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_그것들
오늘 수집한 좋은 글은 오은 시인의 <없음의 대명사>에 수록된 시, '그것들'이다.
그것들
된소리는 소리가 이미 됐다는 소리야
무슨 소리야 완성이 됐다고?
소리가 됐다. 된소리의 부정적 속성을 깨달은 사람과
소리가 '완성'됐다고 섣불리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은 곧, 이 시를 읽어야만 하는 독자이다.
된 사람처럼 모질고 우악스럽다고
다 된 밥에 재 뿌리겠다고 작정한 소리라고
'된'이 들어간 표현을(된 사람, 다 된 밥에 재 뿌리다) 사용해서 '된소리'의 부정적 속성을 강조했다.
(된소리가 도대체 어떻길래 된 사람처럼 모질고, 다 된 밥에 재 뿌리겠다는 악의를 나타낼까?)
꼴통을 봐
쓰레기를 봐
빨갱이를 봐
화낼 준비를 하는 사람
이미 화풀이를 하고 있는 사람
편견을 갖게 되면 발음할 때
없던 화도 만들어지게 돼 있어
꼴통. 쓰레기. 빨갱이.
된소리(ㄲ, ㅆ, ㅃ)가 들어간 단어들.
아니, 관점을 바꿔서.
사람들이 말할 때 된소리를 발음하는 단어들.
이 표현으로 듣는 이가 상처를 받는다. 이 표현에는 말하는 이의 증오가 담겼다.
아니, 관점을 바꿔서.
사람들은 이 단어를 말함으로써 듣는 이에게 상처를 입힌다.
사람들은 편견과 증오를 실어서 이 단어를 말한다.
개인의 편견은 '된소리'의 형태로 표출된다. 된소리는 화를 부른다.
된소리로 화를 내며, 된소리로 화가 난다.
겉이 아니라 꼴이
낯이 아니라 낯짝이
눈이 아니라 눈깔이
코가 아니라 코빼기가
귀가 아니라 귀때기가
배가 아니라 배때기가
간이 아니라 간땡이가
몸이 아니라 몸뚱이가
철이 아니라 철딱서니가
되었다
없던 화도 만들어내는, 된소리가 들어간 단어들이 길게 나열된다.
꼴, 낯짝, 눈깔, 코빼기, 몸뚱이, 철딱서니
독자는 일상적인 단어들을 낯설게 인식하면서,
이러한 단어들에 잠재된 폭력성과, 이러한 단어들의 사용이 유발하는 상처를 돌이켜보게 된다.
이러한 단어들을 서슴없이 내뱉으며 화풀이를 했던 자신의 모습까지도.
삐끼를 봐
삥땅을 봐
따까리를 봐
된소리가 두 번이면
화는 화딱지가 된다
된소리가 하나뿐인 단어들만 있을까.
어떤 단어를 말하려면 된소리를 두 번이나 발음해야 한다.
하나가 추가되도 화는 배가된다.
그래서 화는 화딱지가 된다.
폭력성을 간과한 채, 화에서 그치지 않고 '화딱지'까지 냈던 독자들은 뜨끔해진다.
올라갈 수 없어 눈을 아래로 까는 사람
내려가기 싫어 눈을 째리는 사람
비겁한 인간상 1. (된소리가 된 우리)
올라갈 수 없어서 분하고, 내려가게 될까봐 불안하다.
즉 겸손하지도, 진취적이지도 못하다.
사람들은 눈을 '깔거나' '째린다'.
얼싸절싸
용기를 낼 때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무것이 되고
까짓것
포기를 해버릴 때
별것은 별것 아닌 것이 되고
비겁한 인간상 2. (된소리가 된 우리)
'얼싸절싸' 용기를 내며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아무것으로 부풀린다.
'까짓껏' 포기하며 별것을 별것 아닌 것으로 폄하한다.
도망가야 할 때조차 토껴야 만족하는 사람
기막힐 때조차 기똥차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속을 터놓는 대신 속으로 기어들어 가는 사람
이유보다 까닭이 더 선명하게 들리잖아
훼방보다 깽판이 더 실감 나잖아
된 일을 한바탕한 듯 부대끼기 시작한다.
비겁한 인간상 3. (된소리가 된 우리)
더 선명하게 들리고, 실감 난다고.
더 만족스럽고, 직성이 풀린다고.
오로지 자신의 안위만 중시하며 태연하게 말하는 사람들.
그들은 과연 서로 정겹게 부대끼고 있을까.
오히려 된소리에 부대낀 신세이지 않을까.
우리가 된 소리가
된소리가 된 우리가
된소리는 우리가 되었다.
우리는 된소리가 되었다.
이 시는 '된소리'로 증오와 편견을 표출하고, 타인을 모욕하거나 상황을 곡해하는 우리의 말하기를 반성하게 만든다. 또한 필요 이상의 화를 내고 필요 이상의 상처를 입히는 것이 너무나 만연해진 사회를 돌이켜보게 만든다. 된소리를 쓰지 말아야 할까. 우리는 된소리가 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