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에게 미안하다면서요.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하던 'bj임블리'가 자살시도를 했다는 뉴스가 오늘의 키워드이다. 기사 몇 개를 읽어보니 딸을 둔 싱글맘인 듯하며 전에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했다. 레이싱모델 출신이라고 한다.
심정지가 두 번 왔으며 의식이 없는 상태라고 한다. 자살 동기에는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표면적으로는 같이 일하던 동료 bj들에게 받아야 할 수입을 정산받지 못했다는 것이 있다.
그러한 부당한 대우를 한 타 bj들을 폭로하고 난 뒤, 자살시도를 했으며 출동한 구급대원을 통해 라이브 방송은 종료되었다.
기사로 확인할 수 있는 정보는 여기까지이다.
자살. 생명체가 의도적으로 자신의 죽음을 초래하는 행위를 뜻한다.
'임블리'라는 사람이 '알베르 카뮈'나 '시지프스신화' 또는 '실존주의'를 알았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명상록' 또는 '스토이시즘'등에 대해 알았을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 대해 알았을까.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 대해 알았을까.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런 것들에 대해 알고 있었더라면, 자살까지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태어난 딸들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부조리하다고 해도 말이다.
그렇다. 나는 어떤 이유에서든 삶을 포기해 버리는 것에 대해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삶을 정리하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이다. 예컨대, 일부 유럽과 캐나다에서 이뤄지는 자발적 안락사를 이야기한다. 안락사 주체가 삶에 대한 책임을 완수한 뒤 존엄하게 떠나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남은 딸들은 뭔가.
지금의 사람들은 수많은 자극적인 디스플레이 콘텐츠들에 의해서 고장 난 뇌를 지니고 살고 있다. 유튜브에는 '쇼츠'라는 게 있다. 짧은 영상물을 말한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끝없이 손가락 스크롤을 하게 된다. 초장기에는 1분 정도의 러닝 타임을 가졌지만, 이것도 기다리기가 답답하다고 15초로 줄이고 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게 일으키는 파장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일단, 유튜브에서 이런 식으로 가니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또한 똑같은 방향으로 간다. 사람들은 어떤 하나에 집중할 수 없게끔 정신이 착란된다. 눈을 떠서 잠들기 직전까지 그렇게 된다. 이는 진득하게 즐겨야 할 모든 콘텐츠들의 패망을 가져온다. 스포츠 경기를 예로 들어보자.
요즘 구기 종목 스포츠의 관심도가 상당히 떨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야구는 아예 룰이 바뀌어버렸다. 원래는 투수가 공을 던지는 데에 시간제한이 없었으나, 12초 안에 던져야 하는 룰로 변했다. 투수들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마 어깨 손상이 더 심해질 것이다. 한 회가 금방 끝나버리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축구도 마찬가지이다. 골 하나 들어가는 거 보려고 80분을 앉아있는 게 답답하다는 것이다. 이에 3D카메라를 스타디움에 깔아서 경기 중 오프사이드라인을 실시간으로 표기해 준다던지, 선수들의 패스 길, 돌파 가능한 틈새를 실시간으로 표기해 준다던지 하는 변화를 주고 있다.
그런 것이다. 그럼에도 관심도가 자꾸 떨어져 걱정이 많다고 한다.
역동적인 스포츠 경기마저도 이러한 판국에 누가 책을 읽고 누가 작품성 있는 영화를 즐기고 누가 철학에 대해 말할 수 있겠는가. 나 같은 괴짜들이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그런 것들이 인생에 필요한 것들임에도 그러하다.
재벌부터 가난한 자들까지. 세상을 살고 있는 그 누구에게나 자기에게만 보이는 큰 고통이 있다. 누구나 산비탈에서 자기가 밀어 올리고 있는 돌덩이가 있다. 거기서 물러서지 않아야 삶은 이어진다. 삶이 이어져야 책임질 일도 책임질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행복을 좇아선 안된다. 고통에 맞서 책임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이 선이다.
선을 실천하고 살면 지금의 인생이 시궁창 같고 사정없이 고통스럽더라도, 가족과 친척 그리고 내 사람들이 나를 존경하기 시작한다. 거기서 오는 만족감이 진정한 행복이다. 그것을 명예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