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리어댑터의 ‘동굴’,
비누&마루의 방

서로 다른 방 - 네 개의 세계

by 조선희

‘동굴’을 품은 비누&마루의 방 미로헌에서 유일하게 부부가 함께 사는 공간이다. 두 사람이 쓰는 만큼 면적도 가장 넓지만, 인테리어 아이디어 역시 두 배라 신기하고 기발한 구석이 참 많은 방이다. 나는 비누네를 ‘디테일 쩌는’ 공간이라 부른다. 다 이유가 있다.


비누는 처음부터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을 거라 예상하고 공간을 구상했다. 출판 일, 텃밭 가꾸기, 공부, 떡이나 옷처럼 손으로 무언가 만드는 일, 우쿨렐레 연주 같은 일상이 여기서 펼쳐지기를 바랐다. 마루는 아파트에서는 하기 어려웠던 것들, 예컨대 큰 소리 나는 게임이나 음악과 영화를 크게 틀어놓고 즐기기, 노래 부르기, 악기 배우기, 냄새나는 요리 같은 걸 마음껏 하고 싶어 했다.

무엇보다 간절히 원한 건 ‘방음 멀티룸’이었다. 비누의 적극적인 배려 덕에 마루의 희망사항은 실현됐다. 대형 스크린, 멀티 모니터, 컴퓨터, 게임기, 가상현실 VR 안경, 스피커, 각종 저장 장치까지 얼리 어댑터의 면모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방음 멀티룸. 입구는 실제 책꽂이로 위장된 히든 도어다.

말하지 않으면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다. 그야말로 남자들의 로망, 맨스 케이브 man’s cave. 마루의 ‘동굴’이 탄생한 것이다. 당연히 이곳은 비누와 마루 공간의 시그니처다.

또 하나의 특징은 순환 구조다. 벽과 문 같은 막힘을 최소화했다. 입구-세면대-욕실-화장실-드레스룸-침실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형식이다. 각 공간은 노출 목재 기둥 중심으로 설치된 한지 미닫이문으로 살짝 분리될 뿐이다. 두 사람 모두 막힘없는 열린 공간을 원했던 결과다.


침실도 문이 없는 구조로 설계했다. 이 선택은 나중에 ‘패착’으로 판명 났다. 침실이 주방과 너무 가까운 데다, 출입구가 유리를 끼운 양개형 포켓도어라 소음에 그대로 노출된 것이다. 목구조 주택이 소음과 진동에 취약하다는 설명을 듣긴 했지만, 살아보니 정말 무시 못할 수준이었다.


침실과 욕실 사이에 있는 드레스룸과 파우더룸도 독특하다. 수도 배관을 연결하고 멀티장을 짜 넣어 작은 세탁기를 설치했다. 원목마루인 침실과 달리 이곳은 타일로 마감해 분리감을 주었다. 행거와 스타일러까지 갖춰져 있어 동선 최적화를 제대로 구현한 공간이다.


욕실, 이 공간에도 ‘문’이 없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문이 없는 게 너무 자연스러워 말해주지 않으면 모를 정도다. 문 틀 위에 롤 블라인드가 설치되어 있을 뿐이다. 물론 샤워부스에는 커튼이 있고, 화장실엔 문이 있다. 하지만 욕실 주출입구에는 문이 없다. 샤워나 반신욕을 할 때가 아니라면 굳이 문이 필요가 없기는 하다. 쓰임이 적다면 안 하면 된다. 공간도 절약되고, 도어 제작비용도 아낄 수 있다. 사실 나도 욕실 문이 있긴 하지만, 거의 열어두고 쓴다.


욕실에 들어서면 바로 세면대가 나온다. 뭔가 혁신적이다. 비누 부부는 기존 세면대나 수전이 불편하다며, 직접 디자인해 맞춤 제작했다. 그것도 두 개를 마주 보게 설치했다. 입구 쪽 세면대는 외출이나 화장실 사용 후 손 씻는 용도일까? 안쪽 세면대는 드레스룸으로 연결되니 양치나 세안용? 아니면 바깥쪽은 마루, 안쪽은 비누 것일 수도 있다. 식구 많은 집에 나란히 놓인 두 개의 세면대는 봤어도 마주 보는 세면대는 처음 본다. 세면대 자체도 배수구 쪽으로 빗 각인 모양새라 기성제품과는 완전 다른 모양새다.


편백 욕조도 있다. 남쪽 창 아래에는 실내 화단도 있다. 지금은 실제 식물을 키우고 있진 않지만, 입주 초기엔 푸르른 식물들로 가득했다. 상상해 보라. 문 없는 욕실로 들어서면, 푸릇푸릇한 식물들이 있고, 그 위 고창 너머 공원의 나무들이 바람에 살랑인다. 그 아래엔 기분 좋은 향을 풍기는 편백 욕조가 있다. 천정 마감재도 편백이다.


비누 공간에는 내가 부러워하는 요소가 더 있다. 대표적인 게 다락방이다. 크기도 적당하고, 천창 덕에 멋이 한 스푼 얹혔다. 남쪽엔 작은 창이 있어 한라산이 보이고, 2층 베란다로 나가는 큰 창도 있다. 어딘가 장난스럽고 자유로운 느낌이 물씬 풍긴다. 하지만 여기도 시행착오가 있었다. 침실에서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시공사의 실수로 변경되었다. 수정하려면 일이 커지는 바람에 비누가 포기했다. 원목 계단이 자연스럽게 꺾어지면서 이어질 자리에 사다리형 계단이 놓여 어딘가 ‘짝퉁’ 같은 모습이 되었다. 게다가 계단 끝의, 뚜껑처럼 밀어 여는 다락방문과 베란다로 통하는 창은 여러 차례 수정을 거쳤지만 완성도는 다소 아쉽다. 비누는 이 공간이 멍 때리거나 요가하고 공부하는 공간이 되길 바랐지만, 지금은 그 기대에 조금 못 미치는 듯하다. 그게 왠지 나까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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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의 한 마디 ~ ‘디테일 쩌는’ 공간이라는 표현이 미완성인 채로 남아버렸어. 경험하지 못했던 공간을 욕심냈더니, 여러 아이디어들이 3차원 공간에 그리고 일상에 잘 버무려지지 못하고 새로운 문제들을 만들어 내고 있지. 건축사도 시공사도 처음 해보는 시도라는 건 위험한 거더라고, 실현율이 40%쯤. 이 경험을 토대로 다음 집은 잘 지을 수 있어.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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