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하위키 40] 배트걸과 치어리더

by 유채하

많은 사람들이 응원단에는 응원단장과 치어리더만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들 외에도 팬들의 관심을 받는 또 다른 포지션의 사람들이 있다. 바로 야구선수들의 배트를 수거해가는 역할을 하는 배트보이/배트걸이다. 현재는 배트걸을 따로 채용하는 구단이 키움과 SSG 단 두 구단 뿐이지만, 과거에는 각 구단 응원단에서 배트걸을 별도로 뽑았다. 배트보이가 원조이지만, KBO에서는 배트걸만 주로 굴리는 것 같다. 배트걸은 경기때마다 들이는 체력에 비해 크게 알려지지 않아서 현재도 치어리더들에 비하면 주목받는 빈도가 적다. 배트걸을 따로 채용하는 게 복잡해서 치어리더들을 번갈아가며 배트걸로 투입시킨 구단도 있었다. 이처럼 팬들에게 큰 규모의 주목은 받지 못하는 이들이지만, 과거에는 배트걸 활동 경력을 통해 치어리더로 합류해 데뷔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마 올드 야구팬들이라면 롯데 자이언츠의 배트걸로 활동했던 신소정 씨를 기억할 것이다. 배트걸 신분으로 처음 언론을 타고 유명해진 케이스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2012년 시즌 롯데의 배트걸로 채용되었던 신소정 씨는 강민호가 통산 100호 홈런을 치고 홈플레이트를 밟을 때 양승호 당시 감독 옆에서 그에게 하이파이브를 해주는 모습이 KBSN SPORTS 카메라에 잡혀 한순간에 유명인사가 되었다. 대중들이 그녀에게 주목한 계기가 뭐였을까? 아마 배트걸이 덕아웃 밖으로 나와 경기에 약간이나마 참여한 모습이 신기하게 느껴졌기 때문인 것 같다. 치어리더와 달리 배트걸은 팬들에게 노출되는 빈도 자체가 너무 적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신소정 씨는 이 일을 계기로 롯데 팬들의 주목을 한몸에 받으며 '야구 9단' 이라는 모바일 게임의 CF 모델이 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렸다. 배트걸이 광고모델까지 차지할 만큼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승승장구하던 그녀는 2012년 9월, 배트걸 계약을 해지하는 과정에서의 일련의 논란들로 인해 결국 야구 무대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높았고 의미있던 전성기에 비해 너무 갑작스럽고 초라한 퇴장이었다. 그 후 그녀는 모델 활동을 하며 인터넷 방송 활동을 하는 중이다. 내가 그녀를 기억하는 이유는 나무위키 문서를 내가 만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늘 하듯 그녀의 커리어 전체를 일일히 다 훑어서 적었다. 그 때만 해도 박기량 씨를 좋아했던 나는 그녀에게 피해를 끼쳤다고 알려진 신소정 씨를 크게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적은 글들에도 은근의 공격성과 편견이 가득 들어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언론으로만 알려진 사건을 제3자인 내가 그렇게 감정적으로 쓸 필요는 없었다는 생각을 한다. 너무나 무지하고 성급했다.


또 다른 사람은 바로 현재 KT 위즈의 치어리더로 활동중인 김진아 치어리더이다. 그녀는 대학생 때 사직구장을 찾았다가 우연히 치어리더 소속사 관계자의 눈에 띄어 배트걸 활동을 시작했다. 신소정 씨가 떠나고 배트걸에 대한 열기가 식을 무렵,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사람이 바로 김진아 씨였다. 언론을 통해 그녀가 주목을 받는 빈도가 잦아지자, 이듬 해인 2014년 시즌을 앞두고 김진아 치어리더는 롯데의 치어리더로 합류하여 배트걸에서 치어리더로 변신했다. 롯데에서 3년을 활동한 뒤 KT 위즈의 치어리더로 이적한 그녀는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경험하며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아마 배트걸로 주목을 받은 인물 중 가장 성공적으로 활동범위를 개척한 케이스라고 평가할 만 하다.


아쉽게도 위에 언급된 이 두 사람 이후 배트걸 출신 유명인들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것 같다. 언론의 관심이 줄어든 것일수도 있고, 더 이상 구단에서 배트걸을 공개적으로 채용하지 않는 것도 중요한 원인이다. 응원단장이나 치어리더처럼 팬들에게 공개적으로 노출되는 빈도가 극도로 적은 직업이다보니 어쩌면 저 2명이 탄생한 게 특이한 케이스라고 할 수도 있지만, 다시 한번 스타 배트걸의 모습을 보고 싶은 개인적인 소망은 있다. 치어리더마저 블루오션이 되어버린 현재의 상황에서 배트걸을 다시 채용한 다 한들 그 사람이 치어리더로 옮겨갈 수 있다는 보장은 낮지만 말이다.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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