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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오 작가 Jan 05. 2023

일기를 쓴다는 것에 대하여

일기를 쓴다는 것


가끔씩 일기를 썼다. 욕받이 일기장이다. 아픈 마음을 안전하게 하소연할 곳이 이곳밖에 없다 여겼다. 마음이 먹먹하거나 아플 때 여백에 미운 글씨를 채운다. 판도라의 상자. 침팬지 잠자리처럼 이곳저곳에 끄적거린 뒤 버리곤 했다.


이제는 시간, 장소를 정해 본격적인 느낌을 얹기로 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일기를 쓰면 그날의 내가 있는데, 나는 보통 아침에 쓴다. 무의식적인 흐름에 가까운 내용이 주를 이룬다. 처음에는 평이하게 쓰다가 나중에는 저격 글이 되고 마는 것은 같지만.


내 마음이 거칠고 악하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 일기장을 가방에 넣어 함께 다닌다. 내가 없을 때 누군가 열어보면 절대 안 되니까. 이러한 불편함에도 일기 쓰기를 멈출 생각은 없다. 일기를 쓴다고 내 마음이 정리되는 것은 아니지만 쓰는 것 자체만으로도 위안을 받을 때가 있다.


이슬아라는 작가는 어릴 때 쓴 일기에 선생님이 코멘트를 해줬다고 한다. 그것을 보고 일기를 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공을 들이게 됐다고 한다. 물론 누군가 보는 것이 일기라는 것에 의문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하기는 했지만, 여기에서 포인트는 일기를 잘 써야겠다는 생각에 있다.


내 일기는 엉망진창이다. 내 마음이 엉망진창이니 글도 엉망진창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일기마저 잘 써야 되면, 내 마음은 어디에 뉘이지? 일기는 그날에 있었던 일을 기록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그래서 그 기록을 의미 있고 아름답게 써 내려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내 마음을 표현할 곳이라고 생각한다. 욕 한 줄 써놓고 하루 중 처음 미소를 지어보는 곳도 일기장이다.


글과 관련된 여러 사람들이 일기와 글쓰기를 공통적인 속성으로 이야기한다. 그럴 때 내 마음은 어디에 두어야 하냐고 강력하게 외치고 싶다. 일기를 두 번씩 써야 하나. 실제 내 마음의 일기와 아무나 보아도 되는 일기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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