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느린 학습자의 인생(1)
어릴 때부터 나는 늘 어딘가 모자란 아이였다. 키도 또래들에 비해 한참 작고 마르고 체력도 따라주질 않았다. 운동 신경도 둔하기 그지없어서 잘 넘어지고 다치곤 했다.
그렇다고 공부를 잘하는 어린이였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분명 초등학교 2학년때까지는 그래도 책 읽는 걸 좋아하고 재미있어했다. 구구단이 등장하면서부터 공부 인생도 꼬이기 시작한 것 같다.
그러나 그 어느 것보다 나를 힘들게 하고 괴롭게 하는 것은 미술 시간이었다. 도대체 내 이 열 손가락은 무슨 저주에라도 걸린 건지, 손대는 것마다 다 망가뜨리고 그림도 엉망으로 그렸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졸라맨 이상의 퀄리티는 나오질 않았다. 애들이 내 그림을 보고 놀리는 건 기본이었고 4학년인가 5학년인가 어느 시절엔 선생님마저 '넌 여자애가 무슨 그림을 이렇게 그리니?' 하고 핀잔을 주었다.
만들기는 완성해 본 적이 거의 없고 매듭묶기는 하다 하다 안 돼서 맨날 울면서 끝났다.
초등학교야 시험을 안 치던 시절이었지만, 난 거의 공인된 전교 꼴찌였다. 학교에서는 늘 엄마를 상담 때문에 소환했지만 언제나 늘 너무 바쁘던 엄마는 거의 그 소환에 불응했다. 그러다 내가 5학년이던 어느 날 드디어 학부모 상담을 하고 나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으신 듯했다. 더불어 나의 인생이 고달파지기 시작했다. 나는 갑자기 온갖 사교육에 방문 학습지까지 해야 하는 고달픈 어린이가 되었다. 그것들이 효과가 있었으면 참 좋았겠지만.. 별 효과 없었다. 돈만 나가고 힘만 들고 무엇보다 내가 불행했다. 다정하신 우리 외할아버지가 총명탕이라는 한약까지 사다 주셨지만 그다지 덕을 보지 못했다.
결국 6학년 여름방학 때 나는 미국 유학을 가 있던 엄마를 따라 미국으로 가게 되었고, 언어 문제 및 여러 가지 이유로 4학년부터 다시 다니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작은 애였어서 겉보기엔 4학년이랑 별 차이 없어서 꿇은 티는 안 났을 거다.(그리고 미국은 무언가를 하는데 나이가 큰 걸림돌이 되진 않는 나라 같았다) 영어 탓인지 학습능력 탓인지 성적은 제일 잘 나온 게 C였지만 공부 스트레스는 한국에서만큼은 아니었다.
2년 뒤 한국으로 돌아와서 다시 나는 엄청난 공부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공부는 내 길이 아닌 것 같아 다른 진로를 찾으려 해도 남들에 비해 떨어지는 인지 능력과 썩은 소근육들로 인해 엉망인 손재주 덕에 크게 마음먹은 다른 진로들도 포기해야 했다. 솔직히 말하면 운동화 끈 매는 걸 완전히 마스터한 건 한국 나이로 열여섯이 되어서였다. 그런데 무슨 수로 기타를 배우고 요리를 배우는데 도전을 해보겠는가.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나는 늘 나의 무능함이 창피했고 못난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난 어른이 되어도 아무것도 못 할 거야'라는 생각이 늘 머릿속에 있었다.
어찌어찌 20대가 되어 그럭저럭 먹고살면서 고단한 삶을 버텨가고 있을 때 TV에서 우연히 '경계선 지능'이란 단어를 접했다. 그리고 그것의 특징을 들은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누가 어렸을 때 내 모습을 적어놓은 줄 알았다. 어쩌면 내가 그동안 힘들게 살아온 게 저것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서 검사받을 수 있다는 말에 지능검사 예약을 했고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예상한 대로 나는 '경계선 지능'이었다........!
-------------------------------
쓰다 보니 내용이 길어질 것 같네요ㅋㅋ
뒷 이야기는 다음 일기에 계속 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