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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주 Aug 14. 2023

Day3. 계좌 개설을 하는데 2주를 기다려야 한다고요

미국 은행 첫 방문과 식료품점 투어하기

미국에 온 지 3일째, 여느 때와 같이 학교 이메일을 확인하는 것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입학을 앞둔 시기에는 학교에서 이메일이 상당히 많이 오기 때문에 꼭 매일 확인해 두는 것을 추천한다.

메일함엔 안 듣고 미뤄두었던 온라인 오리엔테이션에 대한 재알림이 와있었다. 이 온라인 오리엔테이션은 F-1 비자를 받은 국제 학생이라면 필수적으로 들어야 하는 것인데, 온라인으로 진행되다 보니 제대로 안 듣고 넘기는 학생들을 위해 치밀하게 매 강의 밑에 짤막한 퀴즈가 함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렇게 듣기만 하면 풀 수 있는 간단한 퀴즈를 풀어보던 도중, 룸메이트에게서 온라인으로 CHASE 은행 계좌를 개설할 수 있는 추천인 링크를 전달받았다. 전날 타겟(Target)에 다녀오던 길에 은행에 관한 얘기를 나눴었는데 그걸 기억해 둔 것이다. 하지만 알아보니 안타깝게도 온라인 링크를 통한 계좌 개설은 유학생 신분으로는 불가능했다. 왜 아무래도 힘든 유학생을 더 고달프게 하는 것인지. 결국 난 오리엔테이션 듣기를 마저 끝낸 후 지점 방문으로 계좌 개설을 하기 위해 근처에 있는 CHASE 은행으로 향했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때 외화 통장과 외화 체크카드를 발급해 두었기 때문에 '굳이 미국에서 통장 개설을 할 필요가 있을까' 의문을 품었었다. 하지만 와서 생활해 보니 결국 현지에서 은행을 개설할 수밖에 없는 두 가지 이유를 깨달았다.

첫째, 현금을 사용해야 하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 한국에 있을 땐 (물론 내가 그런 장소만 다녔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장소에서 카드 사용이 가능했기 때문에 현금을 쓸 일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거주하고 있는 지역 주변에서는 빨래방을 포함해 현금이 필요한 장소들이 소소하게 있었다. ATM 기기를 이용할 때마다 적어도 $2.75 정도의 금액을 내야 하기에, 반복된 현금 인출에 꽤나 부담이 됐다.

둘째, 외화 체크카드 사용 내역 반영이 굉장히 느리다. 해당 은행에 문의해 보니 외국에서 거래 내역이 발생할 경우 혹시나 있을 사태를 대비해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 거래가 진행되어 그렇다고 한다. 하지만 매번 사용 비용을 계산해서 살아야 하는 나에겐 느리게 반영되는 거래 내역이 고역이었는데, 모든 거래에서 영수증을 받아 가계부를 작성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계좌 개설을 위해 처음 방문한 미국 CHASE 은행은 한국은행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우선 번호표를 뽑는 곳도 없었고, 서서 용무를 보는 공간과 1:1로 의자에 앉아 거래 진행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나뉘어 있는 듯했다. 서서 용무를 보고 있는 다른 손님 옆에 가 어색하게 선 채로 차례를 기다리자니 꽤 민망했다. 이런 풍경 어디서 또 본 적 있다 싶어 생각해 보니 비자 인터뷰받을 때였다. 미국의 스탠딩 문화(?) 그런 건가.

그렇게 차례가 되어 *계좌 개설에 대해 여쭤봤더니 담당자가 없어 불가능할 것이라고 하며 미팅예약을 잡을 수 있는 다른 직원을 소개해주었다. 그럼 당신은 무슨 일을 처리하는 것인지요, 물어보고 싶었지만 타이밍을 놓쳐 아직까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언젠가 알 날이 오겠지.

소개받은 다른 직원은 아이패드로 확인해 보더니 예약이 가득 차 약 2주 후에나 가능하다며 친절한 말투에 그렇지 못한 스케줄을 얘기했다. 이럴 수가. 카드 수령까지 약 일주일 걸린다고 한다면 약 3주를 기다려야 하는 것과 다름없다.

