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29세 관점

누군가 내 머리에 총구를 겨눈다면.

경쾌한 죽음.

by 언더독

어차피 우리 다 죽는다. 오늘 누군가 내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오늘 내가 죽는 날이라고 한다면. 미련 없이 당겨라고 할 것이다. 내가 미련이 없는 것은 왜일까. 사는 게 고통스러워서 그럴까. 나는 이미 죽음에 빚진 것 없이 살고 있다. 어차피 죽었을 몸이었기도 하고 말이다.


항해사 시절, 죽을 고비를 여럿 넘겼다. 내가 살아 숨 쉬며 이렇게 자판을 두들기고 있을 수 있는 것은 순전히 하늘의 뜻이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인도양 한가운데서 작업 중 갑판 밖으로 추락할 뻔한 적이 있었다. 항해 중 대양에서 OVERBOARD(선외추락)하면 그냥 죽는 거라고 봐도 무리 없다.


큰 선박의 밑바닥에 붙은 따개비들에 의해 내 몸은 엉망진창으로 갈려나갔을 것이며, 종래에는 분당 80회의 RPM으로 회전하는 거대한 선박 프로펠러에 휘말려 잘 다져진 물고기 밥이 되었을 것이다. 중력에 의해 떨어지는 순간, 허공에 팔다리를 휘두르며 아무런 방도가 없음을 느꼈을 때, 나는 죽음을 보았다.


당시 옆에 있던 기관사가 내 작업복 멱살을 잡아챘다. 내가 내 몸뚱아리를 구제할 수 있는 자구책은 전혀 없었다. 순전히 그의 힘에 의해 구해졌다. 신의 손짓이라는 것은 그러한 것들을 말하는 것이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세상에 태어나, 주어진 척박한 환경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지금도 그렇다. 도전하지 않고 산 적이 없었다. 나는 늘 나 자신을 안전지대에서 이탈시켰다. 그러지 않고서야 주어진 가족의 가난과 불행을 극복할 수 없겠다는 판단 하에서였다. 평범한 성장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지금도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밤거리 네온사인 휘황찬란한 술집 거리를 불가피하게 지나게 될 때(원래 그런 곳 잘 안 다닌다. 정신 사납다.), 귀에 이어폰을 깊이 꼽아 넣고는 'The House of the Rising Sun'을 크게 틀어놓는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한껏 꾸미고 나온 사람들 사이로, 추리닝에 슬리퍼만 신은 내가 지나간다. 땅만 보고 걸어간다. 보통의 이들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그게 시간낭비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서도 생각한다. 오늘은 내가 무엇을 하기로 계획했으며, 어디까지 진행되었고,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마감기한은 언제까지로 할 것인지 등이다. 어떤 부분에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지 재차 끄집어낸다. 괴로워한다. 담배 한 대 물고 해결방안을 생각한다. 그리고 어떻게든 그걸 찾아낸다. 어떻게 해서든 해결한다.


이 세상이 평화롭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나는 내가 늘 생과 사의 전선에 서있는 것으로 느낀다. 내가 있는 곳이 최전선이고, 여기는 전장이라고 여긴다. 내가 밀리면 부모 형제도 끝이라는 생각으로 산다. 또, 죽음은 어쩌면 오늘 당장에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견지하며 사는 것이다.


나는 투자를 한다. 매일 잠에서 깨어나면 가장 먼저 보는 것이 해외주식창이며, 부동산 뉴스이고 경제 신문기사이다. 요즘은 전세사기로 몇 명이 자살했다는 뉴스를 본다.(모든 경우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게 순수하게 사기라고 보는 것도 어느 정도 어폐가 있다. 큰돈이 오가는 일이니 만큼 나는 미리 공부를 했고, 전세라는 제도가 위험하다는 것을 감지했다. 그래서 주변에 전세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다녔지만, 어김없이 며칠 뒤 전세했다고 떠벌리는 멍청이들을 볼 수 있었다.) 검찰과 경찰을 사칭하는 스미싱 피해도 뉴스로 보았고, 실제로 당할 뻔도 하였다. (이런 게 사기다. 개인적으로 아주 개새끼들이라고 생각한다. 은행 창구에서 현금화 직전 경고문구를 걸어준 신한은행에 감사함을 표한다.)


지금의 목표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것이고, 트렌드를 읽기 위해 베스트셀러 도서들을 검색해 본다. 분석한다. 각 출판사들이 어떤 특이성향이 있는지, 원고를 투고할 때 어떻게 하는 것이 경쟁력 있는지, 출판계약에 있어서 조심해야 할 불미스러운 건수들은 무엇이 있는지 찾아본다.


하나도 안 평화롭다. 내 눈에는 날아다니는 총알과 떨어지는 폭탄이 보인다. 피하지 못하고 맞아서 곡소리 내고 있는 병사들도 보인다. 아무도 책임지고 그들을 구제해주지 않는다. 아니면 죽고 나서 구제해 주는 시늉만 하던지 말이다. 내가 사는 세상은 그런 곳이다.


당신이 사는 세상도 똑같다. 그저 당신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자각하지 못할 뿐이다.


나의 존재도, 내가 쓰는 이 글도 시간이 지나면 먼지가 앉고, 잊힌다. 사라진다. 한 사람의 삶에서 가져갈 수 있는 가치 있는 것이라고는 지난 자기 삶에 대한 충만한 만족감 이외에는 없다. 스스로가 떳떳한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 조금의 망설임 없이 그렇다 말할 수 있다면, 죽음을 관장하는 악마인 '위리놈'에게 한낱 인간으로서 그 면전에 힘 있는 중지를 날리며 폼나게 죽을 수 있다.


영화 '콘스탄틴'의 주인공 '콘스탄틴'이 천국으로 향하며, 사탄의 우두머리 '루시퍼'에게 법규를 시전 하는 장면이다.

콘스탄틴.jpg


당신은 악마에게 법규를 시전 할 수 있을 만큼 부끄럽지 않게 살고 있는가. 그러하다면 당신은 당신의 부모형제, 선조와 후손의 존경을 받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악마가 당신을 아주, 아주 아껴줄 것이다.


너무 속편히 살지 말라. 당신의 경쾌한 죽음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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