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생으로 허탈하고 한숨만 나온다.
의정부에서 작업반장에게 삐져 있는 주말이었다.
울적한 마음으로 토요일과 일요일을 우울하게 지내고 있던 시간이다.
일요일 저녁 7시 모르는 전화번호가 뜬다.
숨고에 작업 요청을 많이 신청해 놓았는데 거기에서 온 전화인가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내가 누군가에게 부탁해 놓았던 인테리어 업체 사장의 전화였다.
내일 시간 있으면 미용실 인테리하는데 배우러 오겠냐고 묻는 전화였다.
딱히 월요일부터 할 일이 없어 무조건 ok 했다
첫날에만 오후 7시 퇴근
그다음 날부터 퇴근 시간이 점점 늘어진다.
저녁 10시, 11시
6일째 되던 날은 드디어 새벽 1시에 작업이 끝났고, 집에 들어와 보니 2시가 되었다.
터널 터널 집에 걸어 들어오는 데 정신이 더 멀쩡해진 것 같다.
며칠 전 허리 쪽 옆구리가 결려 아프더니
사다리 옮기고, 자재 운반하고 그랬더니 아픔이 많이 줄어들었다.
미용실 같은 뷰티삽이나 상가를 주로 하는 인테리어 업체이지만
타일, 필름, 배관, 보일러, 데크, 광고판, 조명 같은 것을 다양하게 배울 수 있는 것 같았다.
인테리어는 그냥 도면 그려주면 목수, 전기, 타일 기술자들이 작업하면 그만인 줄 알았는데
작업이 끝나면 뒤처리해줘야 할 것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콘센트 뚜껑, 환풍기 달기, 문 열쇠, 변기 뚜껑,
빠드리고 간 줄눈 넣기, 실리콘 처리, 각 종 수납장에 경첩달기
전기온수기 조절, 인터넷 선과 전화선 빼주기
긁힌 페인트 보수
잔잔한 뒷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
며칠 전에는 데크에 캐노피 기둥까지 설치했고
커튼 공장에서 햇빛 가리는 버티컬 커튼을 찾아와 달기
남은 목재인 폐목재만 분리하여 중간처리장까지 직접 갔다 주는 일
그리고 혼합폐기처물을 차량에 적재하여 수집장에 갔다 처리하기 등이었다.
어느 곳에 본격적으로 인테리어 작업 들어가는 곳이 없는 없었고 그동안 마무리 못 해준 마무리하기, 그리고 하자처리한 일이 대부분이었다.
8일째 되던 날은 11시 30분에 창고에서 만나기로 했다.
항상 다음날 어디로 간다. 무슨 일을 한다고 이야기를 해 주지 않는다.
창고에서 만나면 혼자 휴대폰 메모창을 보면서 무엇 무엇을 챙겨라고 이야기한다.
이날도 어디로 갈지 모르지만 창고에서 페인트 통 몇 개와 목재 3개를 싣었다.
가는 길에 치약보다 더 적은 퍼티 경화제 하나를 사고,
점심시간이 다되어 짬뽕을 사주어 먹었다.
짬뽕 그릇이 식탁에 올라오는 시간에 지난해 본부장으로 모셨던 분의 전화가 왔다.
"요즈음 어떻게 지내냐? 빨리 퇴직한 것 후회는 되지 않느냐?"는 안부를 묻는다.
미안하기도 하다.
내가 먼저 전화하지도 못한 형편이라 연락도 못 드렸는데.
먼저 전화를 주다니.
고마울 따름이다.
나도 미안한 마음에 잘 계시는지,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를 물었다.
왠지 마음이 괴상하다.
이분은 본부장으로 있으면서 현장관리를 하고 있던 내게 외부업체 소개나 잘 봐주라는 부탁 한건 없었다.
이런 분이 잘되어야 하는데.
항상 이렇게 사는 분들은 손해만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매운 짬뽕 점심을 먹고 도착한 현장은 지난번 처음 접했던 두피마사지 샵이었다.
뒷문 데크 위에 그늘막 겸 비를 막는 캐노피 천막을 만들어 주기 위해
며칠 전 사각파이프 기둥 4개를 박아 놓고 갔었는데
이번에는 그 사각파이프 꼭대기에 목재 판재를 잘라 나중에 천막이 얻혀질 수 있도록
사각틀을 만들어 놓는 일이었다.
목재를 재단하라고 지시를 받았는데 이 놈의 슬라이딩 각도절단기의 손잡이가 OPEN이 되지 않는다.
이 쪽 나사를 만져보고 저쪽 나사를 먼저 보아도 열리지가 않는다.
사장은 몸이 아파서 병원에 잠깐 진찰 좀 받으러 가겠다고 했는데 오기 전까지 판재를 절단해서 하나라도 나사를 박아야 했다.
슬라이딩 각도절단기 기계 사용방법을 몰라 속이 탔다.
결국 생각해 낸 것이 멀타커터였다.
전동 멀티커터기로 나무를 잘랐더니 반듯하게 잘리지 않는다.
결국 전동 샌드페이퍼로 다듬어 나름대로 일직선이 되게 만들었다.
그 순간 사장이 나타났다.
2층 병원에서 들리는 소리가 슬라이딩 각도 절단기을 안 쓰고 멀티커터기 사용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하면서
"이유가 뭐여요?" 하면서 묻는다.
아뿔싸!
고수의 귀에는 어떤 기계를 쓰는지 안 보고도 아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이야기했다.
슬라이딩각도절단기 손잡이가 OPEN 되지 않아서 사용할 수 없었다고.
그리고는 4각 철 파이프에 나사를 박았다.
또 안 들어간다.
사장은 나사 2개를 박아 주고는 나머지 박으라고 하면서 몸이 심하게 아픈지 차 안으로 쉬러 들어갔다.
다른 한쪽 목재를 더 박아야 하는데
또 안 들어간다.
옆에서 웬 노인이 쳐다보고 있더니 "잘 안 되는 모양이어요" 하면서 한마디 한다.
왠지 누가 보고 있다는 생각에 나사는 더 안 들어간다.
전동 임팩트 드릴 소리가 계속 이상하게 들린다고 하면서 사장이 또 나타났다.
내가 박지 못한 나사를 또다시 박기 시작하더니 금세 해결한다.
아! 오늘은 되는 일이 없네.
비가 와서 동탄 쪽으로 이동하다가 방향을 틀어 수원 본거지로 일찍 돌아왔다.
오늘따라 집에 돌아오는 발걸음이 왜 이렇게 무겁게 느껴지는 것일까?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이런 실력으로 무슨 집수리나 인테리어 업을 하겠다고!
허탈하고 한숨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