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ine - John Lennon
https://youtu.be/0DNwYnJivJw?si=toSTwgUV8zYEtLWN
당신은 내일 죽습니다.
어떠한 신적인 존재가 이렇게 미리 귀뜸해준다면, 당일 밤하늘의 달을 보게된 당신의 머릿속 마음속에는 무슨 생각이 들까.
나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고, 특이한 사람이다. 보통의 사람들과는 연결점을 찾지 못해, 대화가 길을 잃는 상황이 자주 있다. 그들의 관심사와 나의 관심사는 이질적이며, 영혼의 성격도 다르다.
나는 담배를 좋아한다. 야밤에 옥상에 올라가 서울 밤하늘의 달을 보며 꽤 자주 상상하고는 한다. 내가 당장 오늘 자다가 죽는다면 지금의 나는 무슨 기분을 느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상상한다는 것은 재미삼아 해보는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해보는 것을 말한다.
'스토아 철학'. 지난 글들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내 영혼과 삶의 철학은 스토이시즘이다. 내 존재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다. 내가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하는 것이 내 존재의 목적이다. 마땅히 해야할 일은 공동체를 위한 선과 미덕을 행하는 것이며, 그를 통해 나의 영혼과 인간상이 평화로우며 명예로워야 한다. 고통스럽거나 아프거나 외롭거나 죽음 등에는 큰 관심이 없다. 나는 내 영혼과 인간상이 불완전해져버리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그것이 불완전하면 나의 평화는 깨어지기 때문이다.
매일 맡은 바 책임을 다하기위해 부지런히 산다. 매번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싸움을 또 한다. 너무나 많은 실패를 겪으며 결과에 대해 초월해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다만, 나보다 크고 쎈 상대 앞에서서 물러서지 않을 수는 있다. 내가 꾸준히 한계치를 달리고 있다면 나는 꾸준히 고통속에 있는 것이고 늘 물러서지 않는 것이 된다.
이 말은, 내 영혼과 인간상이 완전한 상태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다가 죽으면 나는 아주 평화롭게 갈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애초에 이길 수 없었던 싸움에 뛰어들었을지라도 자리를 이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죽음에 관해 생각해볼 때, 이러한 서사를 머릿속에서 펼친다.
혼란스러움 그리고 괴로움속에 살고 있는 2030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여러분들은 각자의 삶을 몰아가고 있는 철학이 있는가. 철학이라고해서 대단히 거창한 내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게 무엇인지 명명할 수 없더라도, 엇비슷하게 가슴속에 품고사는 명확한 원리가 있는지에 대해 한 명의 작가가 물음을 던져보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위한 철학을 품는 것은 내가 그토록 찾고 부르짖는 '자유'의 영역이다. 그 누구도 당신으로부터 앗아갈 수 없으며, 온전히 본인 주도하에 컨트롤 할 수 있다. 50년 전만 하더라도 이또한 박탈당한 권리였기에, 자유는 대단한 사치제라는 것을 다시금 상기해보기를 바란다.(군사독재 시절을 말한다. 철학의 철자만 잘못꺼내도 군화발에 맞아죽던 시기였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많은 시민들이 데모하다가 죽었다.)
내가 혼란에 빠져 괴로워하는 2030들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철학을 자유롭게 채택해보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가치관이라고 여기는 무언가가 있다고 항변하고는 하는데, 사실 이건 꽤 우스꽝스러운 것이다. 나를 포함한 우리 대다수 개개인은 전 인구를 지능순으로 세워놓았을 때, 꽤 꺼벙한 축에 속한다.
고대부터 전해내려오는 체계적인 내용을 수립한 인구 상위 1% 고지능자들의 철학을 채택하는 것이 여러모로 말이 된다. 이들은 주장에 이은 명확하고 논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다. 상황따라 이날 저날 변하는 주먹구구식 가치관이 아닌, 단단한 소프트웨어인 것이다.
즉슨, 때나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시시각각 변한다. 영혼의 핵심이 되는 것은 생각으로 전환되고, 육신의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종래에는 인생의 향방을 결정한다. 그렇게 중요한 것이 때나 상황에 따라 쉽게 변한다면, 방향을 상실한다. 그래서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나는 '자유'라는 이념을 최우선가치로 두고 살고 있기 때문에, 앞서 언급한 스토이시즘을 채택했다. 보통의 사람들은 이를 위한 삶의 양식을 감수하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기에, 조금 더 대중적인 철학의 예시를 구체적으로 제공해보려고 한다.
다음은 불교 경전의 대표격인 반야심경이다. 이것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써서 제공해본다.
마하반야 : 큰 지혜. 우주 법계의 티끌 하나도 놓치는 법이 없는 무한한 지혜, 완전한 깨달음.
바라밀다 : 저 언덕으로 건너간다. 괴로움에서 괴로움이 없는 세계로. 속박에서 속박이 없는 세계로. 즉, 열반의 세계로 나아간다.
자리이타 : 내가 깨달아 해탈하면 내 깨달음의 결과가 남을 이롭게 할 수 있다.
무주상보시 : 조건없이 베풀다. 무엇이든 아낌없이 다 해주면서도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지계바라밀 : 마땅히 행해야 하는 것을 행하고 행하지 말아야할 것을 행하지 않는다.
인욕바라밀 : 옳고 그른 것이 없기에 참을 것도 없다.
정진바라밀 : 부지런히 닦아 꾸준히 나아간다. 애써 노력할 것 없이 그냥 행하는 바가 그대로 닦음이 되는 경지를 뜻한다.
선정바라밀 : 번뇌가 사라져 마음이 고요한 상태. 고요하려고 애쓸 것 없이 고요함에 이른 경지를 뜻한다.
제법무아 : 아(나라는 실체)라고 할 것이 없음을 뜻한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 가세 가세 저 언덕으로 건너가세. 저 언덕으로 건너가서 깨달음을 이루세.
스토아 철학과 불교는 공통점이 있다. 인생은 덧없고 무의미하다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점이다. 이를 불교에서는 '공'이라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반야심경 내용 중 지금의 2030에게 가장 실용적일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정지바라밀'이라고 생각한다.
부지런히 닦아 꾸준히 나아간다. 애써 노력할 것 없이 그냥 행하는 바가 그대로 닦음이 되는 경지를 뜻한다.
인생은 덧없다고 하였다. 별거 아닌 것이다. '정지바라밀'은 무언가를 행해서 성과를 이루는데에 포커스를 하지 말고, 그냥 꾸준히 행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아보라는 뜻이다. 애써 노력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인욕바라밀' 또한 써봄직한 원리라고 보인다. 상대적 박탈감을 해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옳고 그른 것이 없기에 참을 것도 없다.
외제차 타고 메이커 아파트 살며 결혼하고 애도 낳고 명품 두르고 다니는게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아니다. 저러한 것들을 다 못하고 살더라도 그것이 옳은 것도 아니며 그른 것도 아니다. 어차피 인생은 무의미하고 덧없는 것이므로, 이에 대해 화를 낼 것도 참을 것도 부러워할 것도 없는 것이다.
이러한 철학을 받아들이려 노력하다보면 적어도 저런게 부럽다고, 하는 일이 잘 안된다고 술독에 빠지거나 여자에 빠지거나 폐인이 되어버리거나 자살하는 사람은 없어질 것이다.
이 글이 먼 미래의 그런 불상사를 예방할 수 있게 해주는 재료가 되어준다면, 나는 이 글에 담은 내 노력이 아깝지 않다.
나는 스토아 철학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공동체에 선과 미덕을 행하는 것이 내가 추구하는 삶의 양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