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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름 Dec 14. 2021

너와 나의 계절

폴란드의 계절과일

겨울이 다가오면 마트에서부터 겨울 낌새가 풍긴다. 봄과 여름에 풍성하고 많았던 과일들이 보이지 않는다. 겨울에는 그 가지 수가 줄어들어 선택권이 많지 않다. 봄, 여름에는 자두, 복숭아, 체리, 수박, 포도, 라즈베리, 딸기 등 다양한 과일이 넘쳐난다. 그 때는 과일을 장바구니에 담는 내 손길도 바빠진다. 가을을 지나 겨울로 접어들면 남미나 스페인에서 온 바나나, 망고, 귤 등만 남는다. 이런 과일들은 거의 계절을 타지 않는다. 폴란드 겨울은 유난히 길고 추워서 그런지 하우스에서 기른 과일은 보기 힘들다. 겨울이 되면 과일코너에서 손은 한없이 망설인다. 겨울에 따뜻한 이불속에서 먹는 귤은 별미이지만 자주 먹어 슬슬 질리고, 매일 아침으로 먹던 바나나도 이제 질려간다. 과일을 담으려던 손은 과일 대신 겨울 문턱에나 볼 수 있는 밤이나 한가득 안고 돌아온다. 

폴란드에서 가장 맛있는 과일을 꼽으라면 체리와 납작 복숭아이다. 납작 복숭아도 종류가 많지만 털이 없고 반들반들하면서 속살이 하얀 복숭아가 가장 맛있다. 체리는 유통기한이 유난히 짧다. 맛있는 순간도 잠깐, 냉장고에 넣어두면 점점 맛이 없어진다. 슬프게도 이 과일들은 제철이 있다. 납작 복숭아는 여름 내내, 체리는 초여름에 잠깐 나온다. 다시 맛보려면 다른 계절을 지나 제철인 계절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더 귀하고 더 맛있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가끔 사람들도 자기만의 계절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산다. 우리는 자주 초조하며, 다른 사람들이 자기만의 계절을 만났을 때를 부러워한다. 특히 타인의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 속에서 헤멜 때 타인들의 행복한 순간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 인생의 편집된 한 부분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보이는 대로 믿어버린다. 머릿속에서 그들의 인생을 행복한 일들로 가득한 인생으로 편집하고는 오랫동안 상영한다. 

나는 의식적으로 소셜미디어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타인의 삶을 너무도 쉽게 들여다볼 수 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계절이 있으며 다른 계절들을 돌아서 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체리와 납작 복숭아가 없다고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조용히 겨울이 지나 봄이 올 것을 기다리면서 지금 맛있는 것들을 즐기면 된다. 

나의 계절도 다른 계절을 돌아서 오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저 우울하지도 말고 슬퍼하지도 말며 조용히 기다릴 것이다. 다른 계절들을 최대한 즐기며 살아가다 보면 나의 계절도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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