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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K이혜묵 Jun 16. 2024

작업반 장한데 당한 의정부 현장.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지만 늙어서 하는 고생은 무어라 해야 하나.

8월 초 욕실리모델링을 끝으로 3주간을 집에서 쉬었다.

별다른 일 없이 상당한 시간을 놀아서 그런지 불안도 하고 몸도 근질근질 하더 차에 

몇 달간 연락하지 않던 친구로부터 문자가 와서 통화를 했다.

친구에게 인력사무소 일당이라도 가봐야겠다고 했더니 그러려면 자기가 하고 있는 오피스텔 건축현장에 배수로 묻고 보도블록 까는 부대토목공사 현장에 와서 며칠간 일당으로 일해 보겠냐고 한다.


장소는 의정부역 근처였다.

수원 집에서 70km나 떨어져 있는데 차가 막히면 2시간 이상 걸릴 수 있는 거리이다.

퇴직할 때 일당이라도 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나왔는데 어디를 못 가랴.

돈이 점점 궁해지고 있어 조그만 푼돈이라도 벌어야 했다.


퇴직 후 꽃길을 걸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지만 하루하루가 쉽지만은 않았다.


약속한 날 월요일 새벽 일찍 출발했는데 비가 조금씩 내리기는 했는데 아무 연락이 없어 출발을 했다.

한 20분 정도 차를 달리고 있는데 비가 온다고 돌아가라고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노가다(막노동)가 이렇게 공치는 날에 허탈함이 크다는 것을 몸소 체험해 보는 순간이다.

안양에서 수원으로 넘어오는 지지대 고개 휴게소에 주차를 해 놓고 2시간 동안 책 읽다 집에 돌아왔다.


다음날 화요일은 7시 30분에 현장에 도착했다.

오피스텔 건축현장이 대기업에서 하고 있어서 그런지 최초로 이 현장에 투입할 때는 혈압체크, 건설산업 안전보건교육 이수증과 신분증 확인을 받아야 한단다.

현장에서 일하는 것도 쉽지 않은 모양이다. 혈압이라도 높으면 집으로 돌아가야 하고 고령자 이면 건강검진 서류도 제출해야 한단다. 


참! 현장을 관리했다는 놈이 이렇게 시작하는지는 모르고 

현장에 대고 항상 빨리빨리 일 추진하라고 독촉만 했던 과거 직장생활이 기억나는 순간이다.  

                                                          안전교육장


처음 일은 건물에서 나오는 하수관이 지나갈 자리에 구배를 맞추어 도랑을 파는 작업이었다.

당연히 삽으로 파는 것이 아니라 굴삭기가 판다. 

배수관이 놓일 자리에 콘크리트벽들이 군데군데 있어 이곳을 굴삭기가 깨내야 한다.

이때 발생되는 소음 때문에 주변 민가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임시방음벽을 형식적으로 나마 설치해야 한다.


임시방음벽은 높이 4m, 폭이 4m를 현장에서 조립해야 했다.

4m 높이가 별거 아니라고 생각되어 지만 작업발판 (피트비계)를 2단으로 만들어 그 위에 올라가 강파이프 사이에 방음판을 끼워 넣어야 이동식 임시방음벽을 만들 수 있었다.


사람이 높은 곳에 올라가 작업하는 것이라 안전감시자들은 다 모여 간섭을 했다.

장업발판 다리도 설치해서 작업하라고 하고 그 이외에도 이것저것 보완해야 작업할 수 있다고 야단이다.


무어라고 말하는지 안전용어를  잘 알아먹지도 못하겠다.

그동안 감독만 해보았지 안전고리는 처음 사용 해본다.


                                               가설방음벽  조립 후 현장 설치                                          


두 번째 날 정말 돈에 귀중함이 이런 것  이구나를 절실히 느낀다.

새벽 동트기 전 5시 50분에 1톤 포터를 몰고 집을 나선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 시간이면 이불속에 있을 시간이다. 


이 시각 봉담-과천 간 고속화도로를 거처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왜 이렇게 화물차들이 새벽부터 어디론가 이동하는지 모르겠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그동안 보이지 않던 1톤 화물차가 왜 그렇게 많이 보이는지 모르겠다.

궁금해서 짐칸들을 엿보면 새시를 싣고 가는 차, 시멘트와 빈통을 싣는차 참으로 다양하다.


이런 것이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서로 불쌍히 여긴다는 동병상련인 모양이다.

