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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온경아 Feb 29. 2024

게임에 지고 있을 때

 잘 외우고 있었던 아이들이 이름이 헷갈릴 때가 있다. 영준, 영훈, 영석. 영재, 영찬이가 그렇고, 지운, 지훈, 지우, 지헌, 지현이 이름이 비슷해서 잘 기억했어도 순간 잘못 부를 때가 있다. 어떤 이름은 빨리 외워지지만 정말 마지막까지 잘 외워지지 않는 이름도 있다. 모든 사람들, 즉 성인들에게도 이름은 매우 중요하다. 아마도 아이들에게는 더 중요한 것 같다. 자신의 이름뿐 아니라 친구 이름까지. 이름을 모두 기억하는데도 순간 잘못 나가는 경우가 있다. 지운이 인데 발음이 지훈이라고 하는 경우가 그렇다. 이 경우  다른 아이들조차 같이 동시에 큰소리로 말한다.

  “지-우운-이에요. 지훈이 아니에요.”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은 정말 선생님은 나쁜 선생님이란 표정이다. 당사자가 미처 뭐라고 하기 전에 옆에 친구들이 동시에 외치는 바람에 난 할 말을 잃는다. 이름을 외우지 말고 그대로 모두 토끼 머리띠 한 친구, 노랑 점퍼 입은 친구라고 불러 버릴까 보다 하는 못된 생각이 들 정도로 아이들에게 혼이 난다. 그나마 게임이 시작되기 전이나 이기고 있을 때 잘못 부르면 화를 덜 당한다. 하지만...

  어느 날이었다. 밖은 화창하지만 조금 추웠던 겨울. 금요일에만 나와 게임을 할 수 있는 영재 이야기이다. 영재는 질 경우 약간의 오기를 부리는 아이다. 같은 모둠원인데 바로 맞은편에는 지면 우는 아이가 있다. 그래서, 난 자주 그 모둠 앞에 서 있는다.

  그날은 <쥬플>이라는 게임을 했다. 폴리오미노 모양의 도형들이 동물모양을 하고 있는 게임이다. 자신의 차례에 카드를 뒤집어 나온 도형으로 탑을 쌓아야 한다. 무너지지 않게 중심을 잘 잡아서 쌓아야 한다. 탑을 무너뜨린 사람은 탑에 있는 도형의 개수만큼 빼기 점수를 받는다. 첫 번째 라운드에서 재가 탑을 쓰러뜨렸다. 그래서, 빼기 점수를 받았다. 순식간에 얼굴을 찌푸리는 영재. 다시 게임이 시작되었다. 이번에 영재가 가장 먼저 할 차례다. 내가 말했다.

  "음. 이제 영찬이 차례!"

  "저 영찬이 아닌데요."

  아차 이름을 잘못 불렀다. 하필 영재 이름을 잘못 부르다니(이름을 잘못 불렀을 때 가장 싫어하는 아이가 영재이다)..

  "미안해. 영재 할 차례." 아직까지는 아이 기분이 괜찮았다. 다음 라운드에서도 영재는 빼기 3점을 받았다. 처음처럼 높지는 않았지만 별로 분위기가 좋지는 않다. 그리고, 영재를 부른다는 게 또 영찬이라고 잘못 부르고 말았다. 오늘따라 왜 이러나? 나도 나를 책망했다. 내 입을 내가 치고 싶다.

  영재 옆에 앉은 민찬이가 차례를 진행하지 않고 있었다. 민찬이는 다른 친구들보다 자주 차례를 잊어버린다. 그래서

  “영찬이 차례네.”

  내가 말했다. 아이고, 영재와 민찬이가 섞여서 나왔다. 그 순간 영재가 말했다.

  "영찬이 아니라고요. 제가 정말 많이 참았어요. 선생님은 이제 아웃이에요. 제 이름 부르지 마세요"

  아이들도 다 놀라고 나도 순간 당황했다. 나는 바로 억울해서 말했다.

 "이번에는 너 안 불렀어. 민찬이 부른다면서 영찬이라고 한 거야."

 "---- 내 이름 부르지 마세요. 선생님. 이제 아웃이에요."

  화가 많이 난 영재는 아무 말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영재 앞에 쭈글이가 된 선생님. "알겠어. 이제 네 이름을 부르지 않을게. “  잔뜩 골이 난 영재가 게임을 하지 않으려나 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이름 두 번 잘못 부른 것이 미안해야 하는데 아이가 화를 내는 바람에 미안함이 다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었다. 영재가 화가 저렇게 난 것은 네가 이름을 잘못 불러서이기도 하지만,  게임에 지고 있다는 이유가 더 크다는 것을. 영재가 한번 이기면 그 화가 눈 녹듯이 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때, 옆에서 이 상황을 지켜본 다른 친구가 이렇게 말한다. "사춘기인가 봐요." 뜬금없는 사춘기 이야기가 나왔지만 그만큼 영재의 행동에 아이들도 놀랐나 보다.

