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17

어느 느린 학습자의 인생(2)

by 다솜강이

경계선 지능은 지능지수 70~84 사이의 지능을 말한다. 내가 검사한 건 총 4가지 분야였는데 언어이해, 지각추론, 작업기억, 처리속도였고 언어이해만 정상으로 나오고 나머지는 다 평균 이하로 나왔다. 그렇게 평균을 낸 내 아이큐는 83...

의사 선생님이 이것저것 말씀해 주셨지만 이해한 건 몇 개 안 됐다. 그래도 선생님 말씀 들으면서 '아.. 내가 이래서 그랬구나, 저래서 그랬구나'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또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말씀은 보통 경계선 지능은 언어이해의 영역이 점수가 많이 낮은데 나는 정상이라 긍정적이라고, 그리고 남들보다 시간이 많이 걸릴 뿐이지 학습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니 시간을 들이고 충분히 반복해서 익히면 공부든 직장생활이든 문제가 없을 거라고 하셨다.


의사 선생님 상담을 듣고 곰곰 생각해 봤다. 그래서 나의 어린 시절이 그렇게 힘들었구나... 그러다 문득, 앞으로는 덜 힘들게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그런지를 알게 되어서인가.

병원에서 얻은 정보랑 인터넷을 찾아서 얻은 정보를 가지고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더 나아질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물론, 부모님께도 말씀드렸다. 부모님은 나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지원해 주시겠다고 하셨다.


우선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책 읽기 도전이었다. 이해력이 떨어지고 집중력이 아주 짧기 때문에 성인들이 읽는 책은 읽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린이들이 읽는 명작동화들부터 읽었다. 지금도 글씨 크기가 큰 얇은 책들 위주로 읽는다.

그리고 직장에서 새로운 업무를 배울 때는 무조건 적었다. 아주 간단한 것이라도 적어두고 계속 되뇌고 그래도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고...(그동안 저에게 시달리신 직장 선배님들.. 죄송합니다ㅠㅠ)


하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해도 고쳐지지 않는 건 무언가 추론하는 것과 눈치 챙기기였다. 무언가 할 때 속도가 느린 건 그래도 참아주는 사람들이 많았다.(속으론 뭐라 했을지 모르지만..) 하지만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개념이나 몇 가지 근거를 가지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맞추는 건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눈치 챙기기. 흔히 말하는 '분위기'를 파악하는 능력이 없어서 사람들 사귀기가 너무너무 힘들다. 내 의도는 그게 아닌데 말을 잘못해서 오해를 많이 받는다. 그래서 난 친구가 별로 없다.


경계선 지능이라 힘들고 애먹은 기억은 무지무지 많다. 하지만 그걸 다 일일이 얘기하고 싶진 않다. 지금 생각해도 괴로운 일들이라. 그리고 그걸 굳이 꺼내놓는다고 나에게 좋을 것도 없을 것 같고... 하지만 이 공간은 일기니까 언젠가 얘기하게 될지도 모르지...


요즘은 나 같은 사람들을 '느린 학습자'라고 부른다더라. 나는 이 표현이 마음에 든다. 나 같은 사람들은 그저 느릴 뿐이지 잘못하는 게 아니다. 배우는 속도가 치타처럼 빠를 수도 있고 나처럼 달팽이같이 느린 사람들도 있다. 그저 각자의 속도에 맞게 배우며 살아가면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서른이 넘어서도 눈높이 학습지 공부하고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어린이 버전으로 읽지만 나는 그래도 행복하고 나 자신이 만족스럽다. 어린 시절엔 그저 나를 가장 사랑해줘야 하는 내가, 나 자신이 바보 같아서 나를 너무 싫어했고 늘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 그때의 나에게 미안해서라도 나는 앞으로 나 자신을 더욱 사랑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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