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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에서 레몬 씹어먹기

by 언더독 May 1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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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저녁과 새벽, 이태원의 한 클럽에서 몇 시간을 보냈다. 놀고 싶거나 여자를 데리고 나와야겠다는 생각으로 간 것이 아니었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어제는 유난히 머릿속에서 잡생각이 많이 떠올랐다. 옷깃이 파르르 떨릴 만큼의 무식하게 소리가 큰 스피커 앞에 앉아 잠시 술에 취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쳐서 자폭하기 전에 말이다. (간 김에 주류와 테이블 객단가도 살펴보고, 상권도 볼 겸. 나는 어딜 가던지 업장들이 어떻게 돈 버는지 염탐하는 습관이 있다.)


이태원은 그래도 연령대가 좀 있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문란하지 않았다. 20대 초에 클럽을 갔을 때는 안에서 흡연도 아무렇게나 하고 자리에서 냅다 혀를 섞는 남녀들도 많이 있었는데, 여기는 그런 게 보이지 않았다. 가드들도 험상궂지 않고 친절했다. 내가 예의 바르게 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브런치 글 이미지 1


오래 있지는 않았다. 두세 시간 동안 무리와 떨어져 혼자 구석의 전면 유리창 앞에 서있었다. 밖에 다니는 수많은 인파들을 보며 잭다니엘, 하이네켄, 코로나를 홀짝였다. 피곤할 때마다 병에 끼워준 레몬을 씹으면서 한참을 깊은 생각에 빠져있었다.  


마지막 담배를 태우고 술이 좀 깬다 싶을 때, 얌전히 집으로 돌아왔다. 씻지도 않고 새벽 3시 정도에 잠이 들었다. 일어나서 격한 샤워 한판 후 커피에 샌드위치 먹고 볕 좀 쐬다가 다시 글을 잡는다. 오늘 햇살이 좋다.




클럽에서 혼자 담배물고 죽끓일 동안에도, 내 글을 사람들이 많이 보아주었다. 구독자도 늘고.


직전 글 제목이 '빡센 글'이었다. 친절하지 않고 빡센 글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봐주는 것에 있어서 갸우뚱하기도 한다. 감사한 일이기도 하다.


잘 되고 있는 것 같다. 계속 해야겠다.


내가 클럽에서 줄담배를 태우며 했던 생각들은 다음과 같다.


- 정말로 보통 사람들과 보통의 대화가 어렵다. 그들이 하는 말들을 좋은 얼굴을 하고 잘 들어주는 척을 할 뿐이다. 괜히 사람들 기분을 상하게 만들기 싫으니까. 나는 말이 거의 없다. 내가 보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는 게 강하게 느껴진다.


- 성욕이 거의 사라진 것 같다. 여자들이 치마를 빤스까지 올려 입고 내 앞에서 궁둥이를 살랑거리는데도 이제는 진실로 큰 감흥이 없다. 담배 연기를 편하게 뱉을 수 있게, 너무 가까이 오지는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 확실히 술을 마시고 클럽 스피커 앞에 앉아 있으면, 잡생각이 많이 준다. 그러나 두세 시간이 한계이다. 결국 당면한 문제를 최대한 빨리 돌파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음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 남녀들이 이렇게 많고, 술담배를 끌어마시고 있으니 누군가는 떼돈을 벌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여기 있는 클럽들이 IPO를 한다면, 몇 주를 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남자 여자들은 꾸준히 찾아올 것이니까. 쾌락, 중독, 폭력, 성을 기반으로 한 소비산업은 인류 역사상 언제나 흑자였다. 그래서 지금도 있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안다는 것은 축복이자 저주이다.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 집중하는 것이기에 자기 파괴적인 행위를 안 하게 된다. 인간은 목표를 잃으면 표류하게 되어있다. 표류하는 것에 건강한 것은 없다. 스스로를 파괴하는 행위를 한다. 그런 점에 있어서 이것은 축복이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뭔가를 위해 끊임없이 생산활동을 펼치고 있더라도, 매사 자신의 퍼포먼스에 불만족하게 되는 것이다. 더 할 수 있는 것은 없는지, 더 잘할 수 있는 것은 없는지 지속적으로 자학을 하게 된다. 그래서 영구적인 스트레스가 수반된다. 그런 점에 있어서 이것은 저주이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그럼에도 자신이 뭘 원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것은 위를 보며 가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는 아래를 보며 가는 것이다. 기왕 몸과 정신을 베릴 것이라면, 별을 겨냥하는 게 낫다. 하수구가 아니라.


늘 말한다. 어떤 방향, 어떤 성격의 삶을 살더라도 고통은 피할 수 없다는 점을.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내 곡괭이질은 멈추지 않는다.


술이 다 깬 것 같다. 날도 좋은데 오늘은 글 그만 쓰고 한강으로 나가 달리기를 하고 와야겠다. 담배를 많이 피워서 혈관 청소를 해야겠다.



이태원 프리덤 - UV

https://www.youtube.com/watch?v=RCQl7ZS0K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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