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this love - Whitesnake
https://youtu.be/r_4us480K9M?si=b6MGlu1qAO4OEn4K
쾌락. 쾌락은 무엇인가.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1. 유쾌하고 즐거움. 또는 그런 느낌.
2. 감성의 만족, 욕망의 충족에서 오는 유쾌하고 즐거운 감정.
대개 '쾌락'은 부정적인 감으로 쓰인다. 이는 '욕망의 충족에서 오는 즐거운 감정'의 의미를 내포하는 경우가 지배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궁극적인 것을 잘 설명하기 위해 잠깐 엉뚱한 소리를 하겠다.
협상에 관한 기술을 담은 책들을 보면, 핵심적으로 제시하는 방법론이 있다. 다른 무엇보다도 인간의 이기심을 자극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효과가 좋기 때문이다. 이 협상을 하면 상대가 어떠한 확실한 이득을 볼 수 있는지에 대해 인지를 시키라는 것이다. 거기서 승낙이 나온다고 말한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봐도 맞는 말이다. 다른 점들은 서툴렀어도 저 핵심을 잘 해냈을 때,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다른 점들을 다 잘했더라도 저 핵심을 전달치 못했을 때에 수포로 돌아갔던 기억이 있다.
쾌락을 말하다가 갑자기 협상에 대한 원리를 말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무엇이든지 솔직한 것이 좋다. 진리나 본질에 집중할 수 있게끔 우리의 시야를 깨끗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마케팅과 입에 발린 말들, 잘못된 사회적 통념은 심안에 백내장이 걸리게 한다. 그러면 인생 방향이 빗나가게 된다. 그래서 겉보기에 건강하고 선해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엉뚱하고 텅 비어있는, 앞뒤 안 맞는 소리인 경우가 더러 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과 욕망에 의해 움직인다. 이 사실을 아주 직시해야 한다.
터놓고 보면 즐거움, 행복함, 쾌락 또는 그 어떤 표현 방법의 무언가가 있더라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쾌락'으로 귀결된다. 도파민이 나오며 신경이 활성화되고 기분이 좋다는 것이다. 쾌락에 대한 가치판단이 별 쓸모가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쾌락의 '정도'를 스스로 경험해 보고, 무엇이 진정한 큰 쾌락인지 깨닫는 것이 좋은 것이라 생각한다. 당연히 법과 규범의 범위 안에서 그래야 한다. 안 그러면 교도소 간다.
그러한 범위 안에서의 몇 가지를 예시로 들어보겠다.
맛있는 음식, 휴식, 수면, 해외여행, 술, 담배, 목표 성취 성공, 항우울제, 성적 쾌락, 사랑, 남을 돕는데에서 오는 만족감, 자동차, 명품 등
나이가 서른이 가까워오면 앞서 제시한 예시들의 대부분을 겪어보게 된다. 그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었더라도 1차원적인 쾌락은 다 경험해 본다. 예컨대 맛있는 음식, 휴식, 수면, 술, 담배, 성적 쾌락 등을 말하는 것이다. 주로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무언가 삶에서 진지하게 추구하는 바가 있어 목표를 두고 집중하는 사람들은 2차원 이상의 쾌락을 경험해 본다. 예컨대 목표 성취 성공, 사랑, 남을 돕는데에서 오는 만족감 등이다.
여기까지 도달한 사람 중, 우주가 마련해 놓은 자신의 삶을 따라 살다 보니 우연찮게 대단한 쾌락을 느껴본 소수의 사람들이 생겨난다. 나는 내가 그런 사람들 중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고통 감내와 희생으로 남의 인생을 선한 방향으로 바꿔주었을 때의 쾌락은 대단한 것이다. 나는 그것을 느껴보았다.
진정으로 이를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며, 마음으로 접할 수 있게 되면, 몸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쾌락들에서는 재미를 찾지 못하게 된다. 인간은 동물이며, 우리에게도 역치라는 것이 존재한다. 한번 임계값을 돌파하면 그 아래의 자극에서는 별 재미를 볼 수 없다.
나 또한 명품, 여행, 여자, 자동차 등의 것들에 쾌락을 느끼기는 하는 것이나, 자연스럽게 더 자극적인 것을 갈구하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만을 갈망하게 되기 때문에 모든 자원과 에너지를 하나에만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무언가 고차원적인 것들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무리를 지어 사는 것이 똑똑한 행동이다. 서로에게 이득이 되려 하며, 추구하는 방향이 유토피아적이게 되기 때문이다. 아가페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선한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의 원리는 궁극적으로 '쾌락'에 의해 작동한다. 그래서 쾌락은 부정적인 것도 긍정적인 것도 아니다. 그냥 인간 본연의 소프트웨어를 지칭하는 낱말일 뿐이다. 내식대로 표현하자면 쾌락에는 저차원적인 쾌락이 있고, 고차원적인 쾌락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내 주변에는 대체로 이러한 종류의 사람들만 있다. 그래서 어느 외지를 가더라도 몸 뉘일 방 하나 부탁할 곳은 있으며, 후한 대접을 받는다. 나 또한 누군가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면 내가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돕는다.
오늘의 글을 아주 표면적인 방식으로 정리해 보자면 이렇다.
sns에 맛집, 여행, 자동차, 명품, 노출의상, 성적인 매력을 과시하는 내용들이 많은 사람일수록 저차원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sns가 아예 없거나, sns로 돈을 벌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경우 또는 아예 그러한 것들에 무심하여 죽었는지 살아있는지 궁금해지는 사람들일수록 무언가 고차원적인 쾌락을 추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구별은 그렇게 할 수 있으며, 나와 당신은 선택을 할 수 있다.
어느 무리에 낄 것인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어떤 공동체를 추구할 것인가.
어떠한 쾌락을 맛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