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의 결실. 또다른 10년.

지금에 와서는 가볍게 말할 수 있습니다만.

by 언더독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이면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된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집안은 풍비박살 났었다. 20억의 빚 그리고 알코올과 니코틴, 폭력이 난무하던 암울한 시기였다. 나는 그런 집의 장남이었다. 당시 늦둥이 내 동생은 유치원생이었다. 많은 고통이 있었다. 춥고 배고프고 학교 갈 버스비가 없었다. 있던 건 바퀴벌레였다.


미국에 에미넴의 '8mile'이 있다면, 한국엔 우리 집의 내가 있었다.

그 뒤로 10년이 흘렀다. 나는 목숨 걸고 바다에 나가 시드머니를 모았고, 그 돈의 힘을 바탕으로 집안의 기강을 바로잡았다. 장남의 역할을 제법 했다. 지금의 우리 집은 그때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다. 살림살이가 대단히 나아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먹을 것 먹고 입을 것 입고 웃고 산다.


오늘 엄마 집에 들러서 엄마 밥을 먹고 왔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식사이다. 더군다나 음식 솜씨가 아주 좋다. 달래가 들어간 된장찌개가 일품이었다. 식후에 딸기 먹고 커피 마셨다.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하며 웃었다. 가족끼리.


장족의 발전이다. 나는 내가 자랑스럽다. 그리고 오늘 하루가 너무나 감사했다.



모든 걸 잃어보지 못한 사람은 감사하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모든 걸 잃어보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냥 사실이 그렇다는 말이다. 먹고살 만한 연예인들이 약하고 헬렐레해서 딸려들어가는 거 보고 있으면 그렇다.


28살이 저물어 갈 때, 나는 작가에 도전했다. 지난 1월에 처음으로 책을 출간했다. 블로그와 브런치 그리고 인스타그램에는 날이 갈수록 글이 쌓여간다. 몇 회사, 기관에서 계약 제의도 있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상담을 구하는 분들도 계셨다. 긍정적인 사인들이 보이고 있으나 아직 큰 인지도는 없다. 당장에는 말이다.


무명의 시간을 견디며, 꾸준히 생산적인 활동을 해나간다는 것은 상당한 인내, 고통이 수반되는 일이다. 어디서 주워듣고 하는 말이 아니라 내가 직접 해보니 그렇다.


지금으로부터 10년 뒤, 나는 지금의 이때를 회상하며 다시금,


장족의 발전이다. 나는 내가 자랑스럽다. 그리고 오늘 하루가 너무나 감사했다.



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10년이 걸려 '파탄 가정 복원 사업'을 성공시켰다. 그로 비롯한 자신감을 가지고 무명작가의 하루하루를 담담히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눈앞에 해야 할 일들에만 집중한다. 또다른 10년 아니겠는가.


고난과 고통은 고난과 고통임에 틀림없지만, 나에게 가치가 있는 일이라면 뭐 어떡하겠는가.

갈 길을 가야 하는 것이다.


그저 그뿐이고 아침은 다시 오게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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