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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번의 봄

by 디나모

지난주를 떠올려보니 한결 풀리나 하던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졌습니다. 사실 오늘 오전 역시 따뜻한 햇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쌀쌀함을 그 안에 담고 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중에 겪게 되는 자연 현상인 이 반짝 추위에, 혹시나 아쉬움에 쌀쌀하게 샘을 내는 것이라며 사람의 마음을 잔뜩 담아보게 되는 것 역시 모든 현상에서 우리의 자연스러운 의미 찾기의 본성은 아닐까 싶습니다.


겨울에서 이렇게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특히나 파릇파릇 싱그러운 푸른 새잎들이 나타나기 시작할 때에는 언제나 그렇듯 경의로움을 감출 수 없습니다. 계절의 순환에 따라 당연한 자연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그 내재된 생의 에너지와 혹독한 추위를 내면으로 버티고 단단해진 후 그 응축이 터지면서 나오는 새싹들에 좀처럼 감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예전에 나눴던 한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프랑스에서 인턴을 하였던 한 노인요양기관(EHPAD : établissement d’hébergement pour les personnes âgées dépendantes)에서의 경험이었는데, 정신과적 이슈도 가지신 분들도 적지 않은 다소 복합적이고, 특수한 요양기관이었습니다. 다양한 분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었고, 몇몇 분들은 이주배경으로 인해 특히나 더욱 마음이 가기도 했습니다. 자연스러운 모습일 수도 있겠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특히나 노년에 들어서면서 자신의 뿌리인, 근본적인 정서와 연결되어 있는 문화적인 요인들이 더욱더 발현이 되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됩니다. 아주 싶게 떠올리기에는 어렸을 때의 장소나 음식, 음악 등 추억들을 이야기하는 것을 떠올릴 수 있겠죠. 한분은 베트남에서 오신 분이었는데, 학습한 언어였던 프랑스어가 점차로 잊혀지고, 바래지는 대신, 상대적으로 모국어는 더 오래 간직하셨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이 기관에서는 아마도 제가 아시아 사람이기에 일부러 만나게끔 상담 일정을 맞춰주시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지만 아쉽게도 서로 간 언어적 소통은 잘 이루어지지 않았었지요. 그럼에도 눈빛으로 이루어지는 무언의 소통이 오간 개인적 느낌은, 누워계시는 모습을 바라보며, 또 남성분이었기에 저 역시 그와 같은 모습 안에서 이주민으로서 저의 일부와의 동일시로 인한 것은 아니었을까 여겨집니다.


역시 이야기의 흐름을 자유 연상으로 따라가다 보면 이렇게 끝을 모르게 뻗어나가게 되는 것 같은데요, 계절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서 하루는 슈퍼바이저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지요. 그때도 이렇게 봄으로 넘어가는 시점이었는데요, 죽음과 상실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누던 중에, 통계적으로 조사된 바는 없지만 기관에서 지내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사망률이 가장 높은 때가 이맘때라는 것이었습니다,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 바뀌는 시점에 말이죠. 그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서 이제야 따뜻한 봄날이 시작되었는데 숨을 놓아버린다는 것이, 처음에는 얼핏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외부로부터의 혹독함을 이겨내고자, 어떻게든 살아내고자 하는 생의 본능이 발휘가 된 것은 아닐까, 마치 간절하게 기다리던 소식을 꼭 듣기 위해 삶의 마지막을 붙잡고 있다, 소식을 듣고 난 직후 놓아버리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한편으로 깊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순환의 일부이라지만, 개인적으로 직면해야 하는 죽음은 두려울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터져 나오는 새싹 역시 그 안에 소멸의 인자를 담고 있고, 소멸을 통해 또 다른 새싹의 밑거름이 되는 더 큰 차원의 순환을 떠올려봅니다. 기꺼이 감당할 수밖에 없는 생의 순환을 받아들이게 되는 또 한 번의 봄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ps. 부러진 가지 옆으로 새싹이 뻗어 납니다.

20220327 죽음과 새싹.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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