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개인의 삶에는 특징이 있다. 세상에는 무수한 어찌할 도리 없는 영역이 있지만, 그럼에도 개인의 삶에는 스스로의 힘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한다. 건강, 돈, 가치관, 기존의 가정사 등 따위의 문제들은 모든 영역에 있어서 컨트롤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무언가 시도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리고 정말 간절하다면, 긴 세월 간 변화가 일어난다. 대부분 어떠한 간절한 마음을 지닌 이들이 인간의 완력만으로 관성을 밀어붙이게 되면, 선하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변화가 일어난다.
그렇다면, 결혼은 어떨까.
나는 여자가 아니다. 남자이다. 그래서 여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결혼은 잘 모른다. 나는 잘 모르는 것은 잘 모른다고 말한다. 정말 잘 모르고 크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고로, 남자의 입장에서는 꽤 잘 아는 것 같다. 나는 남자이기 때문이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외간 여자를 데리고 와서 먹여 살려야 한다. 20년 이상, 다른 가정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니 대부분의 머릿속 체계들이 다르다.
나는 남자를 크게 두 부류로 나눈다. 성욕을 이겨낼 수 있는 남자인지, 그렇지 않은 남자인지로 나눈다.
확률적으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까지는 성욕을 이겨내기 어렵다. 과학적인 이유로 가장 성욕이 활발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거의 짐승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나도 그랬었다. 자연히, 이 시기에 가장 여자를 많이 만나게 된다. 좋고 나쁜 다양한 여자 데이터를 쌓게 된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 되면 신체적으로 성욕이 감퇴할 확률이 높다. 20대 초반에 많은 경험을 겪은 사람일수록, 성적 쾌락 역치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욕구가 더 크게 감퇴하게 될 확률이 높다.
남자를 혐오하는 여자들끼리 하던 수다를 지나가다 흘려듣게 된 적이 있다. 아주 흥미로운 표현을 썼는데, '고추에 뇌를 지배당한 남자들'이라는 표현이었다. 혼자 지나가다 피식하고 웃었던 적이 있다. 웃었던 가장 큰 이유는 표현이 재미있었기 때문이고, 그다음 이유는 맥을 아주 정확히 짚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위의 성욕 관점에서 본 남자 이야기는 확률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남자가 성욕을 제어할 수 없는 상태에 있는 경우도 꽤 있다.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어느 정도 타협을 하는 사람이 있고, 아예 추가 극값으로 옮겨간 경우도 있다.
저들에 대한 가치 판단은 하지 않겠다.
결과적으로 현재의 나는 타협이 없는 사람이고, 더 이상 내 삶에 클럽, 술집, 데이트는 없다. 그렇게 된 지 오래되었다.
많고 많은 남자들 중, 무언가 진정 간절한 것이 있어 추구하고 있는 사람은 특징이 있다. 항상 험악한 표정을 하고 다닌다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흠칫흠칫 하고 놀라곤 한다. 말수가 적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무언가 진정 간절하다는 것은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목숨도 내놓을 수 있는 경지를 뜻한다.
이들은 빡빡하고 뼈가 굵은 용수철과도 같다. 확률적으로, 이들은 자신과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최악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던 시기가 있었을 것이다. 기본적인 의식주가 불가능하며, 폭력과 부조리에 시달렸던 그런 시기들이 있었을 확률이 대단히 높다. 극한값의 외력에 의해 찍어 눌려졌던 것이다.
용수철이 바짝 눌려지고 난 뒤, 손바닥을 떼면 번쩍하며 튀어 오른다.
영혼에 새겨진 결핍은 무한 동력이 되고 그러한 결핍을 제거하기 위해 탱크처럼 인정사정없이 전진하게 된다. 그런 진격하는 세월은 매 5년 정도마다 사람이 물리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진척도를 보이게 된다. 이런 삶을 10년 이상 보내온 사람은 수량이 많지 않다.
그리고 보통의 남자들이 있다.
