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저녁에 세상을 바꾸는 시간(세바시)에 나온 브런치 작가를 보았다. 아이 엄마인 작가였다. 육아와 여성의 심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나도 저런 곳에 나가보고 싶다. 나가보고 싶은 이유는 다른 작가들보다 훨씬 생산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그런 생각이 든다. 저러한 프로그램 섭외팀에서는 나를 섭외하기가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왜냐하면 나는 주류의 주장을 하는 사람이 아니기도 하고, 대부분의 메시지들이 강력하기 때문이다. 섭외팀 입장에서는 논란이 일까 싶은 노파심이 들 것이다. 사람들이 놀라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나가고 싶은 이유는 기왕에 작가 타이틀 단 거, 갈수록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잘 되어야 흙수저 후발주자들이 올바른 경로로 발전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올바른'은 세상 순리를 아주 직시하여, 그에 맞는 공략법대로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내가 꺼림칙하게 느끼는 것은 그 순리라는 것이 여러 가지 잘못된 클리셰로 가려져 있거나 왜곡된 채로 있다는 점이다. 클리셰는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기 마련이고, 그것이 왜곡되었다면 잘못된 세뇌가 된다.
그러면 인생이 배배 꼬인다.
나를 섭외할 만큼, 배짱 좋은 누군가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우리 개개인은 연방준비위원회가 아니다. 조폐공사도 아니다. 중앙은행도 아니다. 그래서 화폐를 찍어낼 수가 없다. 우리가 일차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돈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것에 몰두한다.
나는 핀트를 옮겨야 한다고 본다. 그것에 몰두하기보다는 그렇게 가져온 돈으로 어떻게 자산을 보유하며 관리할 것인지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거야 하루 종일 떠들 수 있다.
인간은 평생 노동을 할 수 없다. 망가지기 때문이다. 부자들 중, 자산을 보유하지 않은 개인을 본 적 있는가. 그게 왜 그런 것 같은가. 그것은 자본주의 게임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최선책이기 때문이다.
근면성실하고 맡은 바 책임을 다하라는 클리셰는 완전히 잘못된 말은 아니지만, 이 말만 듣고 남의 회사, 남의 사장을 위해 노동에만 전념하면 어떻게 되나. 결과는 여러분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내가 설명할 필요도 없다.
나는 이걸 직시하는 사람이며, 대부분은 직시하지 않는다. 직시한다는 뜻은 늘 염려하고 늘 불안해하며 늘 걱정하고 수시로 찝찝해하며 어떠한 대책을 마련하고 계획을 실행하며 상시로 점검한다는 의미이다. 남이 아닌 나를 위해 하는 일을 잠시라도 하고 있지 않으면, 혼자서 계속 괴로워한다는 의미이다.
자산은 종류가 다양하다. 그리고 유의미한 사이즈의 자산을 보유하기 위해서는 목돈이 필요하다. 가장 초기 목돈을 만드는 방법은 다른 이들로부터 가져온 돈을 모으는 수 밖에는 없다. 시간이 많이 든다.
자산은 인생에 있어서 일찍 보유할수록 유리해진다. 늦게 보유할수록 불리해진다. 복리 때문에 그렇다.
노동 소득은 절대로 자본 소득을 따라잡지 못한다. 숫자가 그렇다.
5060 세대의 한국이 아닌, 현시점 2030 세대의 한국은 사면초가의 상태이다. 인플레이션은 매해 8%로 발생하고 있다. 고금리라고 엉엉 우는 지금에도 은행 이자는고작 3-4%이다. 여러분의 은행 예금 가치는 지금도 부지런히 후퇴하고 있다. 한국은 10년 후면 세금도 40% 이상으로 인상될 것이다. 지금의 5060을 부양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머릿수가 현저히 딸리기 때문에, 사실 얼마나 치솟을지도 솔직히 모르겠다.
내가 작가가 되가지고 허접하게 신세 한탄이나 하려고 이걸 쓰는 것이 아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상은 회전하며, 우리에게는 이 부조리를 극복하는 것 말고는 차선책이 없다. 포탄이 빗발치는 한국 전쟁 중에도 남녀는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은 태어났으며, 부모들은 처절하게 그들을 먹여 살렸다는 점을 상기하라.
위 내용은 우리 2030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노후 준비가 된 부모를 둔 소수의 행운아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2030들은 꽃피워보기도 전에 주저앉고 싶지 않으면, 궁둥이에 인두가 지져진 경주마처럼 부리나케 달려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기 위함이다.
대기만성은 도덕성과 책임감이 완전히 결여된, 악마 같은 속삭임이다. 우리에게 여유는 사치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여러분은 가정을 이루고 싶지 않는가. 예쁜 마누라와 사랑스러운 2세들을 품에 안고 싶지 않은가. 그것을 할 수 있게 만드는 목소리를 내는 자가 진정 책임감 있고 선한 사람이라고 믿는다.(분개할 필요가 있다. 쥐고 태어난게 없다고 해서, 우리가 수세기 이어져온 인류의 기본적인 생리를 못하게 된다는게 얼마나 열이 받치는 일인가.)
수차례 언급했다. 금융공학적으로 자산이 있는 사람에게는 시간이 우방이다. 금융공학적으로 자산이 없는 사람에게는 시간이 적군이다. 성공은 천천히 하는 것이 아니다. 목숨을 걸고 최대한 서둘러야 하는 것이다. 현시대 우리에게는 그렇다.(지금의 5060세대가 청년기 때는 은행 예금 이자율이 일단은 10% 이상을 먹고 시작했다. 타국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세계 유래없는 경제 급성장기였기 때문이다. 80년대 2금융권에서는 27%까지 주는 곳도 있었다. 우리는 그 판떼기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점을 시급히 알아야한다.)
그리고 나는 그런 걸 하는 작가이다. 내가 노력을 했다기보다는, 나는 원래 그렇게 생겨 먹은 사람이다. 나는 동그란 걸 보면 동그랗다고 말하며, 뾰족한 것을 보면 뾰족하다고 한다.
나는 이 글이 가난한 10대들에 꼭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14년 전의 내가 그랬듯, 그 아이들 또한 앞길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범죄에 가담하지 말며 자살을 택하지 말라. 나의 글을 보고 강인하게 진격했으면 한다. (강인해야만 한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 것이다.)
확률은 낮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내가 산 증인이다. 앞으로 더 확실한 증인이 될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