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에겐 술이 필요해
**모든 등장인물은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이날은 오전 수업이 끝난 이후 우리 은행에 가기 위해 서둘러 코리안 타운으로 향했다. 한국 계좌에 있는 돈을 미국 계좌로 계좌이체하는 것이 쉽지 않아 인출 후 입금해 사용하는 방식으로 사용하고자 했는데, 인출 시도를 할 때마다 오류가 나서 사용하지 못하고 있던 참이었다. 심지어 체이스 뱅크는 잔고에 $1500을 유지하지 않으면 계좌 유지 비용을 내야 하기 때문에 해당 날짜가 지나기 전에 얼른 해당 금액을 입금하고 싶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안고 간 우리 아메리카 은행에서는 아쉽게도 로고와 이름만 같고 한국에 있는 우리 은행과는 전혀 다른 은행이라며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는 답변을 들어야 했다.
기대감이 컸던 만큼 마음이 지쳐버린 나는 배라도 채우기 위해 여기저기서 코리안 타운 맛집으로 추천받았던 ‘우리 집’이라는 가게에 들렀다. ‘우리 집’은 김밥을 포함해 정말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도시락 형태로 판매하는데, 계산 후 해당 가게에서 즉석으로 먹거나 들고 갈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인파를 뚫고 자리 잡아 매운 참치샐러드롤과 새우 로메인을 먹었더니 마음이 나아졌다. 역시 마음의 여유는 배부름에서 나오는구먼. 팁을 내지 않아도 돼서 더 좋은 우리 집, 앞으로도 자주 애용하게 될 것만 같다.
이날 저녁에는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전공 학부생과 대학원 학생들을 위한 파티가 있는 날이었다. 대학원 학생은 20명 남짓이지만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학부는 꽤 큰 편이라 파티 장소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성인답게 잔뜩 (술을) 기대하며 파티에 갔는데 에계, 입에 들어갈 수 있는 거라곤 레모네이드와 감자칩밖에 없었다. 미국 사람들은 ‘파티’라는 이름을 너무 쉽게 붙이는 경향이 있다.
뉴욕에서는 술을 마실 수 있는 연령이 만 21세로 엄격한 편인데, 학부생 중에서는 만 21세가 되지 않는 학생들도 많아 논란을 방지하고자 아예 막아놓은 듯해 보였다. 그래도 안에 있는 갤러리를 구경하기도 하고 아직 얘기를 해보지 못한 같은 과 친구들과 얘기를 나눌 수 있기도 한 좋은 기회였다.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이라고 적힌 빨간 가방을 받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역시 어른들에게 레모네이드로는 부족했는지 마음이 맞은 같은 과 학생 몇 명이서 함께 바를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한 아주머니께서 왜 우리들이 다 같은 가방을 가지고 있는 건지 여쭤보기도 했는데, 그제야 우리가 모두 같은 가방을 메고 있다는 사실이 인지되었다. 뭔가 유대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도착한 SLATE 바는 지하로 내려가기 위해 미끄럼틀을 이용할 수도 있는 유쾌한 바였다. 우리는 술을 시킨 후 레모네이드 밖에 없었던 파티에 대해 각자 한 마디씩 덧붙이며 어른들에겐 역시 술이 필요하다며 함께 건배했다. 처음으로 함께한 학과 친구들과의 사적인 술자리였는데, 대학원 지원 계기 등을 공유하며 모두의 디자인에 대한 열정을 엿볼 수 있어 좋았던 자리였다.
우리의 꿈이 모두 실현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