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삽시다.
오늘은 고독이 무엇인지에 관해 생각해 보았다. 가장 처음 건드려야 할 것은 고독과 외로움은 다르다는 것이다. 고독은 자의적인 선택에서 비롯되며, 외로움은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외부 상황에 의해 비롯된다. 그래서 고독은 즐거움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나, 외로움은 그렇지 못하다.
나는 스스로 선택하여 고독을 행하고 있다. 자의적으로 선택하였으므로 즐거움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스스로를 객관화해서 보면, 즐거움과 고통의 비율이 3:7 정도 되는 것 같다. 즐거움은 내 일에 집중하며 성취감을 느끼는 데에서 발생한다. 고통은 일을 하고 있지 않을 때, 성취가 제대로 발생하지 못할 때 일어난다.
이때 고통은 상당한 통증으로 다가온다. 단순히 감정적으로 괴롭다는 것을 넘어서서 수면장애가 발생한다.(나의 경우는 그렇다.) 잠에 쉽게 들지 못하고, 들었다 하더라도 자주 깬다. 이 생활이 길어지면서 아예 질 좋은 규칙적인 수면을 포기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러한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고독을 스스로 선택하여 유지하고 있는 걸까.
고독은 창조성, 창의성 같은 능력을 발휘하는데 도움을 준다.
'빈센트 반 고흐'는 고독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고독은 용기를 잃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위해 필요한 활동을 창조하게 하는 힘을 준다.
글은 쓴다는 것은 창조를 해야 하는 일이다. 더해, 나는 흔해 빠진 진부한 글을 쓰는 것을 혐오한다.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자본주의는 경쟁사회이다. 이건 재롱잔치가 아니다.) 그러려면 어디서 베껴오는 것이 아닌, 나만의 주관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내가 고독의 상태에 머물지 않고 보통의 이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면 그게 방해를 받기 시작한다. 나는 최고의 작가가 되고자 한다. 타협할 수 없다.
이게 첫 번째 이유이다.
두 번째 이유는 어떠한 '배수의 진'을 스스로 치기 위해서이다. 최고의 작가가 되겠다는 목표를 두고 내 생명력을 집중시키고 싶었다. '몰입'이라는 책을 쓴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도 고독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는데, 이 부분이 정확히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설명한다.
그 역시 고독이라는 것에는 '좋은 고독'이 있고, '나쁜 고독'도 있다고 한다. '좋은 고독'을 만드는 방법이 상당히 어렵기 때문에, 그가 대중들에게 이를 성취하기 위해 추천한 간단명료한 방법이 '몰입'이다.
고독의 상태에 들어가게 되면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 뭔가를 하지 않고 있으면 대단한 정신적 고통이 발생한다. 그래서 '몰입'의 개념을 아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죽어라 파기 시작한다. 대단한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에너지를 원천으로 뭘 하나 죽어라 파면, 그게 생명력을 다하는 것이다. 그게 영적인 에너지까지 부어 넣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이런 걸 열정이라고 해야한다.
그렇게 한 점에 집중시켜 생명력을 쏟아내기 시작했을 때, 성공이라 할 만한 성과가 나오기 유리하다. 고통을 에너지원으로 변질시키는 것이다. 어떤 자기 계발 강사는 이런 레버리지 원리는 쏙 빼놓고 대뜸 고통을 에너지원으로 승화해라고 말한다. 어쩌면 이런 원리에 대한 지식이 아예 없는 사람일 수도 있고, 있다고 하더라도 전달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라 보아야 한다. 그렇게 말하는데 누가 이해를 할 수 있겠는가.
다짜고짜 긍정적인 마인드로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애를 쓰며 포기하지 말고 도전하자고 하는 멍청이도 있는데, 상당히 마음에 안 든다. 이해가 안 되기 때문이다. 그건 마음에서 우러나는 방식이 아니다. 억지 논리다. 왜 긍정적인 생각이 안 드는데 억지로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자기 자신을 속여야 하는가. 아주 부자연스러운 행동이다. 인간 본성을 역행한다. 그래서 오래갈 수가 없다. 그러니 실용적이지 못하다. 한마디로 정말로 사람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는 뜻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고통을 싫어하고 거기서 벗어나고자 하는 존재다. 그걸 역이용해서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게 순리이며, 순리를 따랐을 때 자연스러운 성과가 나오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통을 일부러 내 옆에 가져다 놓고 거기서 도망치고자 하는 방향에 원하는 바를 위치시키는 것이 앞뒤가 맞다. 그래야 부리나케 도망치며 목표에 다가가게 될 테니 말이다.
'일론 머스크'를 봐라. 저 사람이 무슨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는가. 그는 하루에 17시간을 일하며, 공장 소파에서 잠을 잔다. 엔지니어링 팀에게 어떠한 기술적 개선 결과가 나오면 일요일 새벽 3시에 전화하라고 한다. 자기는 그런 거 상관없다며 말이다. 빨리 결과를 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당면한 문제가 신속히 처리되기를 원한다. 거기에 몰입되어 있다.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게 그에게는 고통이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를 봐라. 엘리베이터에 직원이 같이 타게 되면 항상 그 직원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물어봤다고 한다. 회사에 얼마나 기여를 하고 있으며, 얼마나 필수적인 존재인지 스스로 증명하게 했다. 대답이 시원찮으면 그 자리에서 해고했다고 한다. 이 사람이 무슨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는가. 그는 애플을 혁신적인 회사로 만들고자 하는 목표에 몰입되어 있었다. 회사가 충분히 혁신을 못하고 있는 것이 그에게는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글 초반에 현재의 나는 고독에서 느끼는 즐거움과 고통의 비율이 3:7 정도라고 했다. 즐거움은 성취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지금 성취가 잘 안 되고 있으니, 즐거움의 양이 비율적으로 부족한 것이다. 나는 고통이 싫다.(사람은 다 똑같다. 나는 고통을 사랑하는 사디스트가 아니다.) 그래서 이에서 도망치고자 더 몰입하여 글을 쓰는 것이다. 글에 생명력과 영혼을 불어넣었을 때, 성취라는 것이 발생할 여지가 더욱 있기 때문이다.
성공을 향한 인간의 여정은 이렇게 진행되어야 한다.
매사 긍정 운운하는 사람들은 생각을 그리 길게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다. (거기에 돈 쓰지 마라. 차라리 맛있는 밥을 사 먹어라. 그건 배라도 부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