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과 철학은 참으로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석적인 주식 플레이에는 시간이 드는 법이다. 반짝이 아닌, 견고한 성을 쌓으려면 그러하다. 그렇다면, 그 시간 동안 다른 것을 하고 있으면 되는데, 그중 가장 해볼 만한 것이 철학과 종교에 대한 탐구라는 결론이 나왔다. 개인적으로는 그렇다.
잘 생각해 보면,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애초에 돈이나 성공 그리고 주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생은 무엇이고, 그것의 의미는 무엇인가.'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이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읽어본 철학서 중, 가장 내 뚝배기에 경종을 울렸던 궁극의 결론을 요약하자면.
결국에는 인간은 '두려움'에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감각을 통해, '사랑'에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감각 중 몇 개를 상대적 체험을 해보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저마다 그게 무엇인지는 다르다. 다만, 밝은 곳에 빛이 있어봐야 기별이 없기 때문에.
밝다는 감각을 인지하려면 어둠이 있어야 한다.
같은 원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두려움 대비 사랑인 것이고, 그것이 상대적인 체험이 된다.
사랑은 '신'의 속성이다. 신은 절대계에 존재한다. 사랑만이 가득한.
고로 상대적인 체험이 불가능했기에, 지금의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상대계)를 창조하는데.
곳곳에 두려움을 일부러 심어놓는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신의 일부이다. 신은 우리를 통해 상대적인 체험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 하나는 우리" 같은,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본 것 같은 항간의 격언이 역사를 아울러 존재했던 것이기도 하였다.
나도, 여러분도, 그 모두가 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의 글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나는 조금 더 나아가보려 한다.
오늘 글의 주제는 아주 구체적이다. 엘리트 고지능자들의 자살에 관한 것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배우 '로빈 윌리엄스'의 죽음에 관해 알고 있을 것이다.
'로빈 윌리엄스'가 연기했던 작품들을 보면, 하나같이 인문학적인 성향이 묻어 나오는 시나리오였다.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 & 종교적 철학적 심오한 이해 능력이 없는 사람이면, 연기가 불가능한 배역들을 연기했다.
그가 박사 학위를 지닌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사유 능력이 깊은 사람이었음을 측근들은 모두가 알고 있다. 인간 본성과 존재의 의미, 고통과 죽음에 대한 깊은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한 때는 그는 인간과 대화 / 교류가 가능한 오랑우탄과 친구가 되었던 적도 있었다. 수화를 배운 오랑우탄 '코코'라는 친구였는데, 둘은 농담도 하고 정서적인 교감을 충분히 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사람이기도 했는데, 공연 중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I think the saddest people always try their hardest to make people happy. Because they know what it feels like to feel absolutely worthless.”
"제 생각에는 가장 슬픈 사람들은 항상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편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기분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는 2014년 8월 11일, 미국 캘리포니아 자택에서 목을 맨 채 숨진다. 향년 63세였다.
그의 사망 소식을 들은, 오랑우탄 '코코'는 수화로 슬퍼했다고 전해진다.
저와 비슷한 사례들은 여럿 있다. 수학자 '앨런 튜링', 작가 '데이비드 포스터 윌리스', 작가 '유키오 미시마', '프리드리히 니체', 락 밴드 '너바나'의 리더 '코트 코베인' 등.
저들은 모두 고지능자들로 알려져 있다. 모두 IQ가 최소 130 이상은 된다고 한다.('앨런 튜링'은 185다.)
이것저것 읽어보니, 고지능자일수록 자살을 많이 하는 이유가 있다고 하는데 다음과 같다.
< Ruth Karpinski, Mensa Foundation, 2018 >
멘사의 연구에 따르면 IQ가 매우 높은 사람들일수록 우울증, 불안장애, ADHD, 양극성 장애 발생률이 더 높다고 한다.
고지능자는 세상을 너무 복합적으로 인식한다. 결과적으로 세상의 부조리, 모순, 허무에 더 쉽게 접근한다. 이는 이들의 공통된 귀결을 보이는데, 그것이 '존재론적 고통'이다.
