪게 되는 갈등과 그로 인한 깊은 불안의 흐름이라는 간단한 도식적 설명은 참 직관적이고 본능적인 명쾌함을 주었습니다. 그 이후, 상호문화 심리학과 함께 저에게는 불안과 심리적 고통을 가지고 오는 이들에 대해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렌즈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저 역시 지난밤처럼 문득문득 찾아오는 불안감은 참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자유 연상은 계속 이어져서 예전 불교와 관련된 한 강의에서 일상적으로 우울과 불안을 느끼게 되는 메커니즘에 대한 설명도 기억이 납니다. 우리의 마음이 과거로 향하게 되면 우울로, 미래로 향하게 되면 불안으로 이어진다는, 대략 이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나간 시간들을 떠올리며 – 우리의 일상에서 종종 하거나 듣게 되는 ‘라떼’의 이면에는 이러한 정서가 스며들어 있는 것은 아닌지 - 자연스레 느껴지곤 하는 상실감, 요즘처럼 경쟁적 삶이 만연한 와중에 – 많은 정보들과 첨단의 기술들을 사용함에도 역설적으로 더욱더 불확실성을 가중시키는 것은 아닌지 – 투사하게 되는 자신의 미래 삶에서의 불확실성, 특히나 생존과 존재의 소멸과 연결되어 있는 존재론적 불확실성...


자전거를 타고 가며, 예전 기억과 함께 나름 머리로 현재의 불안정한 상태를 인지하고 지금 여기에 머물며 평온함을 찾으려 하지만, 이렇게 과거와 미래를 끊임없이 오가는 생각과 마음의 흐름은 모든 것을 비우며 집중하고 싶은 이 요가 시간에도 끈질기게 저의 마음 곳곳에 달라붙어 남아있습니다.


그래도 다행이 몸의 근육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다리를 둘러싼 근육들의 당겨짐과 수축, 굽어진 척추를, 흉곽을 펴내려고 집중하는 중에 어느새 산란했던 정신이 조금씩 맑아지고 개운한 느낌이 듭니다. 물론 제가 놓인 외부의 상황이 특별히 바뀐 것은 없지만, 다시 찾게 된 평온함이 다행스럽다 싶습니다. 비록 오래 지속되지 않을 수 있더라도. 그리고 자주 잊곤 하는데, 제 안의 자리 잡고 있는 근본적인 긍정성에 대해서도 깊은 감사함이 드네요.

많은 종교에서 공통적으로 듣게 되는, 한 바람의 문장으로 마무리를 해봅니다.

Que la paix soit avec vous!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20220313 실존주의 심리학 by 어빈 얄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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