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의 통제권마저 잃고 이리저리 휘청거리던 시기, 나무위키를 접하게 되었다. 내가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한 건 단순히 심심해서가 아니었다. 내 행동을 통제하기 위한 일종의 도피처를 구하고자 필사적으로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만약 도피처를 찾지 못한다면, 절제하지 못하는 내 행동 때문에 결국 최악의 결과를 떠안게 될 것이 분명했다. 교사나 부모가 아무리 잔소리해도 통제할 수 없는 내 자신이 감정을 가라앉히고 피해있을 심리적 도피처가 필요했다. 나에게는 너무나 절실했다.
처음 가본 곳은 소위 커뮤니티였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나누고 여러 주제로 이야기를 하는 곳. 기대를 가지고 들어가봤지만, 막상 가보니 어린 내가 기대했던 환상적인 곳이 아니었다. 그곳의 사람들 역시 나처럼 세상 속에서 지치다 못해 너덜너덜 떨어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한 주제에 대한 진중한 토론이나 삶에 대한 기쁜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비루한 신세를 과격하게 소리치며 작은 먹이감 하나를 놓고 피터지게 싸우는 또 다른 전쟁터였다. 이런 곳에서 나와 비슷한 상황인 사람들의 이야기나 읽는 건 전혀 심리적인 도피를 제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들에게 휩쓸려 더 고통스러운 감정적 토네이도로 빨려들어갈 뿐이었다. 입맛을 차갑게 다시며 커뮤니티를 나왔다.
연예인 덕질을 해보면 어떨까 싶어 팬카페에도 가봤다. 난 예나 지금이나 연예인 1명을 필사적으로 덕질해본 적이 없다. 종교와 마찬가지로 난 하나에 꽃혀도 오래가지 못했기에, 연예인 A가 괜찮다고 생각해 팬질을 해보려 해도 몇 달만 지나면 흥미가 떨어져 금방 내 삶에서 잊혀졌다. 이런 기질을 극복까지 해보면서 덕질을 통해 심리적 안정을 찾으려했으나, 역시 뿌리깊은 내 기질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난 여러 연예인들의 팬카페를 돌아다니며 팬 활동도 해보고 팬픽도 써봤지만, 얼마 안 있다 대부분 탈퇴할 수 밖에 없었다. 엄마는 "참 자주 옮겨다닌다." 라고 농담 같은 진실을 말하곤 했는데, 난 그 때마다 "관심이 떨어지는데 어떡하라고?" 라며 시큰둥하게 대답하곤 했다. 그렇게 두 번째 시도도 실패했다.
그렇게 인터넷에서도 심리적 도피처를 찾기가 어려워 자포자기하고 있을 무렵, 나무위키가 내 눈에 들어왔다. 난 초등학교 때부터 인터넷을 했지만 한번도 인터넷 백과사전 플렛폼에는 들어가본 적이 없었다. 나무위키를 천천히 살펴보면서 난 마음 속의 무언가가 튀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거다!" 확신도 함께 튀어올랐다. 여러가지 정보를 빠른 속도로 얻을 수 있고, 내가 직접 정보제공자의 역할도 할 수 있는 나무위키의 특징은 어린 나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어린 내가 지식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내가 아는 범위와 앞으로 찾아보며 배울 범위 내에서의 지식은 충분히 제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에 더해 내가 모르는 정보와 아는 정보의 부가적 지식을 더해보며 시간을 보내다보면 학교에서 매일 맞이하게 되는 감정적 불편함도 최대한 무시하면서 내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당시만 해도 나무위키의 장/단점이 뭔지 파악조차 안 하고 그저 내 심리적 도피처를 찾았다는 안도감에만 들떠있었다.
그렇게 난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나무위키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중3부턴 나무위키에 완전히 빠져들어 내 청소년기를 온전히 다 보내게 되었다. 그 때 내린 결정이 지금의 나를 키운 지양분이 될 거라고 생각조차 못했으며, 또 지금 내가 후회하고 있는 상당수의 비애를 초래한 원인이 될 거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다시 돌아간다면 또 나무위키를 선택할까? 아마 난 그랬을 것 같다.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은 내가 해본 여러 일 중 그나마 내 적성에 맞았기 때문이다. 커뮤니티에서 똑같이 전쟁속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가운데 뒹굴거리거나, 연예인 팬질을 하며 그들의 니즈에 맞는 글만 생산적으로 써내는 일은 도저히 할 수가 없다.
글을 마치기 전 마지막 질문이 남았다. "나무위키가 정말 심리적 도피처 역할을 했을까?" 내 대답은 어느 정도 그렇다. 나무위키에 본격적으로 빠진 이후, 학교에서의 내 모습은 상당히 달라졌다. 특히 나무위키에 몰두하기 시작한 중3~고1때부턴 난 학교에서 상당부분 내 감정을 통제하면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교사에게 반항하고 친구들과 겉도는 건 여전했지만, 더 이상 이전처럼 교실에서 이상행동을 하며 수업을 방해하거나 교사들이 인지할 만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게 되었다. 만은 회원들이 나무위키를 취미처럼 여기지만, 나한테는 정신적 갈증으로 쓰러지기 직전에 다이빙해서라도 마시고 싶은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그만큼 내 상태는 심각했고 위태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