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때리는 글.

by 언더독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을 본 적 있는가. 1998년 작 '팀 로스' 주연의 영화이다.


줄거리를 요약해보자면 이렇다.


- 배경은 1800년대 말 - 1900년대 초 영국과 미국 그리고 바다이다.


- 여객선 '버지니아'호에서 태어난 이름 모를 백인 아기가 연회장 피아노 위에 버려진다. 그걸 본 흑인 기관실 선원은 아이를 거두어 배에서 키운다.


- 신원이 불분명한 신분이기에, 배에서 내리면 이민국에 잡혀갈까봐 배에서만 산다. 아이는 성장하며 피아노연주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인다. 승객들은 그의 연주에 매료된다. 소문을 듣고 온 피아노 연주 권위자와 선상 연주 배틀을 뜨기도 한다. 음반사 장사치의 접근도 있다. 선상 밴드의 트럼펫 연주자와 절친이 된다.


- 그는 27년 간 배에서만 생활하게 된다. 우연찮게 마주친 어여쁜 여자 승객에게 반해서 뉴욕에서 내려볼까 하는 고민도 했지만, 그러지 않는다.


- 배는 수명이 다하여 폐선 절차를 밟는다. 배에 대량의 다이나마이트가 실리게 된다. 나이든 트럼펫 연주자 절친은 주인공이 폭파 직전의 배의 어딘가 숨어있다는 직감을 가지고, 폭파 전에 그를 회유하여 배에서 내리게 만들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한다.


- 고초 끝에 그를 찾았고 배에서 내리자고 회유했으나, 그는 홀로 배에 남는다. 그리고 배는 해상에서 폭발되어 침몰한다.



절친이 주인공을 회유할 때의 장면이 있다. 대사를 써보자면 이렇다.


절친 : (대충 배에서 내려서 듀오 결성해서 밴드활동 해보자는 권유 내용)


주인공 : 피아노를 봐. 건반은 시작과 끝이 있지. 어느 피아노나 건반은 88개야. 그건 무섭지가 않아. 무서운 건 세상이야.


건반들로 만드는 음악은 무한하지. 그건 견딜 만해. 좋아한다구. 하지만 막 배에서 내리려고 했을 때, 수백만 개의 건반이 보였어. 너무 많아서 절대로 어떻게 해 볼 수 없을 것 같은 수백만 개의 건반...


그걸론 연주를 할 수가 없어.




영화 러닝타임 중, 내 기억에 가장 강렬히 남았던 장면은 이것이었다. 영화 끝무렵의 이 장면을 지극히 개인적인 과거 경험을 통해 해석해보려 한다.


저것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본능이라고 본다. 본능이라 함은 '익숙한 것이 편하고 좋다'라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안정이 증명된 행위를 하는게 좋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요인인 '생존본능'이다. 누가 뭘 먹고 앓다가 죽었다더라 하면 그건 안먹는 것 그리고 먹어버릇하지 않던 것들은 입에 안대려고 하는 행동이 이와 맥락이 같다.


나도 인간이다. 내게도 저러한 본능은 있다. 어쩔때는 아주 강하게 있다. 그럼에도 결과를 놓고 돌아보면, 내 주변의 진취적인 인물들이 나를 내적 골방에서 끄집어 내주었을 때, 세상의 새로운 좋은 맛들을 보았던 것이 사실이다.


인정하기 좋고 싫고가 아니라, 그저 사실인 것이다.



이렇게만 말하면 내가 주인공의 선택을 좋지 않게만 바라보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이러한 형식 자체는 나쁘게 생각치 않는다. 비록 폐쇄적인 성향이라 할지라도, 어떤 인간이 당장에 살고자하는 원초적 본능보다 더 큰 힘의 추구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다른 평범한 사람들은 소수의 그런 사람을 보며, 영혼의 자극을 느낀다. 때로는 그런 자극이 몇 명의 삶을 다른 방향으로 바꾸기도 하는 것이라 믿는다. 일종의 뮤즈가 되는 것이다.


