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서양 3600m 해저.

나의 아픈 과거 기록.

by 언더독

나는 과거에 항해사였다. 위험한 직업이다. 급여 명세서에 생명 수당이 있었다.


21살이었다. 견습항해사였을 적 같은 선박에서 근무를 한 필리핀 선원 2명이 있었다. 필리핀 사람들은 특징이 있다. 피아식별이 아주 확실하다. 적이라고 생각하면 그 사람을 아주 거르려고 들며, 내 편이라고 생각되면 형제처럼 챙겨준다. 그들에게 나는 후자였다. 나는 외국인 선원들과 아주 잘 지내는 편이었다.


특히 그 둘과는 친한 편이었다. 힘든 일을 하며 같이 먹고 마셨다. 서로의 집안 이야기까지 하곤 했다. 30대의 조타수가 한 명, 나머지는 20대 중반의 갓 아빠가 된 기관부원이었다. 당시, 몇 달 전 딸이 태어났다고 내게 자랑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땀에 젖은 작업복을 입고 San Miguel 맥주를 마시며 친해지게 되었다.(필리핀 맥주다.)


aa49fc9a4ef04e2c8f164aaa1cf91e9b.jpg 좋았던 기억보다는 형언하기 고통스러운 기억이 많다.


8년 전 일이지만, 그의 이름을 지금도 기억한다. 본명은 '카메론'이었다. 미들 네임이 '조커'였어서 '조커'라고 불렀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늘 기꺼이 와서 날 도와주던 사람이었다. 직급은 아래였지만 나이로보나 경력으로 보나 위였기에 나에겐 형 같은 사람이었다.


나는 견습항해사로서 약 8개월 간의 근무를 마치고 지구를 2바퀴 정도 돌아 한국으로 돌아왔다. 남은 대학 과정을 끝마쳐야 했다. 그와 카톡으로 간간이 안부를 물을 수 있었고, 그 역시 휴가 중이라고 했다. 다음번에 근무하게 될 선박의 이름도 알려주었다.(보안상의 문제가 염려되어 선박명과 회사는 밝히지 않겠다.)


몇 달 후 남대서양 중간에서 국적선 침몰 사고 소식이 들려왔다. 한국인 사관 8명, 필리핀 부원 20명가량이 근무 중인 선박이었다. 뉴스에도 한창 나왔던 기억이 있다. 우루과이 해군 구조대가 급파되어 수색을 했다. 생존자는 필리핀 선원 2명이었다. 나머지 인원은 찾지 못했다.(후에 사망처리 된 것으로 안다. 한국인 생존자는 없었다. 그중에는 친분은 없었지만 학교 생활 중 자주 보았던 선배가 있었다.)


ef0d87bf-859b-432f-adcb-e1365ce2aced.jpg 심해 잠수정이 침몰선의 잔해를 살피고 있는 사진이다.


나는 이 선박명과 '조커'가 타게 될 선박명이 같다는 것을 금방 알아챘다. 뉴스 기사에서 선원 명부가 나오기에 확인해 보니 그는 그 선박에 타고 있었다. BBC 웹 기사에서 생존자 인터뷰를 보았는데, 나는 그 생존자를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나와 같이 일했던 30대 중반의 필리핀 조타수였다. 대머리였기에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거기에 '조커'는 없었다.


그날 '조커'에게 카톡을 했지만 답이 없었다. 두어 달 뒤, 그의 페이스북 계정에는 추모글이 이어지고 있었다.

8년이 지난 지금도 내가 보낸 문장 옆에 '1'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카톡방을 나가지를 못하겠다.


윗줄에서 두번째 친구다. 인물도 잘 생겼었다.


문득, 그 사람이 생각나는 새벽이다.

내가 겪었던 몇 년간의 항해사 시절, 나도 몇 번이고 저렇게 될 수 있었다.

나는 지금도 살아서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는데 고개가 자꾸 떨어진다.


남대서양 3600m 해저 어딘가에 있을 사람이다.

딸이 아빠 없이 클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글을 쓰며 기도를 올리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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