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_침몰하는

by 언더독

어린 나는 공부머리가 있는 편이었다. 중학교 첫 중간고사에서 별 생각지도 않던 전교 1등을 했다. 집에 소식을 알렸더니 어머니는 나사 빠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내게 그닦 공부와 성적을 강요하지는 않는 캐릭터였는데 그래서 더 놀란 눈치였다.


부모님보다 학교에서 더 열성이었다. 교무실에서는 나를 잔뜩 힘주어 밀어주기 시작했다. 지역 교육청 이공계열 영재교육원에 합격했으며, 과학고등학교 준비를 목표료한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죽어라 공부밖에 안 했던 기억이 있다. 어린 나는 그게 맞는 건 줄 알았으며, 그 길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학교와 입시학원에서 살았다. 당시 아버지는 모직물을 중동에 수출하는 사업을 하고 있었고, 엄마는 전업주부였다.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하루도 바람 잘날 없는 집구석이었다. 서로 싸우지 않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과학 고등학교를 가면 기숙사 생활을 할 수 있으니, 더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무렵 띠동갑 남동생이 태어났다. 내가 중학교를 다니던 때, 그 녀석은 아장아장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나이차이가 워낙 많이 나다 보니, 그때부터 큰 형으로서의 책임감이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어느 정도 빨리 성공해야 저 아이를 돌봐줄 수 있겠다는 감정을 은연중에 품기 시작했던 것 같다.


중학교 3학년 말미, 지역 과학고등학교 입시를 거치던 과정 중에 아버지의 사업체가 무너지는 시그널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부부싸움은 더 잦아졌으며, 어딘가 모르게 집안 공기 중에는 살기가 돌기 시작했다. 나의 사교육은 중단되었으며, 아버지의 얼굴을 보는 게 쉽지 않아 졌다.


입시 결과는 탈락이었다. 전형은 총 3차였으며 2차까지 합격했다. 3차 최종면접 때는 면접관들이 직접 내가 다니던 중학교를 방문했다. 3~4명의 입학장학관들이 내게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나는 그리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았던 기억이다. 그때 당시 나 또한 지쳐버린 상태였다. 공부가 힘든 것도 있었지만, 태풍 같던 집구석 사정으로 신경쇠약이 도진 것 같았다. 그냥 빨리 가버렸음 싶었다. 나가서 애들하고 흙바닥에서 공이나 차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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