오늘따라 아침음악을 듣고 의정부 작업장으로 가는데 왜 그리 서글픈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다.

마음이 이상하다. 


어제 작업반 장한데 여러 소리를 들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수관으로 사용하는 고밀도배수관을 쌓아 묶어 놓았던 철사를 싹둑 잘라 놓았더니 왜 그걸 잘라 놓았냐고 한소리 한다.

그것 자르면 묶어 놓았던 배수관 무더기가 한 번에 흘러내린다고 한다. 


좀 더 빨리 옮기려고 커터기로 싹둑 잘랐던 것이 잘못된 모양이다.

또한 배수관을 묻기 위해 파논 고랑에 높낮이 하나 못 맞춘다고 또 한 소리한다.

한소리 정도는 참을 만하다.

좋지도 않은 인상에 한 겹 더 추가하여 인상을 팍쓰면서 말한다.


그 전날인 첫날에는 나더러 왜 그렇게 서둘러 일하려고 하느냐면서 한 소리를 들었다.

내 몸에는 빨리빨리가 배어 있는 모양이다.

                                                           하수관 배설 작업


어이구 정말!

안전모를 집어던지고 현장을 뛰어 나오고 싶어 진다.

참아야지. 참아야지. 참아야지.

그동안 이런 것을 못 참아서 내 팔자가 이지경이 되었는데. 

더 이상 욱하며 살지 말자.


그래도 파 놓았던 고랑에  잔모래와 흙으로 다 덥고 주변 도로 흙 치우고 빗자루로 쓰는 것이 하루 마무리이다.

작업반장은 이 작업이 다 끝나자 내게 웃으면서 한마디 한다. 

"힘들죠. 천천히 하세요."

이 말 한마디에 마음이 어느 정도 풀어진다.


이런 일을 겪고 나서 

또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작업장으로 가는 아침에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나는 오만가지 생각을 한다.

하루하루 일당을 버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데.

그동안 따뜻한 밥 잘 먹고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고 하는데 나는 반대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늙어 고생을 사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친구와 약속한 2주는 이 현장에서 채워보자는 마음을 굳게 해 본다.

2주간 일하기로 약속한 의정부 주상복합 현장에서 일하기 4일 차였던 금요일, 

그렇게 참자 참자 참자 다짐하고 현장을 갔는데 , 

아침 작업시작부터 작업반장은 지저대기 시작한다.

배수관 높이를 측정하는 레벨측량 할 때 사용되는 높이가 표시된 자(전문용어로 스타프)를 기준점을 잘 못 찍었느니, 맨홀을 왜 내려다보느니 별 잔소리가 많다.


급기야 오후 작업시작 30분 뒤, 

경계석에서 주상복합 건물 용지경계를 확인하여 맨홀 위치를 잡아야 하는데

건널목 있어 경계석이 없는 지역에서 측정자(스타프)를 길게 빼서 인근 경계석 양쪽과 어느 정도 맞추어 경계정을 잴 수 있도록 해주었다.


스타프를 내려놓은 곳이 경계석이 맞냐고 묻길래

이쯤 된다고 했더니 정확해야 하지 " 쯤"이 뭐냐고 또 말 꼬리를 잡는다.

정말 친구만 아니면 한바탕 싸우고 싶었다. 

화를 참으려고 한참 하늘을 처다 보았고 아무리 큰 한숨을 쉬어도 화가 가라앉지 않는다.

현장에 더 이상 있을 수 없었다.


나의 보물인 충전 그라인더로 현장에서는 고밀도 PVC관을 자르는 데 사용하고 있어서 친구 얼굴을 봐서 그냥 들고 나올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작업 끝나면 공구 찾으러 오겠다고 말하고 현장을 떴다.

공구 찾으러 갈 시간까지 2시간 30분이나 남았 있어서

근처 카페에서 아메리카로 한잔 시켜놓고 화를 가라앉히며 별 생각을 다 해 보았다. 

나의 성격이 잘 못 되었는지. 

무엇이 잘 못 되어 내가 여기까지 와서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나.

분이 풀리지 않는다.

작업이 끝났다는 친구의 연락을 받고 공구를 차에 싣고 의정부에서 수원으로 오는 1시간 30분 동안에도 

여러 생각이 든다. 

한 푼이라도 벌어 보겠다고 2주간 약속하고 나갔는데 집에 가서는 또 무슨 변명을 해야 할 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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