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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름 Nov 30. 2021

두더지가 겨울 문을 두드리면

  폴란드에 겨울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코끝을 찡하게 얼려버리는 온도, 바람에 섞여있는 희미한 장작 냄새, 소금 흩뿌리듯 눈 날리다가 다시 비가 되는 날씨에서도 느낄 수 있다. 온도와 냄새가 아니더라도 우리 집엔 두더지가 먼저 와서 겨울을 알린다. 우리 집 뒷집에는 닭들을 여러 마리 키우고 있어 아마도 그 집 계란을 훔치기 위해 가는 길에 들리는 모양이다. 

두더지들이 지나간 흔적

흙을 뒤엎고 나타나는 바람에 잘 키워둔 잔디를 망쳐버리는 두더지를 쫓기 위해 집들마다 나름의 방법들을 쓴다. 우리 집은 버스에서 내리기 위해 누르는 하차벨과 비슷한 소리가 연이어 이어지는 작은 기계를 잔디밭 곳곳에 배치해뒀다. 이 기계는 나름 태양광을 흡수해서 별도의 전기도 필요하지 않다. 이 벨소리를 두더지가 싫어한다는데 두더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 자가발전식 기계 옆을 뚫고 나온다. 이런 기계 따윈 소용이 없다는 듯이.  이 작은 과학도 두더지의 생명력을 이기진 못했다. 옆집도 우리와 같은 벨이 울리는 기계들을 설치했다가 지난 몇 년간의 경험으로 이들이 무용지물임을 알아채고 다른 방법으로 이번 겨울을 맞이했다. 잔디에 잔잔한 방충망 그물을 설치한 것이다. 효과가 있는지 옆집 잔디는 뒤집어진데 없이 깔끔하다. 

두더지를 쫓는 작은 기계 

두더지가 뚫어놓은 구멍 크기만 봐도 애기 두더지인지 어른 두더지인지 알아챌 수 있다. 아직 얼굴을 마주친 적이 없지만 내 마음속에 두더지는 오락실 두더지 잡기 게임 속 작은 두더지여서, 그 두더지에게는 손이 없었으므로, 직접 보면 좋겠다 싶었던 적도 잠깐 있었다. 폴란드에 와서 그 생김새를 검색해보고 흉악하게 생긴 긴 손톱에 마주치지 말고 지내자 싶다. 

한편으로는 여름의 먹을 것들이 지천으로 널린 때에는 찾지 않다가 황량해지는 겨울에 굶주린 배를 움켜잡고 새끼들을 데리고 주택가로 기어들어오는 모습을 상상하면 짠해지기도 한다. 아마도 뒷집 닭들은 아직 부화하지도 못한 제 새끼들을 훔치는 두더지들을 번대들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나는 이 상황들이 그저 재밌다. 어릴 때부터 도시에서만 자라 동물들은 동물원에, 두더지는 오락실에만 있는 줄 알고 살았는데 겨울을 알려주는 두더지라니. 어차피 잔디는 겨울이 되면 더 자라지 못하고 그 빛을 잃어가는데 잔디 좀 망치는 게 뭔 대수일까. 평온하지 못한 잔디 위로 눈이 내려 곧 그 굴곡을 덮어주겠지. 내 마음에도 잔잔한 평온이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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