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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화 Jul 03. 2024

뉴욕 공과대학교

Part 1. 출입처-On the Record

누구보다 자유로운 그들의

한 마디를 한 움큼씩 모으면


파괴와 창조의 순환

뉴욕 공과대학교에서 만난 교수님은 시니컬한 성격이셨고, 묘하게 사람을 매료하는 힘을 지닌 분이셨다.

교수님의 모든 말씀에는 상황이나 문제의 정곡을 찌르는 날카로운 통찰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돌을 툭툭 던지는 듯한 교수님의 말투는, 따스한 포장지는 없어도 중요한 알맹이는 전달하시는 교수님의 성격을 상징하는 듯했다. 

“어차피 망가질 기기라면 학생들이 연구하는 과정에서 일찍 망가뜨리는 게 낫다. 그러면 우리는 발전된 새 기기를 사고, 이 과정이 순환하면서 창조가 일어난다.” 

교육자에게는 학생에게 지식을 전달하고, 학생을 옳은 길로 지도하는 역할이 요구된다. 규범을 탈피하여,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인프라를 마련하는 사람’으로 스스로의 업을 정의하신 교수님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비록 교수라는 직함을 달고 있기는 하지만 본인은 일체의 개입이나 설계를 하지 않을 것이고, 배우고 경험하고 성장하는 것 모두 학생의 재량에 맡기겠다는 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 

디자인과 미디어처럼 답이 정해지지 않은 분야에서는, 학생들의 절대적인 자유로움을 보장해주는 것이야말로 혁신과 창조의 원동력으로 작동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가 두려워 자율을 고수하고, 기기 값이 아까워 기기 사용을 제한하는 우리의 사고방식에 변화가 일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덧붙여, 메타의 인스타그램 마케터 분께서 자신을 예술가로 과대평가하지 않도록 조심한다고 말씀하셨던 것과, 에머슨 대학교의 교수님께서 공부가 싫어질 때마다 공부가 곧 일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다잡는다고 말씀하셨던 것이 생각났다. 자신의 커리어를 개척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에 대한 객관화를 명확히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질문하는 용기

대학교에는 개발하는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인 컴퓨터실이 있었다. 화면에는 알 수 없는 수식과 문자가 가득했다. 도대체 무엇을 만드는지 궁금했지만, 먼저 말을 걸 용기는 없어서 멀찍이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던 나에게 교수님께서는 “가만히만 있지 말고. 먼저 다가가서 물어봐. 뭐하고 있는지.” 라고 말씀하셨다. 

‘가만히만 있지 말고’는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며, 물어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내게 상기했다. 

‘먼저 물어보라’는 ‘개발자도 아니고 미국인도 아닌 학생인데,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을 수도 있어.’ 하는 내 두려움을 정확하게 짚은 분석이기 때문에 따끔했다. 

‘무엇을 하는지 물어봐’하는 디렉션은 “난 코딩이나 데이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할 질문이 없는데, 질문을 생각해내도 멍청한 질문일텐데 어떡하지.” 하는 쓸데없는 고민을 씻어내렸다.

생각해보면 자신이 몰두하고 있는 일에 관심을 보이는 타인을 배척할 사람은 없고, 억지로 질문을 쥐어짜낼 필요 없이 그저 단순하게 상대에게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며 대화의 물꼬를 트면 되는 것이다. 

교수님의 말씀을 실천으로 옮기니 학생들은 내 숱한 망설임이 무색해질 만큼, 학교 교육 현장에서 사용될 챗봇 서비스를 어떻게 개발하고 있는지를 열정적으로 설명해주었다. 시간이 다 끝나서 우리가 먼저 양해를 구하고 대화를 마무리해야 할 정도였다. ‘질문 안 했으면 큰일 날 뻔했어.’ 무언가를 새로 배울 기회는 스스로 직접 만들어나가야 함을 NYIT에서 명심하게 되었다. 


가상현실은 공익에 기여한다

NYIT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은 VR체험이었다. 내용에 앞서 기술에 관한 이야기를 언급하자면, 가상 세계를 누비는 경험은 옷을 입거나 핸드폰 화면을 키는 일상적 행위처럼 편안했다. 또한, 현실과는 다른 세계로 진입한다는 인상을 받을 수 없었다. 헤드셋의 무거움과 헤드셋을 벗었을 때 찾아오는 어지러움만 해결된다면 가상현실은 가까운 미래에 사람들이 일체의 부담 없이 사용하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가 체험한 가상현실에는 학생의 신분이 되어 교실에서 선생님께 고민 상담을 받는 이야기가 구현되었다. 사회적 시선이다 경제적 여건 때문에 상담실 방문을 꺼리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학생들에 제때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해당 가상현실을 학생들이 설계했다고 한다. 상담에 대한 금전적, 심리적 부담을 완화함과 동시에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상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가상현실이기 때문에 유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NYIT는 가상현실을 의료 분야와 접목하여, 예비 의료인이 환자 응급처치 방법과 복잡한 수술 기법을 연습하도록 돕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살아 있는 환자를 다치게 할 위험을 차단하고, 반복적인 시뮬레이션과 피드백을 통해 의료인이 실제로 발생한 응급 현장에 당황하지 않고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측면에서 유용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합하자면, 가상현실을 유행 지난 기술로 치부한 것은 나의 오판이었다. NYIT의 프로젝트는 가상현실이 문화 산업에서 오락적 기능을 담당할 뿐 아니라 더 폭넓은 영역에서 공익 실현에 기여한다는 깨달음을 안겼다. 화제성과 별개로, 가상현실은 우리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꾸준히 연구되어야 하는 기술인 것이다.


Rough

NYIT 복도와 교실의 벽은 학생들의 치열하게 브레인스토밍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긴 메모 기록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사람들은 어떻게 느끼고 생각할까. 어떤 자료나 선례를 참고하면 좋을까. 어떤 플로우로 해결책을 설계해야 할까. 

미완성 상태의 생각들은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그린 러프한 스케치를 존중하는 NYIT의 철학과 맞닿아 있었다. 먼저 질문하고 싶지도 않고 애써 실패하고 싶지도 않다는 안일함에 가로막힌 나에게, NYIT는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며 나의 선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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