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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온경아 Feb 19. 2024

원하는 것을 말하기

  아이들과 ‘라쿠카라차’라는 이름을 가진 보드게임을 했다. 그 날은 초등학교 돌봄교실 1학년들이 대상이었다.  라쿠카라차는(바퀴벌레라는 스페인어) 제목이 말하듯이 바퀴벌레 모양을 한 로봇이 들어 있다. 이 바퀴벌레는 5cm정도였고, 작은 건전지가 들어 있어서 스위치를 켜면 게임판 사이를 돌아다닌다. 생김새도 빠르기도 실제 바퀴벌레와 비슷했다. 귀퉁이에 머리를 박고 타다다닥 계속 벽을 치는 바퀴벌레의 모습에 아이들이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게임의 목표는 바퀴벌레를 자신의 함정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게임방법은 차례가 된 참가자는 주사위를 굴린다. 주사위에서 나온 식기도구(나이프, 포크, 숟가락)를 게임판에서 한 개 골라 90도 움직인다. 미로 모양이 바뀌고 바퀴벌레는 갈 수 있는 길을 찾아 돌아다닌다. 그러다가 어느 함정으로 쏙 들어가면 그 함정의 주인은 동그란 칩을 가져온다. 이 칩을 3개 모으면 승리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기대에 찬 얼굴로 바퀴벌레의 이동을 보았다. 자신의 차례가 되면  자신의 함정으로 들어오도록 주사위를 굴리고, 식기도구를 움직이고 바퀴벌레를 응원한다. 여기에서 갑은 바퀴벌레다.  아이들은 함정까지 직진으로 열어두고 바퀴벌레가 들어오기를 기다린다.  바퀴벌레는 아이들의 바람대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바퀴벌레는 누군가의 함정 속으로 빨려 들어올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함정 바로 앞에서 갑자기 방향을 틀어 왼쪽으로 또는 오른쪽으로 가버린다. 그렇게 다른 친구 함정으로 들어가 버리면 한 쪽은 기쁨의 함성이 다른 쪽은 실망하는 한탄이 섞어 나온다. 

  한껏 들뜬 아이들 틈에 온이의 표정은 시무룩하다. 그 표정이 마음에 걸려 가까이 갔더니 나를 보자마자 뚱한 표정으로 말을 한다. 

  “한 번도 함정으로 들어오지 않아요.”

  바퀴벌레가 자신의 함정으로 들어오지 않았나보다. 온이는 평소에도 게임에 질 것 같으면 부정적인 반응이 먼저 오던 아이다. 나는 어차피 질거에요. 나만 져요.라는 말들을 자주 하는 아이다. 온이 옆에 서서 게임판의 미로를 들여다보았다. 온이의 함정은 오는 길이 막혀 있었다. 자신의 함정으로 오는 길을 열려 있어야 바퀴벌레가 들어올 것 아닌가?   

  “온아. 네 함정으로 가는 길이 막혀 있잖아. 열려 있어야 들어가지”

  이런 내 말에 온이가 대뜸 말한다. 

  “열려 있어도 어차피 안 들어와요!”

  바퀴벌레가 들어오는 길을 막아두고 들어오지 않는다고 말하다니. 지금 당장은 들어오지 않더라도 항상 함정으로 가는 길을 만들어둬야 한다고 온이에게 말했다. 길을 만들어 줬지만 바퀴벌레는 온이의 함정을 그냥 지나쳤다. 두 번이나 지나쳐 빙 돌아다니다가 다른 친구 함정으로 들어간다. 온이의 표정은 더 울상이 되었다.

  이 바퀴벌레가 온이의 함정만 그냥 지나친 것은 아니다. 내가 지켜본 그 순가에도 다른 친구들 함정도 여러 번 그냥 지나쳤다. 온이는 그것은 보지 못하고 자기 것만 들어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차피라는 단어가 유난히 거슬린다. 체념한 온이의 모습이  안타까와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었다. 로봇바퀴벌레에게 온이 함정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으니 도와줄 방법은 없다.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바퀴벌레를 보면서 제발, 제발, 한번만 한번만, 이라고 염원을 담아 빌었다.  온이 마음만큼이나 낸 마음도 타들어갔다. 그냥 낮은 쪽으로 움직이는 공이나 구슬이었다면 살짝 기울여 온이의 함정에 들어가도록 도와줬을 것이다.

