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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더독 Jun 16. 2024

아빠를 위해 한 곡 불러줄래?

16일 오후 10시 기준, 총회 잔여 좌석은 1개 남았다. 강의실을 좀 더 큰 곳으로 대여할 걸 그랬다. 후발로 오는 단체 손님들을 돌려보내게 될 줄은 몰랐다.


첫 총회 준비를 계기로 많은 것들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나는 앞으로 어떤 경로로 항해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 정하기 전, 심사숙고해야 한다. 심사숙고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평소에 경제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는 작가이지만, 내게는 돈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대원칙이 명확하게 잡혀 있다.


나는 내 공동체의 안전을 책임지고, 그들의 풍요를 책임지는 사람이다. 제1의 공동체는 내 피붙이들이다. 그리고 극소수의 오랜 벗들이다. 그다음으로 있는 것이 이 글을 읽어주는 구독자들이다.


나는 글 쓰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나는 스토아 철학을 기반으로 산다. 내 공동체에 미덕을 실천하는 삶을 영위함으로써, 영혼의 평화를 누려야 한다.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유일하며 최우선의 철학이다. 인간 속세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거의 없다. 


오직 두려워하는 것은 스스로가 철학적으로 불완전한 인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돈이 저 철학을 실현시키기 위해 필요한 도구임에는 논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것보다 상위가치를 훼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는 철학적으로 불완전한 인간이 된다. 


요즘 구독자 수가 늘면서 개별 컨설팅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 거절하고 있다. 이것도 동일한 맥락이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나는 내가 완벽히 책임질 수 있는 일들에만 칼을 뽑는다.(이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이고, 시간을 들여 스스로를 점검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 구독자는 나의 공동체이기도 하며, 나는 그들에게 완벽히 책임질 수 있는 일만을 할 것이다.





오늘의 글은 '외로움'에 관한 글이다. 


고통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외로움은 그중 하나이다. 큰 외로움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좋을수록, 인간의 모든 방면에서 건설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나는 남자이다. 남자는 여자를 만난다. 게이가 아니라면. 


대부분은 게이가 아니고, 나도 아니다.


내게는 가족이 있기에 그에 대한 외로움은 거의 없다. 다만, 여자를 만나지 않는 것에서 비롯한 외로움은 있다. 


역설적이게도 내가 그것을 자초하고 있다. 


이유는 책임져야 할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말에 대해서.


보통의 남자들은 70%가 수긍할 수 있다고 짐작한다. 보통의 여자들은 20%가 수긍할 수 있다고 짐작한다.


남자의 세계는, 특히나 비범한 목표를 겨냥하고 있는 남자의 세계는 보통의 여자가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것은 여자를 하대하는 것이 아니다. 남자는 남자가 잘할 있는 방면이 있고, 여자는 여자가 잘할 있는 방면이 있다. 젠더의 한계가 양쪽 성별 모두에서 나타난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비범한 목표를 겨냥한 남자의 삶은 폭풍 속에서 발가벗겨진 채  홀로 서있는 것과 같다. 별안간 무엇이 내 몸통으로 날아들지 모른다. 그것은 부러진 날카로운 나무판자가 될 수도 있고, 커다란 트럭이 될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끝이 없다는 것이다. 이 상태로 죽을 때까지 버티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성공을 하거나 부자가 되거나 또는 그 과정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그 반대급부를 견디고 있다. 문제는 계속해서 발생한다. 그리고 그것을 계속해서 방어해야 한다. 죽을 때까지 그렇게 해야 한다. 


애초에 '이제 진짜 좀 살만하다.' 싶은 때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이 점을 잘 알면서도 구태여 이 길을 걷는 사람이다. 감내하고서라도 이것을 추구할만한 명분이, 내게는 분명하다.


남자는 폭풍 속에서 오는 날서린 고통들에 대하여, 여자에게 위로를 바라는 것이 이치가 안 맞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좋고 나쁨을 떠나, 이치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스릴 이', '이를 치'


'이치'의 사전적 정의는 "사물의 정당한 조리. 또는 도리에 맞는 취지."이다. '이치가 있다.'라고 하면, 자연법칙에 부합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 말의 의미와 느낌은 이렇다.





그러니 괜히 밤에 비싼 술과 안주를 사주며 여자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괜실히 아내 또는 여자친구에게 자기를 이해해 달라는 스탠스를 취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자연법칙에는 순리가 있다.


놓으라는 것이다. 


그저 놓으라는 것이다.


그 돈으로 주식을 더 사는 게 낫다. 그 돈으로 세금 낼 준비를 하는 게 낫다. 그 에너지로 자신의 일에 매진하는 것이 더 낫다. 


그리고 이것은 아주 고통스럽다. 





언젠가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비범한 여자를 만날 수도 있다는, 그저 쉬운 말을 내게 해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인생은 그런 여자가 나타나고 말고 와는 별개이다. 


안 나타나도 나는 갈 길을 간다. 그럴 수밖에. 내게 주어진 운명이라 생각한다. 내가 스스로 불러들이는 운명이기도 하고. 


그렇기에, 불만이 없다.


눈밭을 걸어갈 때, 어지러히 걷지 말라.
오늘 내가 걸어간 길이 훗날 다른 이의 이정표가 될지어니. 
- 백범 김구 -



영화 'Money ball' - '언더독'의 최애 장면 

https://www.youtube.com/watch?v=AMgCNpMhghA


'언더독'의 2번째 원고(한글) < From Zero > : https://kmong.com/gig/58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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