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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주 Sep 15. 2023

Day7. '너구리'가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누텔라와 너구리

어제저녁, 약 2시간 30분 동안 걸어 다닌 것이 몸에 무리였는지 아침에 일어났을 때 몸의 무거움이 느껴졌다. 항상 7시에는 기상하던 직장인 습관이 남아있는 탓이었을까, 눈은 일찍 떠졌지만 몸을 일으키려는 의지는 없는 채 점심시간이 되기까지 계속 침대에 머물러 있었다. 다행히도 전날 ‘타겟’에서 구매한 토마스 잉글리시 머핀이 있어 오늘 하루는 밖에 나가는 수고는 덜 수 있겠다고… 먹기 전까진 그렇게 생각하면서 말이다.


잉글리시 머핀은 겉모습은 호떡과 같이 생겨 과연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기대감을 품게 만들었었다. 하지만 그런 기대감이 무색하게도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시원한 탄산수로 목을 축이며 크게 한 입 했더니 입에 느껴지는 건 묵직한 밀가루의 맛. 모르는 맛이라 점심은 이렇게 넘길 수 있었으나 저녁은 이렇게 밀가루만 먹고 넘길 순 없었다. 아무래도 이 밍밍한 맛을 달래줄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다 누텔라를 처방약으로 선정하였다.

그렇게 무거운 몸을 이끌고 근처 마트에 가 누텔라를 담는데, 순간 내 눈에 한국 컵라면이 눈에 들어왔다. 익숙하지 않은 ‘순라면’과 너무나도 익숙한 ‘너구리’ 라면. 사실 한국에서도 라면은 잘 먹지 않았는데, 보는 순간 내 모든 감각이 마치 구매를 하란 듯이 그 자극적인 맛을 떠올려냈다. 건강하게 요리도 해볼까 하던 마음을 금방 잊고서는 너구리 컵라면을 손에 들었다. 3.50달러. 한화로는 4500원이 넘는 금액임에도 구매를 하려 결심한 순간 이럴 수가, 혹시나 하고 체크한 유통기한이 훨씬 지나있었다. 오늘 완전 너구리 몰 각이었는데 싶어 보이는 모든 너구리의 유통기한을 다 확인했는데도 아쉽게도 전부 지나 있었다. 점원에게 말했더니 가판대에 있는 너구리를 전부 회수해 버렸다. 텅 빈 너구리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그렇게 저녁 너구리는 물 건너가고 잉글리시 머핀과 누텔라를 함께 먹었는데, 몸에는 좋지 않지만 심심한 밀가루 맛을 달래주는 완벽한 처방약이었다.


밤에 일정을 끝내고 돌아온 룸메이트는 내가 누텔라를 사 온 것을 보고 역시나 내 건강을 우려하였다. 이렇게 건강을 우려해 주는 사람이 옆에 있으니 확실히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인지하고 경계하게 되기는 하는 것 같다. (계속 구매는 하고 있지만 그 양은 정말로 줄여보려고 한다.)

룸메이트는 간단하게 밥을 먹을 거라고 하며 나에게도 곡물빵과 치즈, 아보카도를 함께 주었는데, 오늘 먹은 음식 중 가장 건강한 음식이었다.


이날 새벽엔 여기 온 처음으로 화재경보기가 울렸다. 너무 놀랐는데 룸메이트가 방에 와서 한 번씩 이런다며 아무 일 없는 것 같다고 안심시켜 주었다.

몇 년 전, 미국에서 교환학생을 하던 당시 기숙사에서 화재경보기가 울렸던 때가 생각났다. 실제로 불은 나지 않았으나 어쩌다 보니 소방차까지 와버린 사건이었는데, 필수적으로 건물 밖으로 대피를 해야 하는 방침으로 인해 팩을 하다가 급하게 나가야 했었다. 그걸 본 함께 온 교환학생 친구들이 웃기다며 같이 사진을 찍었었는데... 잠깐 그 기억이 스쳐 지나가 미소 지으며 다시 잠들 수 있었다.

아무 일 없이 평온하게 흘러가서 다행인 밤이다.


심심한 맛의 잉글리시 머핀
룸메이트가 챙겨준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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