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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온경아 Feb 28. 2024

경쟁 경험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 아들이 집에 와서 속상한 듯 앉아 있더니 울먹이며 말했다. 학교 회장 선거에 나가고 싶다고...  

  “아니 누가 못 나가게 해? 나가고 싶으면 나가면 되지.”

   이게 울 일인가 싶었던 내가 짜증 섞인 투로 말했다. 아들은 1년 전 부회장 선거에서 같이 경쟁했던 친구이야기를 했다. 그 친구가 이번 회장선거에 나온다고 했단다. 작년에 아들은 그 친구에게 져서 부회장을 하지 못했다. 변한 것은 없으니 자신은 이번에 또 질 거라며 그냥 선거에는 나가지 않겠다고 했다. 안 나가는 게 아니라 지는 게 무서워 못 나가는 것이다.    

  “작년 부회장 선거에서도 내가 졌는데 이번에도 지겠지요.”

  아들의 말에 덩달아 나도 속상해졌다. 난 아들을 너무 잘 이해했다. 내가 아들과 같은 상황이었다면 나도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들일이 아닌가? 한걸음 떨어져서 볼 수 있는. 내 일이 아니라면 마음먹기는 조금 쉽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아들을 불렀다.    

  

  “아들아, 자 생각해 보자. 네가 이대로 회장 선거에 나가지 않는다면 회장은 절대 될 수가 없어. 맞지? “

  “네”

  “또 네가 회장 선거에 나갔는데 떨어졌어. 그래도, 회장은 할 수가 없어. 맞지?”

  “네”

  “안 나가거나 나가서 떨어지거나 둘 다 회장은 할 수가 없네. 맞지? 둘 다 결과는 같아. 그런데, 만약에 운이 좋아서 네가 떨어질 줄 알았는데 단 몇 표의 차이로 네가 회장이 된다면, 네가 원하던 일이 이루어진 거야. 밑져야 본전이고 운이 좋으면 이길 수 있는데, 하는 게 나을까? 안 하는 게 나을까?  ”

   “----”

  아들은 내 말을 듣고 회장에 출마했다. 용기를 낸 건지 누군가 옆에서 부추겨 주기를 바랐는지는 모르겠다. 회장후보에 등록하고 나서는 선거운동도 열심히 했다. 여동생과 함께 선거송과 춤을 만들어 집에서 연습을 했다. 학교 회장 선거에 투표권은 4학년부터였다. 아들은 4학년인 여동생 덕분에 회장이 되었다. 4학년에 동생이 있는 회장후보들이 대부분 회장이 되었다고 했다.


  안 나가서 회장을 못하는 것과 나갔는데 선거에서 져서 회장을 못하는 것이 같다는 내 말은 반은 틀리고 반은 맞다. 결과는 같기만 나가지 않은 쪽은 포기한 것에 대한 후회만 있을 것이다. 다른 쪽은 혹시 졌을 때 패배에 대한 부끄러움이 생길 수 있다. 괜히 나갔다는 자책감도 들 수 있다. 나갔는데 몇 표 차이로 졌다며 그래도 덜 속상할 것 같다. 하지만 차이가 많이 나게 졌다면 자신의 인지도에 대한 실망감으로 한동안은 힘들지 않을까. 나였다면 표가 많이 날 것이라는 두려움에 포기했을 것 같다. 그 두려움보다 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들은 어느 쪽이었을까? 아들은 분명 질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 회장선거에 나가는 것이 두려웠다. 5학년 때의 일이야 어떻든 이번에는 내가 이길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질 것이 두려웠다. 어떻든 그 두려움을 이겼으니, 회장이 될 수 있었다.  나는 회장이 된 아들을 보면서 앞으로도 질 것 같은 일에도 이번 일을 등불 삼아 도전할 수 있기를 바랐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성공하면 성공한 데로, 실패하면 실패한 데로 거기에서 또 배운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들의 나를 많이 닮았다. 안 될 것 같은 것은 절대 나서지 않는 것도 닮았다.  난 학교 돌봄 교실이나 기관에서 보드게임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따로 수학교습소로 운영하고 있다. 학교 방과 후강사나 프로그램 강사는 매년 혹은 2년에 한 번 면접을 본다. 현재 수업하고 있던 학교도, 새로 들어가고 싶은 학교와 마찬가지로 지원서를 내야 한다. 1차로 서류합격, 2차로 면접에 합격해야 학교에서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 난 지원서를 내야 하는 때가 되면 스트레스가 많아진다. 그냥 이런 것들을 하고 싶지 않아 진다. 작년과 비슷하게 내겠지만 서류를 쓰는 것도 싫고, 면접을 봐야 하는 것도 정말 싫다.  난 경쟁을 싫어하지만 해야 한다면 안전한 경쟁을 좋아한다. 안전한 경쟁은 무엇인가? 학교에 서류를 낼 때 경력이 많은 사람들이, 많이 지원할 만한 곳에는 피했다. 그다지 별로 인기가 없을만한 곳, 어쩌면 단독 지원을 할만한 곳에 넣었다. 최대한 경쟁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운이 좋으면 혼자 면접을 보는 곳. 그냥 난 누군가와 경쟁하기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난 경쟁에서 지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모든 경쟁에서 내가 이기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것도 참 이기적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난 아들은 그러질 않기 바랐다. 그래서, 선거에서 많은 것을 느꼈기를 바랐다. 아들이 질 것 같은 싸움에서도 도전할 수 있기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기를, 안될 것 같은 일도 도전해 보는 마음이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했다. 경쟁도 이렇게 경험을 하면 두려움이 사라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한 번의 경험으로 부족할 것이다. 아들은 여전히 도전은 잘하지 않는다. 엄마처럼  안전한 경쟁을 선호한다.  나 같은 아들이니 이해는 백번 하지만 이렇게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실패할 것 같아도, 힘들 것 같아도, 도전해 보고 최선을 다해보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경쟁을 해보고 그러기를 바란다.   


  보드게임은 경쟁을 경험하기 좋은 도구이다. 아들이 어렸을 때 자주 보드게임을 같이 해볼걸 하는 후회를 이럴 때 한다. 경쟁이 나쁘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경쟁을 통해 기회를 얻을 수 있어서 좋은 점도 있다.  경쟁이 콘셉트인 보드게임을 자주 하다 보면 경쟁도 경험이 되고 두려움이 사라질까? 요즘은 이런 생각을 자주 해본다. 그랬으면 좋겠다.. 혹시 나처럼 경쟁을 무서워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경험을 통해 극복해 보도록 할 수 있으니 좋을 것 같다. 보드게임을 보면서 혼자 별 생각을 다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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