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의 IEC 과정을 마치고 나는 High School로 옮겨가게 되었다. 힘들게만 느껴졌던 IEC는 사실 예습에 가까웠고, 이제 본격적인 호주 생활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었다. 이미 IEC에서 뜯어먹힐만큼 뜯어먹힌 정신상태와 함께 하이스쿨로 들어가게 되었다. IEC에서의 경험이 있었기에, 하이스쿨에서의 생활이 결코 편안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IEC에서 겪었던 것처럼, 여러 어려움에 부딫힐 것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각오를 좀 다졌다. 하지만 하이스쿨에서 겪게 될 어려움의 수위는 단순한 각오만으로 이겨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이스쿨에 정식으로 들어가게 된 날, 나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어야했다. 바로 일본인 소년들과 같은 반에서 공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운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을까? 하이스쿨 생활의 첫 단추부터 지나치게 잘못 끼워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갉아먹힐 때로 먹힌 정신상태로 이 환경을 견뎌내기 힘들었다. 나는 카운셀러를 찾아가 사정사정하며 나의 상황을 말했고, 다행히도 카운셀러는 이해심이 깊었는지 나를 다른 반으로 옮겨주었다. 그 소식을 듣고 그래도 한시름 덜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새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뒤, 하이스쿨의 교감 선생 중 1명이 나를 불렀다. 그의 인상은 무척이나 험악해보였고, 내 걱정은 곧 현실이 되었다. 교감 선생은 내가 다른 반에 와있는게 이해가 안 된다며 당장 원래 반으로 돌아가라며 역정을 놓았다. 영어를 제대로 못했던 나는 그의 영어를 알아듣기도 벅찼지만, 대충 일본인 소년들이 있는 원래 반으로 돌아가라는 뜻이라는 건 알아들었다. 여기서 어른들을 향한 내 신뢰는 다시 깨져버리고 말았다. 그는 영어를 잘 못하는 내가 우습다는 듯 냉정한 비웃음마저 띄었다. 그가 아무 폭력은 쓰지 않았지만, 무척 잔인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린 학생에 대한 존중은 전혀 없어보이는 사람 같았다. 다행히 일이 잘 해결되어 일본인 소년들이 있는 지옥으로 가지 않고, 원래 나의 반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날 나는 다시 한번 절망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생각했던 호주생활이 이렇게 난이도가 높을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저 처음에 기대했던 것처럼 평범하게만 흘러가면 좋을텐데... 그 작은 기도마저 왜 하느님은 들어주지 않으시는지 참 이해가 되지 않았다.
뒤틀리고 망가진 자아와 함께 시작된 하이스쿨 생활은 점점 더 어렵게 풀려가고 있었다. IEC에서 겪었던 아이들과의 문제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고, 그저 얌젼히 학교생활을 하고자 했던 나의 다짐도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인원이 많았던 중국 아이들과 달리 교포를 제외하면 학년에서 한국인은 나 밖에 없었다. 같은 문화적 정서 안에서 의지할만한 사람 1명 없이 나는 홀로 이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그나마 괜찮은 정신상태에서 시작했으면 모를까, 난 이미 여러 일들을 거치며 성격이 상당부분 뒤틀려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생활을 괜찮게 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하이스쿨에서도 아이들, 선생님들과의 어려움은 본격적으로 이어졌다. 나를 괴롭히는 아이들도 계속해서 생겨났다. 같은 반 아이들 4명이 나와 친해지겠다며 다가와서, 나를 오히려 정신적으로 괴롭히며 힘들게 한 적도 있었다. 직접적으로 나에게 피해를 끼친 게 아니라 당하면서도 무척 당황스럽고 기분이 나빴던 기억이 난다. 영어를 잘 할 줄 몰랐던 나는 참다참다 그 아이들에게 어린 애같은 행동을 하거나 욕설을 하며 응수했다. 그 아이들의 행동을 참기 힘들어 교사들에게 얘기한 적도 있는데, 영어를 잘 못하다보니 내 해명을 제대로 할 수가 없어 오히려 흐지부지되기도 했다. 난 언어적 장벽과 지친 정신을 이기지 못해 계속 울기만 했던 것 같다. 친해진 백인 아이가 자기 여자친구를 따라다닌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난 그 여자애를 도서관에서 한 번 보고 인사했을 뿐인데... 겨우 잘 해명하긴 했지만 이 사건 이후 나는 아는 사람이라도 밖에서 잘 아는 체를 하지 않게 되었다.
교사들과의 갈등도 나에게는 큰 문제였다. 지난번 일을 계기로 어른들에 대한 믿음이 산산히 깨지다보니, 아이들보다는 교사들과 더 많이 싸웠다고 할 정도로 갈등이 많아졌다. 특히 백인 교사들에게는 '인종차별' 이라는 억울함까지 마음 속에 씌워져 더욱 거칠게 대했던 것 같다. 실제로 학생들을 대하는 데 있어 기본적인 소양조차 안 갖춘 교사들이 내 눈에는 너무 많아보였다. 예전 같았으면 어떤 교사든 어른으로서 공경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대해겠지만, 이미 망가져버린 자아를 가진 나에게 그런 규칙 따윈 이미 쓰레기통에 던져진 지 오래였다. '스승의 은혜' 의 첫 가사인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라는 말이 나에게는 전혀 와닿지 않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엇나가다보니 나는 학교에서 자주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나는 참 특이한 아이로 통했다. 문제를 일으켜 자주 주의의 대상이 되거나 불려갔지만, 아이들끼리의 싸움과 이지매로 불려가는 것이 아닌 교실에서 난동을 피우고 선생님 말을 듣지 않아서 불려간 것이었다. 교실에서의 난동이란 무엇일까? 바로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바닥에 드러눕거나 내가 평소 화났던 일들을 갑자기 일어나 소리치고 의자를 뒤로 저치거나 책상에 얼굴을 박는 등의 행동을 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수업에는 큰 방해가 되었고, 말리는 선생님들에게 나는 "니들은 나를 몰라!(You don't even know anything!)" 이라고 소리치며 지시에 따르지 않았다. 이런 행동은 매일매일 계속됐고, 아이들은 어느 순간부터 나를 정신이 좀 이상한 아이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 아이들에게도 상당한 피해가 되었을 것이다. 작은 희망을 가지고 시작했던 나의 호주생활은 점점 엇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