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하위키 40] 당신 아들은 심각한 문제가 있어요

by 유채하

망가져버린 자아와 함께 위태로운 학교생활을 하던 나에게 책임이라는 도덕적 무게는 빠르게 다가왔다. 무슨 짓을 하든 항상 절제하고 감정을 눌러야 한다고 배웠던 것 같은데... 그 당시의 나는 이미 이런 규칙 따윈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저 내 마음 속에 꾹꾹 눌려있던 어떤 거라도 분출시켜야한다는 욕망에만 가득 차 있었고, 그러한 행동이 내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될 수 있다는 명백한 사실마저 잊고 지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더욱 싸늘해져 갔다.


그러던 2017년 초, 나는 큰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수업 시간에 교사가 학생들에게 발표를 하라고 시켰다. 다른 아이들은 각자 발표한 자료를 준비하느라 바빴지만, 학교 수업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나는 종이에 누군가의 욕을 써가며 가만히 머리만 박고 있었다. 이상해보이는 내게 교사가 다가와 "Kenny, 뭐하니? 남 욕을 이렇게 써놓으면 어떡하니. 괜찮니?" 라고 물었지만 나는 "선생님이 뭔데 명령이에요? 잘 알지 못하면 가세요." 라고 삐딱하게 행동했다. 그리고 발표 시간, 나는 앞으로 뛰어나가 느닷없이 외쳤다. "날 힘들게한 000 선생과 000은 나쁜 X다! 나쁜 X다! 이 사람들을 잡아서 감옥에 쳐넣어야 된다! 이들을 잡아야 된다! 얘들 때문에 난 무척 큰 피해를 입었어. 안 그러면 난 죽을거야! 죽을 거라고!" 당황한 교사가 날 뜯어말렸지만 난 절제도 모르고 계속 땅을 발로 걷어차며 혼자 쇼를 했다. 같은 교실에 있던 아이들은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었고, 당연히 내 친구는 1명도 없었다. 뜬금없이 남자애 1명이 일어나 그런 행동을 하니 그 아이들은 나를 마치 마약중독자 쳐다보듯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몇분 뒤 겨우 자리에 앉았지만, 난 가방을 싸들고 그 자리를 도망쳤다. 복도 밖으로 뛰어나와 수풀에 숨었는데, 흘러내리는 감정을 억제할 수 없던 나는 나뭇가지로 내 몸을 때렸다.


다음 날, 교무실에서 교사 1명이 날 찾아왔고 엄마를 학교로 불렀다. 학교에서 엄마와의 만남은 벌써 3번째였다. 교사가 날 앉혀놓고 말했다. "당신 아들은 무척 큰 문제가 있습니다. 지난 행동기록부(Behavioural Report)를 살펴보니 교사들도 당신 아들을 지쳐하는 것 같습니다. 병원에 가서 정신과 의사에게 진찰을 받고 확인서를 안 받아오면 이 일을 그냥 넘어가지 않겠어요. 이 아이는 치료가 필요합니다." 그 얘기를 듣고 나 자신이나 엄마나 당황할 수 밖에 없었지만, 나는 계속 그 선생을 째려볼 뿐이었다. 내가 어떤 일을 겪어왔는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함부로 내 상태를 판단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내 잘못은 생각도 안 하고 일방적으로 학교만 원망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날 오후, 나는 학교에서 벌과 함께 정신과 병원에 다녀오라는 진단을 받았다.


며칠 뒤, 정신과 병원으로 향하는데 내 발걸음은 마치 바벨을 단 것처럼 무겁기만 했다. 내가 이 어린 나이에 정신과에 가게 되다니, 앞으로 나의 호주생활은 어디로 향해가게 될지 알 수 없었다. 내 마음 속에 하고 싶은 이야기들, 그들이 꼭 알아야 할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이걸 어디 가서 하소연할 수 있을까? 말 한 마디 할 수 없을 실어증 환자가 된 기분이었다. 정신과에 가본 적이 없던 나는 무시무시한 광경을 기대하고 걱정했지만, 막상 가보니 일반 병원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인테리어에 인형과 과자 등이 놓여있었다. 아마 나 같이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심리적 안정을 제공하려 마련해두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난 정신과 주치의는 한국인 선생님이었다. 처음 진찰을 받을 땐 학교에서 들었던 것과 비슷한 비관적인 결과를 예상했다. "당장 입원시키세요." 혹은 "당신 아들은 심각한 질환이 있습니다." 같은 슬픈 결과 말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나의 걱정과 달리 매우 희망적인 결과를 내놓으며 환하게 웃었다. 나의 상황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고자 하는 내 태도를 좋게 평가하면서, 현재의 적응기만 끝나면 좋은 모습으로 생활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의외의 평가를 들은 나와 엄마는 바닥에 내려놓았던 희망을 다시 붙잡은 듯 안도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병원을 나왔다.


다음 날 학교에 돌아갈 때 해당 선생님이 발급해준 진단서를 가지고 갔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교사들이 해당 진단서를 믿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특히 나와 갈등이 심했던 한 교사는 더더욱 이 진단서를 의심했다. 영어를 못하는 나에게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어른에 대한 믿음을 져버리게 만들었던 그 사람이었다. "이 아이는 정신적으로 큰 문제가 있습니다. ADHD나 아스퍼거 같은 말이에요. 이 아이는 특수학교나 특수학급으로 보내야 맞을 것 같습니다." 학교의 미온한 태도에 엄마는 많이 절망할 수 밖에 없었다. 겨우겨우 설득한 끝에 학교 측에서 미덥진 않아도 내 진단서를 받아들였다. 간단할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이 과정이 이렇게 복잡할 줄은 몰랐다.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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