보통의 남자들은 어느 정도의 육감을 믿고 결혼하는 것 같다. 이들에게는 마음의 여지가 상대적으로 있는 편이다. 여자의 아는 과거, 모르는 과거, 모든 가능성, 모든 리스크를 감내하더라도 결혼을 선택하는 것에 있어서 품을 두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보통의 남자가 아니다. 멋있어 보이려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 그렇다. 같은 남자들도 나를 보며 혀를 내두를 정도기에 나는 보통 남자는 아니다. 돈이 많고 적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과연 인간이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는가에 대한 척도로 바라보았을 때, 나는 보통의 인간이 아니다.
비슷한 사람끼리 붙어 다니는 격언이 있듯, 나는 부자들을 찾아 나서왔다. 뭐 하나라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만난 부자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었고, 서른이 된 지금의 내 모습은 그들을 닮아있다.
나는 우연을 믿지 않는다. 육감을 믿지 않는다. 나는 숫자와 데이터를 믿는다. 사실과 진리를 믿는다. 업무와 관련된 모든 것들은 각을 맞추어 엑셀화 되어있다. 그리고 내 하루는 24시간 7일 모두 업무이기에, 걸어 다니는 엑셀표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간에도 해외주식창은 번쩍번쩍 점멸하고 있으며, 모든 매매 계획은 엑셀표에 맞추어 주문 대기 중이다.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할 때는 이런 경향이 더 심했었다.
요즘은 나스닥에 지각변동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몇 분 안에 손가락질 몇 번으로 자산의 대부분을 변동시킨다는 것에는 큰 스트레스가 따른다. 그럴때에는 정수리에서 열이 나며,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게 느껴지고, 식은땀이 나기도 한다. 숫자를 확인했어도 다시 확인하고, 다시 맞춰본다.
매매를 마치고 나면, 여자고 나발이고 아무 것도 아무 사람도 보고 싶지가 않다. 그저 혼자 추운 바깥 바람에 담배나 피우고 뜨거운 샤워에 잠기고 싶을 뿐이다.
여기서부터는 만구 내 주관이기 때문에 아주 걸러 읽으시길 바란다.
만약 이 글을 읽는 사람이 미혼의 보통 여자라면, 보통의 남자와 결혼하는 것을 추천한다. 그게 더 쉽고 간편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당신을 위해 일단은 어느 정도의 물질과 안락을 제공해 줄 것이다.
만약 이 글을 읽는 사람이 미혼의 남자라면, 일정 궤도에 오르기까지는 결혼 안 하는 것을 추천한다. 이유는 여러분의 친부모, 친형제가 외간 여자보다 중요하지 않겠냐는 이유에서이다.
나는 지금 내가 지니고 있는 피 섞인 사람들에게 윤택과 안락을 제공하고 안전을 보장해 주기 위해 제국을 건설하고 있다. 내 인생의 속성은 '침묵의 수호자'이고, 아직 내가 목표하는 바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그래서 계속 간다.
만약, 나 같은 별종이 어떤 여자를 아내로 맞아 결혼하게 되면 그 여자는 나의 가족이 된다. 이 결정은 나에게는 대단히 중대한 문제가 된다. 모르던 사람이 내 가족이 되었다면, 그 또한 가족이기에 나는 그 어떤 역경을 맞더라도 그녀에게 부족함 없는 제공과 안전을 보장해 줄 것이다.(At all cost.) 내가 나의 친부모, 친형제에게 그러했듯 말이다. 내가 내 스스로를 어디까지 포기할 것인가는 전혀 문제가 안된다는 것이다. 이미 나는 그러한 삶을 10년 째 살아오고 있다.
철두철미한 성격의 나는 그래서 여자를 볼 때, 예민하게 체크한다. 한마디로 여자 입장에서는 피곤하다는 것이다.
외모는 아주 안본다. 내가 여장한 것보다 나으면 그만이다. 내가 보는 것은 이 여자가 내 아이의 엄마가 되기에 적합한 사람인지, 가정의 분위기를 정갈하게 유지하는데 적합한 사람인지, 경제관념이 일정 이상으로 있는 사람인지, 배신하지 않는 사람일지를 본다.
이 내용이 납득이 된다면, 내 글을 계속 보았을 때 이득이 될 것이다.
이 내용이 납득이 안된다면, 내 글을 계속 안보는게 정신 건강에 좋다. 다른 작가도 많다.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