존재론적 고통은 무지에서가 아니라, 의식의 각성과 성찰에서 시작된다. 인간이 자신의 존재의 본질, 의미, 목적, 유한함을 자각할 때 경험하는 깊은 불안, 고독, 허무감이다. 이 고통은 흔히 자기 인식의 깊이와 삶과 죽음에 대한 자각에서 비롯된다.
별개로, 이들의 표면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다.
지적 대화 상대가 부족하여 존재적 고독을 느끼고, 사회의 속도와 맞지 않는 깊은 사고 때문에 타인의 공감 단절이 일어난다.
여기서 나는 궁금한 것이 생겼던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궁금하다기보다도 철학적 충돌이 일어났던 것이다.
내가 본 가장 수준이 높았던 철학서에 의하면, 우리는 사랑에서 비롯한 여러 가지 가치를 상대적 체험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예컨대, 나에게는 그 특정 파생 가치라는 게 자유이고 독립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자살이라는 게 사랑에서 비롯한 여러 가지 가치 중 하나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이게 도대체 뭔가 싶었다.
앞 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랑 또는 두려움이라는 양 극단의 궁극에서조차 완전히 초탈해버린 존재들이 아닌가 싶다.
사람이 죽음조차 별다른 두려움이 없다고 느껴지는 거면, 확실하게 두려움이라는 것에 초연해져 버렸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엽총으로 자기 머리를 날려버릴 생각을 하겠는가.(커트 코베인이다. 락으로 예술하더니 정말 예술로 갔다.)
사랑 또는 그에 파생되는 여러 가치들 조차 좇는 게 무의미하다는 것에 도달해 버린 것이라고도 볼 수 있으니, 이들은 말 그대로 동력을 완전히 상실해 버린 것이기도 하다.
존재론적 고통이 궁극에 달으면, 저런 결론이 난다고 보인다.
신도 저게 뭔가 싶어서 깜짝 놀랐을 것이다. 창조한 세계에서 시스템 에러가 발생했으니 말이다.
이 어젠다에 대해서는 특정한 결론이 없다. 내가 어찌 그걸 재단하겠는가. 나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다. 불가능이다.
다만, 나 또한 존재론적인 허무감에 대한 인지가 있는 편이기 때문에 나만의 그 서사 중 하나를 독자들에게 보여본 것이다. 특히, 저 철학적 충돌을 공유하면 좋은 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썼다.
그리고 걱정 말라. 그렇다고 내가 죽겠다는 게 아니다. 난 아직 해야 할 일이 있다. 졸라게 많다.
이런 류의 고찰을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작가가 '코너 맥카시'이다. 그의 작품 중 우리에게 유명한 영화화된 작품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이다.
그리고 그의 다른 작품 중, '선셋 리미티드'라는 작품이 있다. 이 또한 영화화되었다.
영화 제목도 '선셋 리미티드'이다. '토미 리 존스', '사무엘 L 잭슨' 나온다.
살기 싫을 때 보면 좋다.
더 살기 싫어질 것이다.
Nirvana - Lithium
https://www.youtube.com/watch?v=pkcJEvMcnEg&list=RDpkcJEvMcnEg&start_radio=1
< 10차 총회 >
장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 ***
비용 : 5만 원
* 총회 누적 참가자 수 : 51명
* 컨설팅 누적 진행 횟수 : 6회
* 컨설팅은 총회 실 참가자 중에서만 진행합니다.
참여 희망자는 아래 채팅방 입장, 채팅방 공지 참조하여 예약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입장 시, 프로필명을 '브런치 계정명'으로 달아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입장 코드 : 0728
https://open.kakao.com/o/gLGt97wg
[ 총회 진행 목차 ]
- 돈은 무엇인가(Gold standard, Fiat currency, Fractional Reserve bank system, 연준 통화정책 등)
- 한국의 세금은 무엇인가(실 참여자 외 완전한 비공개)
-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 방안 (개인 또는 가구가 할 수 있는 구체적 자원 배치 및 주식 투자 전략.)
- 주식, 현물, 비트코인, 부동산, 파생상품, 레버리지에 대한 거시적 인사이트 제공
-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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