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요리 첫 미국 코인세탁소 첫 밋업
늦은 아침에 일어났더니 부엌에서 칼질 소리가 났다. 오랫동안 혼자 살다 보니 요리하는 소리에 눈을 뜬 것도 오랜만이라 기분 좋은 소음이었다. 관심이 가지 않는 건 억지로 하지 않는 성격 상 전혀 관심이 없었던 ‘요리하기'는 나에게 있어 굉장한 도전이었는데, 뉴욕에서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요리를 배워보는 게 어떻겠냐는 룸메이트의 조언에 따라 나 또한 같이 요리를 할 준비를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건강한 음식을 먹으려면 매우 비싸고, 길거리에 만만하게 파는 음식들은 보통 건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룸메이트는 나를 위해 1:1 미니 쿠킹 클래스를 열어주었다. 요리하는 법을 영어로 듣다 보니 자연스레 리스닝도 늘 수 있는 1타 2피 쿠킹 클래스! 오늘의 쿠킹 클래스는 비교적 만들기 간단하다는 ‘카레 만들기’였다.
룸메이트가 먼저 시범을 보여줄 때는 간단하게만 보이던 것이 왜 내가 이어서 하려고 하면 힘든 건지. 룸메이트에게서 요리 고수의 향기가 느껴졌다.
그런데 함께 요리를 하면서 굉장히 인상 깊게 느낀 부분이 있다. 바로 절대 나를 낙담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봐도 껍질을 깔 때 쓸 수 있는 부분보다 버리는 부분이 더 많아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룸메이트는 오히려 “You’re doing great.”라며 연신 칭찬을 하는 편이었다. 계속 칭찬을 듣다 보니 요리가 좀 재밌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덕분에 맛있는 카레를 아침 겸 점심으로 먹고 다른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 룸메이트가 날 데려간 곳은 바로 “Laundromat”, 우리나라의 코인 세탁소와 같은 곳이었다.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영어 귀를 뚫기 위해 보았던 영화 중 하나가 바로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였는데, 미국에서 이민 온 아시아인 주인공 부부가 코인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설정이었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는 우리나라의 ‘코인 세탁소’와 다른 모습에 딱히 공감이 되지 않았었는데, Laundromat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영화와 똑같은 풍경에 영화 속에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심지어 주인도 중국계 아시아인으로 똑같았으니 말이다. 보통 무인으로 운영하는 우리나라 코인 세탁소와 다르게, 이곳엔 항상 상주하는 사람이 있었다. ‘코인’만 사용 가능하기에 지폐를 동전으로 교환해주기도 하고, 영화 속에서도 나온 장면이지만 바쁜 사람은 돈을 더 내고 빨랫감 자체를 맡기고 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내 기억 상 우리나라에서는 건조기 비용이 더 비쌌던 것 같은데, 여기서는 세탁기(washer) 사용 비용이 $3, 건조기(dryer) 사용 비용이 $1로 건조기 사용 비용이 훨씬 저렴했다. 그렇게 빨래 및 건조까지 마치는 총 빨래 비용은 한국과 비슷한 듯하다. 난 현금이 없었기에 근처 슈퍼마켓에서 ATM 기기를 이용해 현금을 인출하고, 세탁소로 돌아와 현금을 동전으로 바꾼 다음 이용할 수 있었다.
빨래를 기다리면서 룸메이트와 근처를 걸어 다니고 세탁소 내부에 있는 텔레비전을 보며 미국과 한국의 문화 차이에 대해 얘기하는 사소한 것도 좋은 추억으로 기억 남았다.
미국에 온 지 5일째. 사람으로 에너지를 충전하는 외향인에게는 친구 한 명 없는 낯선 땅이 괴롭다. 침대에 누워 있으면 충전된다는 내향인 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더니 전혀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투였다. 혼자 있을수록 기가 빨리는 외향인의 세계가 있단다, 친구야.
룸메이트에게 친구를 만들고 싶다고 얘기했더니 Meetup과 Bumble이라는 두 어플을 추천해 주었다. 대략적으로 살펴보니 Meetup은 취미가 같은 사람들끼리 단체로 활동을 즐기기에 좋고, Bumble은 서로 친구가 되고 싶다고 매칭이 되면 얘기를 진행할 수 있는 어플이었다.
우선 두 어플을 모두 설치하고 Meetup부터 살펴보는데, 마침 집에서 우버를 타고 10분 거리에 있는 곳에서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Language Exchange Social’ 모임이 열렸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가도 되나'하는 생각이 마음 한편에 있었지만 오후 7시 모임을 6시 45분에 확인하고 5분간 고민하던 끝에 우버를 타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신분증을 챙겨 오라는 말이 뒤늦게 생각나 다시 돌아갔다가 가 생각보다 늦게 도착해 버린 모임 장소엔 이미 다른 사람들이 꽤 많이 모여있었다. 결론적으로 술을 시키지 않았던 나에겐 신분증이 필요가 없었지만 말이다.
도착하고 나서는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이름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게 스티커에 이름을 적은 후 가슴에 붙여야 했는데, 이때 가볍게 여러 사람들과 인사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교류 목적으로 모인 모임이다 보니 다들 친근하게 다가와주었다. 그 후엔 다양한 게임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한 명과 5분 간 대화하다 다른 사람 앞에서 해당 친구를 소개해주는 시간을 가지기도 하고 ‘몸으로 말해요’와 같은 게임을 진행하되 출제자의 모국어로 맞추는 방식으로 하기도 하였다. 예컨대, ‘boxing’을 일본인이 몸으로 말한다면 ‘ボクシング(복싱구)’라고 답변하는 방식이다. 해당 게임은 나중엔 영화 이름 맞추기로 변질되어 계속 진행되었는데, 서양권 외국인들은 왜 이렇게 이런 게임에 진심인 건지 간단하게 팽이 돌리는 시늉으로 ‘인셉션’을 이끌어낸 나와 다르게 한 터키 분은 급기야 ‘에일리언’을 표현하기 위해 당구대 위에 몸을 뒤집는 열연을 펼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Meetup을 통한 친구 사귀기는 성공적이었다. 브라질, 인도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알 수 있는 데다, 영어로 말하려는 노력을 하다 보니 영어 실력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고 말이다. 도착 전엔 '마약'도 걱정했었는데 실제로는 술도 안 마시는 완전 건전 모임이었다니. 단체 모임이다 보니 1:1로 친해지는 일은 어려웠지만 헤어질 때 인스타그램을 교환하며 1:1로 만날 가능성도 열어놓을 수 있었다. 타국에서 친구 사귀기를 갈망하시는 분들은 Meetup을 적극 활용해 보아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