*I'd like to open an account. 계좌를 개설하고 싶어요.


후에 해당 얘기를 전해 들은 룸메이트는 차라리 맨해튼에 있는 다른 CHASE 은행을 갈 것을 추천해 주었고, 조언에 따라 해당 지점에서는 거래 진행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원하는 목적을 달성 못하게 되자 급 지쳐버린 나는 근처에 있는 Wendy’s 패스트푸드점으로 향했다. 역시 지친 마음은 음식으로 달래줘야지. 햄버거가 날 유혹했지만 건강을 생각하며 눈물을 머금고 타코 샐러드를 주문했다.

계산을 하던 중엔 점원이 나에게 뭔가를 얘기하기에, 난 당연하게도 *'For here or to go?’에 대한 물음인 줄 알고 당당하게 먹고 갈 거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민망하게도 카드 제거해 달라는 말이었다. '영어회화-주문하기’ 파트에서 나온 레퍼토리대로 외워버리다 보니 저지른 실수였다. 내가 방문한 Wendy’s 패스트푸드 지점에서는 먹고 가는 손님에게도 동일하게 포장으로 제공해 주어 해당 질문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지점도 있으니 레퍼토리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해 둬야겠다.

*For here or to go? 여기서 드실 건가요 아니면 가져가실 건가요? 


Wendy’s의 타코 샐러드를 스토리에 업로드하였더니, 전날 Jollibee 때와 다르게 메뉴를 추천해 주는 여러 dm을 받을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타코 샐러드는 메뉴 추천 리스트에 없었다.) 기껏 햄버거의 유혹을 이겨냈더니 Wendy’s는 햄버거가 유명하다고. 다음에 두고 보자, 꼭 햄버거를 먹어줘야겠다.



저녁엔 룸메이트와 함께 India Square에 있는 식료품점으로 가며 은행 욕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계좌 개설을 하는데 2주 걸리는 건 미국인에게도 있을 수 없는 일인가 보다. 마침 내일 맨해튼에 약속이 있다는 룸메이트와 함께 맨해튼으로 건너가기로 약속했다. 이렇게 된 거 그냥 학교 근처에 있는 은행을 가야지. (이때는 몰랐다. 내가 맨해튼에서 무슨 일을 겪을지 말이다.)

얘기를 나누며 도착한 India Square은 마치 작은 인도와 같이 꾸며져 있었는데, 가게 내부는 인도 식품이 유별나게 많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여느 식료품점과 동일했다. 역시 인도는 카레인지 정말 많은 종류의 다양한 카레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난 사실 요리를 전혀 하지 않기 때문에 룸메이트가 구매하는 것들을 구경하기만 했는데, $10 이상 결제 시에만 카드 사용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으며 현지 계좌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느꼈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는 룸메이트가 바나나와 미숫가루를 섞은 것과 함께 India Square에서 구매한 인도 음식 중 하나인 ‘사모사’를 나눠 주었다. ‘사모사’는 감자와 채소 그리고 카레를 넣어 튀겨 만든 인도의 대중적인 음식 중 하나인데, 분명 처음 먹어보는 음식인데도 카레 고로케의 삼각형 튀김 버전 같은 느낌으로 그 맛은 굉장히 친숙했다.

룸메이트는 한국어를 할 줄 모르지만 한국인 가정에서 자라 몇몇 단어는 어색한 발음의 한국어로 말하곤 하는데, ‘미숫가루’도 그중 하나이다. 한 번씩 힘들 땐 ‘아이고’라고 말하는데 난 룸메이트의 그런 한국인 모먼트를 발견하는 것이 좋다. 자신의 음식을 나눠주고 내 건강을 염려해 주는 룸메이트와 더욱더 친해지고 싶어지는 밤이다.


사모사 튀김. 초록색은 ‘고수’를 이용한 소스라 먹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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