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tance Unknown. 남은 거리를 알 수 없다는 의미이다.
남들이 알아듣기 좋도록 표현하자면, 내 목표는 부자가 되는 것이다. 남들이 알아듣기 어렵도록, 그러니까 아주 정확히 표현하자면 내 목표는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일을 그만하고 만구 놀고 먹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애당초 세상에 그러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말하는 자유인이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나는 스스로를 국가라고 생각하며, 내 영혼을 내 나라의 대통령이라고 여긴다. 나라가 힘이 없으면 자유를 잃는다. 한반도는 먼 과거, 지금의 중국 위치에 있던 많은 왕조들에 머리를 조아리고 조공을 바쳐가며 살아왔다. 가까운 과거, 일본의 점령하에 모든 것을 수탈당했다.
내가 생각하는 자유인이라는 것은 자주권을 지닌 인간을 말한다. 자주권은 자치권이라고도 표현되며,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한 국가가 외국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기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하고 처리할 수 있는 권리
모든 사람과 모든 집안에는 저마다 사연이 있다. 좋게 말해서 사연인 것이고, 사실 골칫거리라고 해야 할 것이다. 보통 가난, 구성원 간의 불화와 관련이 있다. 이러한 것들이 자신의 문제라 할 법하다. 어느 회사원이 직장의 문제를 이들보다 중히 생각할까.
산술적으로 보았을 때, 급여생활자는 가난을 면할 수 없다. 그래서 자구책을 마련해야 하고 이는 회사 몰래 하는 사업 또는 회사 몰래 하는 투자가 된다. 두 가지는 객관적으로 자구책임이 맞다. 다만, 이런 활동을 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회사는 없다. 사업을 하고자 하면 겸업금지 내규가 버티고 있을 것이며, override 하더라도 결국에는 건강보험료 변동 등으로 알아차리게 되어 있다. 투자를 막는 시스템이 따로 있지는 않지만, 좋아라 하는 곳은 없다. 업무시간에 차트 보는 아무개는 고과 빵점에 시말서 맞게 되어있다.
위와 같은 상황과 더불어, 원천징수에 아무런 저항력이 없는 급여생활자들은 그야말로 자치권을 상실당한 국가라고 볼 수 있다. 10-20년 뒤, 청년층이 극히 줄어드는 시기가 도래하면 대한민국 존속을 위해 필히 세금이 인상될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답이 안 나오니까. 정책이 변하면 자치권 상실 국가들의 곳간은 무방비 상태로 털리게 된다. 일제강점기의 조선을 기억하는가. 못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나는 나만의 자유인 개념을 따로 만들었다. 하나는 반자유인이고 다른 하나는 완전자유인이다.
반자유인은 말 그대로 반쪽자리 자유인이라는 뜻이다. 이는 용기를 가지고 급여생활을 이탈하여 자영업을 시도하고 영위하는 이들을 말한다. 생활이 가능할만한 매출을 일으키게 된 이상부터, 스스로 또는 세무사를 기용하여 절세를 시도해 볼 수 있는 물리적 조건이 생긴다. 세수에 대한 어느 정도의 자치권이 생기게 된다는 의미이다. 또한 자신이 사업의 주체이므로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고 스스로의 뜻을 펼칠 수 있다. 외세의 간섭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반쪽자리 자유인이라고 한 것에는 그들의 고객들이 철저한 갑이 되기 때문에 완전한 자유인의 역학 위치에 자리하고 있지는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완전자유인은 말 그대로 완전한 자유인이라는 뜻이다. 이는 급여생활자 또는 자영업자가 아닌 완성된 자본가를 의미한다. 고객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굴복해야 할 대상도 없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가장 강한 세금 내성을 가지고 있는 지위이기도 하다. 꽃인 것이다. 모든 시공간을 이용하여 그들을 합법적으로 왜곡시킬 수 있다. 다만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자본가가 된다고 일을 안 하고 탱자탱자 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보유한 재산과 자산을 관리하는 일을 해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억 단위의 돈이 오가는 일이며,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안전하고 보장된 길이 있는 것도 아니다. 리스크에 가장 노출이 심한 지위이기도 한 것이다. 늘 그러한 부담감 속에 살아야 한다. 돈냄새를 맡고 날아드는 똥파리 같은 악마들을 걸러내는 것도 덤이다.
한마디로, 정신적 스트레스 내성이 아주 강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한 번의 실수로 평생 쌓아온 제국이 멸망할 수도 있다.
서두에 썼던 Distance Uknown 은 그래서 쓴 것이다. 경제적 자유를 부르짖는 2030들이 참 많은데, 아는 것이 많아지고 경험들이 쌓이면서 그들의 방향은 썩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무지개를 쫒는 것과도 같은 이치라서 그렇다. 애초에 없는 것을 쫒는 것이다.
놀고먹자는 생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그러한 힘을 보유하고 유지하는 능력을 겸비하게 되었을 때, 그 힘을 어디에다 쓸 것인지 명확한 철학을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나아가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 가장 현명하지 않을까 싶다. 예컨대, 자신의 공동체를 위한 미덕을 실천하기 위한 삶을 산다던지 하는 것들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스토아 철학을 추천하는 바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나는 급여생활자를 추구하지 않으며 자영업을 시도한다. 자영업을 시도하지만, 가장 강하게 추구하는 것은 자본가 영역이며 그래서 나는 주식 투자자이다. 쉬는 날이 없으며, 그냥 사는 하루 같은 건 내 삶에 존재하지 않는다. 나에게 손해이기 때문이다.
어제는 퇴근 후 조깅을 다녀왔다. 내가 뛰는 루트에는 성당이 있다. 성모 마리아 상이 나를 인자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는데, 뛰면서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설령 신이 내 편이 아니라, 나의 적 편이라 할지라도. 그래서 내가 승리할 수 없는 싸움이라고 할지라도 절대 굴복은 하지 않겠노라고.
신이 나를 무릎 꿀린다 한들, 멈춰 세울 수는 없을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