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치어테이너(Cheertainer) 시대의 받침에는 치어리더라는 직업의 인지도를 지금까지 끌어올린 3대 치어리더가 있다. 이들이 인기를 얻지 못했다면 치어리더는 엔터테인먼트의 한 영역을 차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막 치어리더가 대중들에게 부각되던 2010년대 초반부터, 가장 높은 인기를 누렸던 치어리더 3명은 바로 박기량, 김연정, 이수진 치어리더였다. 은퇴 후 언급이 적어졌지만 강윤이 치어리더도 있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기억하는가? 아마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머리를 탁 치며 기억해낼 것이다.
박기량 치어리더는 말할 필요 없이 한국 치어리더계의 대표주자 중 1명이다. 사실 '박기량' 이라는 이름 자체가 대명사, 브랜드가 되어도 무방할 정도도 그녀가 한국 치어리더계에 끼친 영향은 어마무지하다. 박기량 이전의 치어리더 중 야구장 밖의 관중들이 알고 있었던 사람이 있는가? 이 질문을 생각해보면 그녀의 입지가 보일 것이다. 내가 처음 알게 된 치어리더도 바로 박기량 씨였다. 난 나무위키 활동을 하는 동안 여러 치어리더들의 문서를 편집했지만 그 중 박기량 씨의 문서를 편집했던 빈도가 압도적이었다. 지금 여러분들이 나무위키에서 읽고 계신 박기량 문서의 80%는 내가 전부 작성했다. 생애, 별명, 여담, 춤실력, 그녀의 라인, 방송 출연, 심지어 사건사고 일부까지... 한 사람에 대해 집중적으로 적다보니 사건사고까지 일부 적게 되었다. 그녀가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킨 적은 없지만 말이다. 내가 적었던 내용들 중에선 지나치게 사견이 많거나 약간의 과대평가 & 억까도 있었다. 적은 양이 많다보니 예전에 쓴 걸 다시 읽어보면 이건 소위 아다리가 안 맞다고 느낄 정도로 퀄리티가 떨어지는 글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의 문서에 쓸 내용이 가장 많았던 이유는 당연히 박기량 치어리더는 한국 치어리더들 중 대중적인 노출과 활동이 가장 많은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김연정 치어리더는 그 다음으로 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내가 아는 치어리더 중 가장 춤실력이 좋은, 치어리더를 하기 위해 태어난 인격체라고 생각한다. 김연정 치어리더는 박기량 씨와 같은 시기에 데뷔해 먼저 인기를 얻었다. 두 사람은 2012년 롯데 자이언츠에서 함께 활동했고, 연 100억 가까운 매출을 벌어들이며 야구장을 넘어 대중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다. 화려했던 두 사람의 공존은 1년을 가지 못하고 막을 내렸지만, 김연정 치어리더는 신생팀이었던 NC로 옮겨 구단 초기 NC의 응원문화를 제대로 정착시키고 나왔다. 지금은 그녀의 고향팀인 한화로 돌아가 팬들의 응원적 & 정신적 지주 역할도 하고 있다. 치어리더로서 황혼기로 달려가는 김연정 치어리더가 현재까지도 무대를 누비는 모습을 보면 멋있다. 박기량 치어리더의 문서만큼이나 김연정 씨의 문서도 많이 편집을 했었다. 특히 그녀의 춤실력에 대해 많이 칭찬했던 걸로 기억한다. 얼마 전에 김연정 씨가 나무위키 읽기 컨텐츠를 하는 영상을 봤는데, "제가 탑클래스 위치라니 부담스럽네요~" 라고 말하는 걸 보고 기분이 이상했다. 그녀는 치어리더로서 그런 평가를 받을 자격이 된다. 물론 내가 쓴 내용들 중에서도 아쉬운 건 많다. 특히 박기량 치어리더와 결별했을 당시의 일들에 대한 내용이나 치어리더로서의 면면 등을 적을 때 내 사견이나 카더라 같은 걸 포함해서 적었었다. 악의적인 내용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이수진 치어리더는 위의 두 사람에 비하면 데뷔년도도 늦었고 늦게 부각됐다. 이수진 씨는 특이하게도 야구장 밖의 대중들이 주목한 치어리더가 아니라, 야구장의 팬들이 직접 야구장 밖으로 꺼내서 부각시킨 인물이었다. '대구아재' 를 알고 있는가? 삼성 라이온즈의 야구공에 영혼을 묻을만큼 충성심 깊은 팬덤이다. 이 대구아재들이 2014년, 22살 밖에 되지 않은 1년차 어린 치어리더를 대중적인 스타로 만들어주었다. 대구아재들이 폭발적으로 야구장 밖으로 띄운 그녀는 지금은 없어진 XTM <베이스볼> 에서 마련한 댄스배틀에 출연하면서 마침내 대중적인 인지도를 가진 치어리더가 되었다. 나도 그녀에 대해 주목하게 되면서 나무위키 '이수진' 문서를 많이 편집하고 정보를 집어넣었다. 편집하면서 특이했던 건 이수진 씨가 원래 모델을 꿈꾸다가 치어리더계에 들어왔다는 사실이었다. 역시 사람의 삶은 예상치 못한 기회로 빛을 보는 것 같다. 이수진 씨와 댄스배틀에 같이 출연했던 임경미 치어리더의 문서도 내가 만들고 편집했는데, 난 임경미 씨도 분명 인기를 얻을만한 요소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일찍 은퇴해버려 아쉬웠다. 아마 몇 년만 더 있었다면 뒤에 인기를 얻은 같은 팀의 김한나, 안지현 치어리더와 함께 대중적인 인기를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그 분 문서를 편집하면서 실수로 한국계 미국인, 유학생활을 했다고 적었는데 명백한 내 실수였다. 사과드린다.
아참, 강윤이 치어리더도 빼놓을 수 없다. 아마 10년 이상 야구를 보신 분들은 강윤이 치어를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한 때 경남권에 박기량, 김연정이 있다면 수도권에는 강윤이가 있다고 할 정도로 그녀의 인기는 괜찮았다. LG 트윈스 치어리더 시절, 지금은 사망한 구하라 닮은 꼴로 언론에 주목을 받아 순식간에 그녀는 야구장 밖으로 부각되었다. 그녀의 나무위키를 편집하면서도 적었던 내용이지만, 강윤이 씨는 다른 치어리더들에 비해 춤을 그리 잘 추는 치어리더는 아니었다. 하지만 무대매너와 그녀의 춤선은 충분히 팬들 눈에 들기 충분했고, 그 결과 야구 무대에서 데뷔한 지 1년도 안 되어 야구 팬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치어리더가 되었다. 그러나 발목 부상으로 2014년 시즌이 끝난 뒤 은퇴를 했고, 1년 뒤 SK의 치어리더로 복귀했지만 부상의 여파로 들쑥날쑥하게 활동하다가 결국 2019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치어리더 활동을 완전히 접었다. 은퇴 이후 결혼하여 가정을 꾸린 그녀는 이제 야구장의 스포트라이트와는 멀어진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치어리더가 '응원하는 사람들' 정도에서 대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기 있는 직업으로 성장한 건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니다. 임금조차 많이 받지 못하던 직업을 현재의 위치까지 끌어올린 개척자들인 이들이 스포츠 사회에서 가치있는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룹이 해체되어 무대를 잃은 걸그룹 멤버가 다름 아닌 치어리더로 전직하는 지금의 직업적 위치는 주목받지 못하던 시절 자신들의 후레시라이트를 스스로 돌려서 켰던 1~2세대 치어리더들의 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