  다시 게임은 시작이 되었다. 영재도 자신의 차례 때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게임을 계속했다. 다음 라운드에서는 다른 친구가 졌다. 이젠 영재 열굴은 공기가 ‘아주 나쁨’에서 ‘나쁨’ 단계를 건너뛰고 바로 좋음 단계롤 올라갔다. 표정이 아주 살짝 밝아졌다. 하지만, 화를 낸 게 있어서 표정은 여전히 나쁨 표정을 지으려고 애쓰고 있다. 나는 영재 이름은 부르지 않았다. 영재라고 하는 대신 너, 네라는 말로 했다.  다른 친구들 이름은 부르면서. 다음 라운드에서는 또 다른 친구가 졌다. 이젠 영재의 얼굴은 아주 좋음 단계이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이젠 조금 기분이 좋아지고 있네."

   아까 선생님한테 한 행동이 미안해졌는지, 영재는 혼잣말을 크게 말했다. 아이의 입가에 웃음기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정말 게임이 영재의 기분을 들었다 놨다 한다. 난 모른 척하고 있는데 아까 사춘기 말을 했던 아이가 말했다. " 선생님. 영재 사춘기가 갔나 봐요"라고 말을 했다. 난 그런가 보다고 답해줬다. 난 아직 영재 이름은 부르지 않고 있었다. 다음 게임에서는 영재는 탑을 무너뜨리지 않아 빼기 점수를 받지 않았다. 이제 영재는 아주 큰소리로 말을 했다.

  "와! 이제 기분이 좋아졌네. 사춘기가 진짜 갔나 봐!" 한다.

  난 ‘너 사춘기는 안 왔고, 기분은 아까 좋아졌고.’라는 생각을 했다. 이럴 땐 보면 나도 아이 같다는 생각을 했다. 수업이 거의 끝나가고 영재는 기분이 아주 좋음에서 이제 아주아주 좋음으로 바뀌었다. "자 이제 영재 차례이다." 난 다시 영재 이름을 불러주고 있었지만 영재는 내가 자기의 이름을 불렀는지 안 불렀는지 관심도 없다. 완전 게임 속으로 빠져들었다. 선생님은 이름을 잘못 불러준 죄로 수업 내내 그 아이 눈치 보느라 바빴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하느라 더 바빴다.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김소영 작가는 어린이도 사회생활을 하며 품위를 지키고 싶어 한다고 했다. 한 사람으로서 어린이도 체면이 있고 그것을 손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어린이도 남에게 보이는 모습을 신경 쓴다는 것이다. 영재는 자신의 이름을 잘못 불렀다고 화를 냈다. 그리고, 잘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느낀 후 쭘한 행동을 무마하려고 노력했다. 그 후의 행동들을 보면 성인의 행동과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분이 풀리니(이겨서)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몸짓으로 화해를 청해왔다. 어른도 가끔 욱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 ‘욱’이 사라지고 나면 화를 낸 것 때문에 난처할 때도 있다. 영재도 기분이 어느 정도 풀리니 조금 전 자신의 행동이 미안해졌나 보다. 계속 내게 혼잣말을 빙자해 말을 걸고 있었다. 기분이 좋아졌다. 사춘기가 갔다고 말하면서. 정중하게 아까 화를 내서 미안합니다. 당신도 내 이름 두 번이나 잘못 불렀으니 사과하십시오.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어른들도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지 않고 가벼운 웃음으로, 또는 차 한잔으로 무마하지 않은가?

  수업 중에 강사는 아이들에게 을일 수밖에 없다. 게임을 가르치고 플레이를 돕는 어른이라고 해서 강사가 갑일 수는 없다. 아이들의 기분 상태도 고려하면서 게임을 이끌어 가야 한다. 우는 아이는 달래야 하는지 그냥 모른 척 넘어가야 하는지, 게임을 하지 않겠다는 아이를 하게 해야 하는지 쉬라고 해야 하는지 항상 고민을 한다. 그리고, 순간에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한다. 그 선택의 순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갑. 아이들의 상태이다. 아이가 상처받지 않는 게 첫 번째고, 계속 게임을 하고 싶어 해야 한다는 것이 두 번째이다. 이번 수업에서 영재는 무엇을 가져갔을까? 화가 난다고 바로 화를 냈더니 좋았어는 아닐 것이다. 이렇게 화를 낸 자신의 모습이 남에게 어떻게 보였는지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이제 사춘기가 갔나 보다는 말을 통해 영재는 자신의 행동의 잘못을 일부 시인했다. 아마도 화가 난다고 당장 그 화를 참지 않고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을까? 여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모습이 상대방에게 안 좋게 보인다는 것을 느끼지 않았을까? 난 영재가 그날 그것을 알게 되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말할 참이었다.  그러나... 이 글을 쓰다가 나는 그때도 하지 못했던 반성을 한다. 그날 내가 영재에게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면 어떠했을까? 이름을 틀리게 부른다는 건 인간관계에서 큰 실례이다. 실수도 실수 나름이다. 내가 vip고객의 이름을 잘못 불렀다면 상대방은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실제로 영재가 지고 있어서 화가 났다고 쳐도 내가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다. 내가 그날 게임이 끝나고라도 영재를 불러서 사과를 했다면, 영재는 한 가지를 더 배웠을 것이다.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법. 어째 그 하루의 무게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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