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두번째...
처음 1달은 행복하게 흘러갔다. 아니, 행복보다는 평범하게 흘러갔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평범하게, 그저 괜찮게 흘러간다면 그게 기쁨이라고 믿었다. 앞으로의 호주생활도 평범하게 지나가길 바랬던 것 같다. 하지만, 내 소망은 그리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외국 땅에 갓 떨어지는 사람들은 흔히 겪는다는, 이지메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많이 힘들게했던 친구는 인도네시아 소년 J와 일본에서 온 소년 두 명이 있었다. 초반만 해도 이 친구들에 대한 첫 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뭐랄까, 어린 아이다운 순진함과 다 큰 남자의 투박함이 섞여있는 느낌이라고 설명해야 되나. 그 아이들에게 환상을 가졌던 나와 달리 불행하게도 그 친구들은 나에게 호의적인 마음을 가진 상태가 아니었다.
이 아이들은 1달 쯤 지난 뒤부터 나를 무섭도록 짓누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국어 욕을 나에게 수시로 던지는 가벼운 행동으로 시작했다. 이 정도는 장난 아닐까? 라고 생각했지만 점점 욕을 사용하는 빈도가 늘어나면서 나에게는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친구들은 당시 IEC에서 꽤 잘 나가던 한국인 일진 형에게 욕을 배워와서 나에게 사용했던 것이다. 그 형은 나보다 2살 많았는데, 키는 나보다 작았지만 사람을 대하는 눈빛과 태도는 정말 사나울 정도로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 형이 그 아이들에게 한국어 욕을 무슨 이유로 가르쳤을까? 날 괴롭히라고 가르쳤나, 아니면 농담 따먹기 용으로 사용하라고 알려줬을까... 한 때는 여기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곤 했었다. 어쨌든 난 이 아이들의 행동을 견디지 못하고 한 교사를 찾아가 지난 시간의 일들을 털어놓았다. 그 때만 해도 난 어른들의 믿음이 컸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나의 이야기를 들어준 교사는 끔찍한 실수를 하고 말았다. 그 아이들을 직접 찾아가 내가 해준 이야기들을 그대로 설명하며 사건을 마무리하려는 어처구니 없는 행동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그렇게 이 일이 허무하게 마무리된 뒤, 그 아이들의 행동은 점덤 더 심해졌고 급기야 그 한국인 형이 하교길에 찾아와 내 목까지 조르며 욕을 하는 일까지 당하고 말았다. 평범할 줄 알았던 호주생활이 조금씩 어렵게 바뀌는 순간이었다.
인도네시아 소년 J의 행동은 날이 가면서 더욱 심해졌다. 무슨 정신적 문제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소년 J는 2~3개월동안 매일 나를 성추행하였다. 성기부터 내 온 몸을 만졌고, 당황해하는 나를 보며 재밌어했다. 일본인 소년들은 매일 나에게 욕을 하며 스트레스를 주었다. 이게 과연 내가 원하는 삶이 맞을까? 왜 평범하게 흘러가지 않을까... 여러 혼란과 고통이 몰려왔다.
급기야 일본인 소년들은 화해를 위해 같이 놀자고 날 불러낸 뒤, 한국인 형과 노는 아이들이 바글바글 모여있는 농구장으로 날 속여서 데리고 가는 일까지 벌이고 말았다. 순진하게 따라나섰다가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던 순간 느꼈던 절망감과 당황스러움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결국 그 다음 날, 나는 그 일본인 소년들을 찾아갔다. 어깨를 붙잡고 정신병자처럼 소리를 질렀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술이라도 마시고 온 줄 알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 아이를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싸움을 잘 못했던 나는 어떻게 해야 되나 망설였다.
그 순간, 일본인 소년 중 1명은 망설임 없이 나에게 주먹을 날렸다. 교정기를 하고 있던 내 입술이 잘못 맞아 입술이 터지고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교사가 황급히 달려와 싸움을 말리려는 찰나, 일본인 소년들은 자신들의 집으로 헐레벌떡 도망쳤다. 찢어진 입술만큼이나 내 마음 한 구석도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조사가 시작되고, 난 하루종일 교무실 의자에 앉아 넋이 나간 사람처럼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야했다. 시내에 나가있던 내 엄마는 황급히 학교로 달려와야했고, 난 피투성이가 된 모습으로 엄마를 맞이해야했다. 자식으로서 이게 얼마나 초라한 모습인지... 지금도 미안하다.
마침내 교감이 엄마와 나를 불렀다. 나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도저히 이 반에서는 있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내 눈빛에는 절박함도 담겨있었던 것 같았다. 교감은 내 이야기를 유심히 들은 뒤 몇 초간의 고민을 하고, 조심스럽게 입술을 땠다. "참 유감이군요." 교감은 옆을 돌아보며 엄마에게 말했다. "상황이 이러니, 당신 아들을 다른 반으로 옮겨드리도록 하죠. 이제 이런 일은 안 당할 겁니다."
그 이야기를 듣자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한국 선생님들과 대처가 뭔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 믿음이 가기까지 했다. 한국에서 피아노 학원을 다닐 때, 난 같은 학교를 다닌 아이에게 매일 같이 얻어맞은 적이 있었다. 학교에 가서 이야기를 하니 선생은 나를 때린 아이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내가 인내심이 좋다는 칭찬만 반복했다. 1년 뒤 한 영어학원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졌을 때, 교사들은 내 성격이 이상하다며 말을 돌렸다. 이런 일들을 통해 어른들에 대한 신뢰를 조금씩 의심하고 있었던 나는 이 교감의 행동을 보며 다시 한번 믿음을 가져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순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