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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by 김오 작가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묵묵하고 먹먹한 우리 삶의 노선도

허혁


장강명 작가의 책을 읽다가 알게 됐다. 종종 그런 식으로 책을 고른다. 읽는 느낌이 맞아떨어진 작가가 추천한 책을 사들곤 한다. 이 책은 아쉽게도 이미 절판된 상태다. 2018년도에 발행된 책이 벌써 절판이라니. 나만 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인지. 결국 알라딘 중고로 새 책에 맞먹는 돈을 주고 샀다. 돈에 대해 여유를 두면 내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을 몸소 체험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표본으로 살고 있다.

오랜 세월 가구점을 운영하다가 접고, 버스기사를 직업으로 삼은 지 5년 차 되던 해에 써내려 간 글들은 엔틱과 빌트인 가구를 반복하고 있었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저자만의 필력의 맛을 안 이상 책을 끝까지 읽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플롯이 짜인 글이나 숲의 형태를 하고 있지도 않아도, 저자 특유의 옷을 입고 있어 난잡하지 않았다. 전체적인 내용이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아니나, 불쑥불쑥, 그것도 좀 자주 튀어나오는 저자의 손맛이 마음에 들었다. [정류장의 승객은 샘물처럼 고인다] 뭐지? 이런 내가 좋아하는 느낌의 글은? 그렇다고 이게 끝맺는 말로 가기 위한 장치도 아닌데 끝까지 읽게 되는 이 보기 좋고, 소리 좋은 글들에 약간은 반하기도 했다.


반면, 내용은 오히려 반감을 사기에 충분한 것들이 많았다. 친절하지도 오히려 난폭하기까지 한 버스기사의 이야기와 거친 말이 갑자기 툭 튀어나오기라도 하면 불편한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승객의 입장에서 이 책을 읽은 나는 저자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에 동의하지 못했다. 할 수 없다. 애초에 나는 저자의 입장으로 들어갈 생각이 없는 채 읽고 있었으므로. 그런데, 동의하지 못하면 뭐 어떤가. 평소 내가 수긍하고 열렬히 동화된 주장들이 얼마나 있는가. 그는 그대로의 버스기사 생활을 이야기하고, 나는 불편한 버스를 자꾸 안 타게 되는 승객의 입장에서 읽고, 그리고 그것이 하나가 되기도 했다가 둘이 되기도 하는. 그런 게 아닐까.

그래서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구구절절 변명하지 않고 약간은 싸우자는 식으로 써 내려간 글이 밉지 않았다. 누구를 대상으로 삼고 글을 썼는지조차도 모르게 솔직하게 쓰려고 한 글을 읽다 보면, 그가 자신을 벗 삼아 일상을 깁고 이야기 치료를 하듯이 내면을 치유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이 또 다른 성장을 의미하는지까지는 모르겠다. 아직 거기에 머물러 있는 듯도 하다. 꼭 성장을 하고 앞으로 뛰어가야만 좋은 인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떻게 쓰일지 모르는 인생의 지도가 있어서 행복이라는 것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이 사람이 아닌가 싶다. 그런 면에서 이 세상에서 숨을 쉬며 살아가는 이들의 많은 좌표들이 조화되는 날이 오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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