  “빨리, 빨리 네 함정 앞으로 간다.” 

  온이의 차례가 되자 온이에게 빨리 길을 만들라고 했다. 아이들은 각각 차례를 진행할 때마다 내 함정쪽은 열리고, 다른 친구쪽은 닫히도록 미로를 만들었다.  온이에게 기쁨을, 아니 오늘은 너의 그 부정적인 마음을 없애주겠다는 생각에 바퀴벌레를 바라보는 내 눈길이 간절했다. 바퀴벌레는 온이 옆에 앉아 있는 친구 함정으로 들어갈 듯 움직였다. 나도 그곳으로 들어가겠네 생각하고 있는데 그 함정 바로 앞에서 방향을 돌렸다. 

  “이렇게 지나갈 때도 많아요.”

  내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어서 그랬는지 아이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구나, 넌 이렇게 말하는구나 생각한 찰나에 

  “그것봐요 안들어오잖아요.!!!”

  절망적인 온이의 절망적인 작은 외침이 귀에 꽂혔다. 이번이 마지막 게임이었다. 중간에 게임하지 않겠다는 걸 내가 살살 달래 한번 더 하던 참이었다. 그 때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말이 툭 튀어 나왔다.

  “어떡해, 바퀴벌레가 온이 소원을 들어줬나봐!”

  온이가 두 눈이 똥그래져서 무슨 말이냐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네가 자꾸 안 들어올 거야, 안 들어올 거야라고 하니까, 바퀴벌레는 그게 온이가 바라는 것인줄 알았나봐. 그래서, 온이 소원 들어줘야지 하고 안 들어왔나봐.“

  말도 안 되는 말이지만, 온이는 눈만 깜빡였다. 이게 맞는 말인가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맞아, 나도 아까 계속 들어와라, 들어와라, 빌었더니 진짜 함정으로 들어왔어.”

   온이 옆에 앉은 친구가 내 말이 맞다는 듯 진지하게 말했다. 난 그 말에 잠깐 뜨악했지만, 그것봐라 하는 표정으로 온이를 봤다.

  “그렇지? 바퀴벌레가 친구의 소원을 들어줘서 함정에  들어갔다잖아.“

   온이는 혼란스럽지만 그런가?하는 표정이다. 기회는 지금이다싶어 온이에게 말했다.

  “온아. 다음부터는 네가 원하는 것을 말해. 이건 그냥 게임이고 바퀴벌레가 들어가지 않으면 게임에서 그냥 지는 것뿐이야. 그러니, 네가 원하는 것을 말해. 안들어올거야 대신 들어와라. 들어와라라고. 알았지?“

  이 날 결국 온이의 함정에 바퀴벌레가 한 번도 들어오지 않았다. 다음 게임시간에도 똑같은 게임을 했다. 그 날 온이는 손에 칩을 들고 내게 보여주었다. 이번에는 바퀴벌레가 온이의 함정에 들어갔나 보다. 그때는 눈을 맞추며 웃어주기만 햇는 데, 물어볼걸 그랬다. 혹시 바퀴벌레에게 들어오라고 했는지. 온이는 더 이상 바퀴벌레가 안 들어온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 후로 계속 잊고 있었는데 온이는 어느 순간 내가 맨날 져요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온이 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난 질텐데요. 나 게임을 못하니까는 말을 안하게 되었다. 그게 보드게임을 자주 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인지 조금 더 자라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몇 년 전 초보 보드게임 강사들을 위해서 전자책을 발행하기로 했다. 전자책 쓰기 과정을 수업료를 주고 들었다. 강사님의 주문에 열심히 따라 목차를 쓰고 본문을 썼다. 몇 번의 상담과 강사님의 도움으로 책을 다 만들긴 했다. 하지만 결국 전자책을 발행하는 사이트에 등록을 하지 못했다. 등록하려고 보니 걸리는 게 많았다. 나보다 더 경력이 많은 선생님도 있는데 내가 뭐라고 이런 책을 내나. 이 책을 사서 볼 사람이 있을까?(없을 것 같다)혹시 게임 설명이나 다른 내용들이 틀린 곳은 있으면 어떡하지? 혹시 그림이 저작권에 걸리는 것은 없을까? 그 사이트에 등록이 안 될수도 있어.등 다양한 말들이 마음속에 빠르게 올라왔다. 결국 난 등록을 포기하고 말았다. 누가 옆에서 뭐라고 한 사람도 없었건만. 온이의 어차피 안 들어 올거에요와 사이트에 등록이 안될 수도 있다는 내 생각이 겹쳐 생각이 났다. 전자책을 만드는 법을 알려주시고 줌으로 상담을 해주시던 강사님이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무엇보다 마인드셋이 우선되어야 해요. 항상 안되는 이유만 찾고 있잖아요. 충분히 가능한 일임에도 하지 못하잖아요.”     