당시는 1900년대 초반으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었다. 주인공은 폭탄이 떨어질 때도 배에서 연주만 했다고 했다. 배가 영업을 마무리하며, 그의 연주에 춤춰주는 사람들이 사라졌을 때도 그는 연주를 계속했다고 했다.

마냥 익숙하고 편안해서 했다라고 보기에는 그 정도가 너무 강한 것이다. 그는 피아노 연주를 사랑했던게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글쓰기를 사랑하는 것처럼.




여기까지는 제법 말랑한 이야기이다. 영화를 말한 것이니까. 이제 우리네 사는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는 현실에서 산다.


영화의 주인공은 고아였다는 것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그는 그의 인생 방향을 스스로 선택하는 사고과정에 있어서 죄책감을 가질 요소가 없었다는 점을 짚어야한다.


보통의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성공은 이러한 죄책감을 깨끗이 씻어내리기 위한 도구가 된다. 그래서 사람에 따라 정도에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성공을 바란다. 죄책감은 지금의 2030들이 가지는 혼란의 중추적인 감정이다. 과거 글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삶의 양식 2가지에 관해 다룬 적이 있다. 철학과 종교 예술의 힘으로 이를 와해하거나, 속세에서 확실히 성공을 해버리는 삶을 다뤘다. 두가지 모두 근본적인 해결책인 것이다.


대다수는 스님이나 철학자, 예술인이 아니기 때문에 성공을 목표로한 삶을 살아간다.


나는 글을 통해 혼란스러운 2030들에게, 그리고 혼란스러울 10대들에게 실용적인 가치를 제공해야한다.



그래서 오늘은 '성공을 목표로한 삶'에 있어 한 경제학자가 쓴 이야기를 보여드리려한다. 사람의 '기질'에 관한 이야기 이다. 어떠한 성품이 좋다 나쁘다 판단한 내용이 아니다. '성공을 목표로한 삶'을 완성한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요소를 서사한 것일 뿐이다. 그저 사실인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공을 한 사람들은 원초적이며 미개하다. 약탈하고 침략한다. 토벌을 일삼으며 잔인하다. 권모술수에 능하다. 과거에는 이러한 요소들이 물리적인 충돌로 나타나고는 했지만, 지금 시대에서는 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계선에서 이를 수행해야한다. 따라서 경제적인 필드에서 위의 행동들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개인의 성공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고, 집단 공동체의 존속 또는 유익과는 아주 무관하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요소를 '아니무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심리학자 '칼 융'이 제시한 개념이다. '여성의 무의식의 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남성적 심상'을 지칭하는 말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저러한 기질을 보유하고 있다는 학자의 표본집계가 있었다면, 성공을 원하는 삶에서 저것을 적극 채용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을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문제점이 있다. 저것은 사람의 기질에 관한 것이며, 그를 마음대로 채용하고 말고 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문제에 직면한다.


베블런은(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을 말한다.) 여기에 대해서 어떠한 주장을 펼치지는 않는다. 다만, '호전적이며 공격적인 성향을 타고난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라고 말한다. 당연히 전자가 성공하여 유한계급으로 승격될 확률이 높고, 후자는 산업기반 생산계급으로 전략할 확률이 높다고 말한다.


나는 기질이라는 것을 자기 마음대로 채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타고나야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는 호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공격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성격을 스스로 노력하여 만든 것이 아닌 것을 보면, 이러한 기질은 타고나는 것이라고 설득된다. 사주를 보아도 이 놈 성격이 더럽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먹고사는 힘든 나날들에 대해, 같은 사건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을 해석하는 것에서 남들과는 판이한 생각을 떠올리는 나의 모습을 보면, 이것은 타고나는 문제이지 노력한다고 되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가끔 그러한 해석을 아무개에게 공유하기도 하는데, 그들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내가 하는 대부분의 생각들은 표본을 보고 논리를 펼친 해석이기 때문에, 즉 내가 좋다 나쁘다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치 판단을 할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버리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한 타인들의 모습을 10년 가량 일관되게 보아왔다.