  강사님도 내가 온이를 보는 마음으로 나를 보았을까? 난 강사님의 말이 왜 이렇게 수긍이 갈까. 나를 내가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난 무슨 일을 할 때 되는 경우를 생각하기보다 안 되는 경우를 먼저 떠올리나 보다. 게임을 할 때도 질 것 같으면 이미 질 준비를 해둔다. 아이처럼 어차리 질거야라는 말은 하지 않지만 마음은 이미 진 것처럼 행동한다. 그래서, 이래서 안될텐데, 저래서 안될텐데 하는 마음의 소리를 계속 하나보다. 온이의 저 말이 달리 안타까운 건 아니다. 내 모습이 겹쳐 보였던 것은 아닐까? 이런 내가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런 나라서 가능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난 성인이 되어 갑자기 이렇게 나의 부족함만 바라보는 어른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뿌리가 더 어렸을 때로 내려가야 할 것이다. 난 보드게임 하는 아이들이 질 때 지더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기를 바란다. 나처럼 중간에 힘을 빼고 지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조금 어렵지만 도전해 보고, 어차피 질 것 같지만 다시 한번 해보고, 게임에서 이겨보기도 하고 져 보기도 하기를 바란다. 특히 거의 질뻔한 게임을 이길 수 있도록 다시 한번 최선을 찾아보기를 바란다. 보드게임을 하는 도중에 이런 것들을 체험해 보기를 바란다.     

 “어차피 질거에요 “

 “내가 그렇지 뭐.”

  게임을 하다 보면 자주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을 본다. 8번 승리하고 이제 두 번 패배했는데 나는 왜 계속 질까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 성인이 이런 말을 하면 살아온 인생이 있으니 그런가보다라고 그냥 넘어간다. 하지만, 아직 어린이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 게 너무 슬프지 않은가?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수 없지만 내가 하는 일은 항상 실패한다고 생각하고 살까 봐 걱정이다. 

  많은 책에서 말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긍정적인 언어가 중요하다고 말을 한다. 영화배우 짐캐리 아무 일도 없었을 당시에도 “모든 사람이 나와 일하고 싶어한다. 나는 정말로 좋은 배우다. 나는 온갖 종류의 훌륭한 영화에 출연 요청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짐캐리는 성공한영화배우다. 말 덕분에 유명한 영화배우가 되었다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말이 노력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줬을 것이다. 연매출 6000억원의 캘리델링의 창업자 켈리최는 자신의 책 <<웰싱킹>>에서 긍정확언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우리나라 속담에도 말하고 있지 않는가.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하는 일마다 잘된다는 말을 날마다 한다는 것은 오늘도 한 걸음 내 말에 가까워지는 길을 갈거라는 다짐이 되는 것 같다.

  아이들 틈에서 나를 보고 나도 아이들과 같이 자란다. 이번에 온이의 말에서 나를 반성하고 내가 하는 말을 조금 더 돌아보았다. 이젠 말이 좋은 씨가 되도록 원하는 것을 말하려고 한다.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말하도록 할 것이다. 바퀴벌레가 안들어와요가 아니라 바퀴벌레가 들어왔으면 좋겠다라고. 어차리 질거야가 혹시 이길수도 있을 것 같아. 그러다 보면 언제가는 난 이길 수 있어가 될 것 같다. 크게 성공하지 못할 내 인생일지라도 난 오늘부터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난 현재 내게 주어진 것만으로도 내 인생을 최고로 만들 수 있다.” 

  “난 우리나라 최고의 보드게임 강사이다.”

  뭐 어쩐가. 내가 그렇다는 데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말을 바꿔서 원하는 것을 얻으면 땡큐고 아니라고 해도 잃은 것은 없으니. 원하는 것을 말하기 오늘부터 1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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