그렇다면, '호전적인 성향을 타고나지 못한 사람은 하층민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는 것인가' 라는 물음이 든다.



나는 그렇게 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기질적 문제에 대해 어떠한 해법을 제시하고 싶었다. 글쓰기를 멈추고 반나절을 고민했다. 결론을 냈다. 거기에 대한 해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래서 억지로 이것에 대한 해법이 있다는 둥의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한다.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구조적인 문제가 심각한 나라의 시민일수록 원시사회의 성향으로 회귀하게되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발전된 인간문명의 관습을 점차 속빈 강정이라 여기게 된다. 그래서 일단은 나부터 살고보자는 움짐임이 강해지고 많아지게 된다. 스스로를 지킬 힘부터 마련하려 한다는 것이다. 먼 과거에는 그것이 싸움의 실력 그리고 힘의 크기였으며, 지금은 돈이 된다.


대한민국은 구조적인 문제가 심각한 나라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나라이다. 출산률 0.78%의 어이없는 수치를 자랑한다. 이렇게 사느니 그냥 태어나지를 말라는 현 2030 세대의 심안이 번식 본능의 크기를 넘어선 것이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을 넘어선 이성발현은 이 구조적 문제가 얼마나 골때리게 되어버렸는지를 설명한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성공을 위한 삶을 살아가겠다는 선택을 했다면, 기질은 반드시 원시적이며 미개해야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성공을 할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경쟁자 또는 경쟁업체를 파괴시키기위해 최선을 다해야하고, 그들의 파이를 약탈하고 침략하기위해 법의 한계치를 달리며 해볼 수 있는 모든 권모술수를 동원해야한다.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 의해서도 그렇다고 보여진다. 그렇게 하려고 최선을 다했음에도 나는 첫 장사를 접고 있다.



인간 사이의 모든 다툼의 근본은 이권이다. 현대시대에서는 싸움 순서가 있다. 이권 이견이 생기면 처음에는 대화로 합의를 한다. 거기서 해소가 안되면 법을 통해 싸운다. 법의 효율적인 집행을 위해서 전문가를 기용하므로 비용이 든다. 그래서 경제력은 총알이 된다. 법의 판결이 나고 집행 명령까지 나와도 어느 측에서라도 해소가 안되면, 법규를 무시하고 무력 충돌에 이르게 된다. 그게 전쟁이고 범죄이다. 지금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즉, 싸움에서의 '경제력'이 가진 지위는 '전쟁' 또는 '범죄'의 바로 전 단계인 것이다. 정말로 피흘리며 사람 목숨이 날아가는 전쟁 전의 싸움이 '경제'인 것이다. 그러니 상식적으로 금융에 대해 알아야하고 돈과 시간, 인간 심리에 대해서 알아야한다. 죽고싶지 않다면, 알아야하는 것이다. 말이 좀 격한 것 같게 느껴지더라도, 논리적으로는 이러한 것이 사실이다.




늘 말하지만, 이건 내가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나도 이게 사실이 아니었으면 하고,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를 운명적으로 맞은 세대이다. 오늘 말한 글 내용을 직시할 수 있게만 되더라도 많은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된다고 자신있게 제시할 수 있다. 왜냐하면 평범한 사람들은 이것을 순수하게 직시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마음 따뜻해지는 이야기를 하면 좋겠지만, 어찌할 방도가 없다.


투자와 사업하는 29세인 나는 요즘의 한국이 무정부 상태로 느껴질 때가 많다. 그것을 코쟁이 말로 Anarchy라고 한다.






추신 : 화요일만 연재를 하려고 합니다. 사업 실패 이탈 자금을 복구하기 위해 알바에 몸을 갈아넣고 있습니다. 일마치고 집에 와서 글을 쓸 수는 있는데, 피곤한 상태로 쓴 글은 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완성도 높은 글을 제공해드리기 위해 이렇게 하려고 합니다.


늘 관심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직하게 글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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