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브였습니다.
결론 : 양으로 살지 사자로 살지는 당신의 선택이다. 선택의 결과는 스스로가 감내토록 되어있다.
나의 출근 시간은 오전 8시. 이른 아침부터 콧물을 찔찔 흘리며 출근한다. 백화점에서 일하고 있다. 우리 매장에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이 일하신다. 삼촌이나 이모뻘이다. 오늘 있었던 일을 꼭 쓰고 싶었다. 밤이 되었다. 내가 가장 글을 잘 쓸 수 있는 시간이다. 모든 것이 착 가라앉고 캔들 등불 속 나 혼자만이 존재할 때, 글은 술술 써내려 가진다.
원래 나와야 하는 시간보다 늘 일찍 나와 솔선수범 하시는 여사님이 계신다. 매사 열심히 하시고 이타적인 분이시다. 나도 잘 따르는 편이고 사이가 아주 좋다. 일터에 그런 사람들만 있지 않다는 건 다들 아시리라. 보통 백화점 개장 전 시간에 해야 할 일이 많아 바짝 바쁘다. 이것저것 정리하던 와중 오전 9시가 되기도 전 싸움이 났다. 다른 여사님이 이타적 여사님에게 막말을 해댔다. 나도 평소에 별로 좋아라 하지 않던 사람이었다. 다른 일 하고 있었던지라 자초지종은 모른다. 그러나 내 어머니뻘보다 몇 년 어린 어른 입에서 그런 상스러운 말을 하는 걸 보았다. 공복에 잠도 덜 깬 시간에 말이다.
다른 대장 여사님의 중재로 10분간의 싸움은 일단락되었다. 나는 이타적 여사님이 오늘도 남들보다 일찍 출근했다는 걸 안다.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얼마나 화가 날까.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없는 주머니이지만 직원 카페에서 라떼랑 쵸코빵 사서 몰래 드렸다. 구석에서 혼자 우시는 것 같아서였다.
어째 저째 오전 근무가 끝나고 점심을 먹었다. 오후 근무 시간이 되어 매장에 들어오니 이건 또 뭔가 싶었다. 한 여자 고객님이 토마스 기차 화통처럼 매니저님에게 빽 소릴 지르고 있었다. 이 일도 자초지종은 모른다. 나는 밥 먹다 왔기 때문이다. 화가 많이 나보였다. 경찰을 부른다는 윽박도 들었던 것 같다. 여러 브랜드 매장이 백화점에 입점해있고 CS를 통합 관리하는 백화점 측은 이런 문제에 있어서 상당히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 고객님은 매니저를 데리고 백화점 관리부서로 간 모양이었다. 1시간 뒤 우리 매장 사무실로 내려와 찔찔 울고 있는 매니저님을 보았다. 먼지 나게 털리고 온 모양이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이런 현상은 비단 내 일터에만 한정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노는 사람도 많았겠지만 그 사람들 놀아주려고 일한 사람도 절반은 될 것이다. 전국의 사람들 중 오늘이 영 수습이 안 되는 사람들 분명히 더 있을 거다. 적지 않게 말이다.
내년 1월에 출간할 내 첫 책 '흙수저 매뉴얼'에도, 지난 글들에서도 드러나 있다. 요지는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고통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양으로 산다면 평생 저 고통에 시달리다 삶을 마쳐야 한다. 대신 리스크를 걸고 도전해야 하는 고통은 없을 것이다. 사자로 산다면 리스크를 걸고 도전하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 성공하면 갈퀴털이 멋진 수사자로 진화한다. 실패하면 기회비용이 sunk cost가 되어버리는 고통을 겪게 된다.
이 문제에 대한 내 주관을 이야기하기 전에 인생 후반기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50대 이후의 삶이다. 양으로 산다면 직장을 나와야 하는 시기니 그 안에서 볼 아니꼬운 일들은 없게 되겠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노후로 인한 새로운 고통이 그들의 삶에 깃들게 된다. 사자로 살겠다고 칼을 뽑은 자들. 이들은 20대 30대 또는 40대에 칼을 뽑았을 수 있다. 최악의 경우는 50이 다 되도록 이렇다 할 성과를 못 본 사람들이겠다. 도전과 실패의 반복도 상당한 고통이다. 지금 내가 느끼고 있다.
나는 사자의 삶에 베팅하고 싶고 이미 베팅하고 있다. 양의 삶은 가능성이 없다. 사자의 삶은 가능성이 있다. 이것이 내 주관이다. 독자들에게 대단스럽게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MZ세대에 파이어족을 꿈꾸는 나다. 누구보다도 경제적 자유를 열망하는 내가 골을 싸매고 고민해 보았다. 그러니까 나는 2022년에 20대 후반으로 억 단위 주식투자를 하고 있다. 아무도 도와주거나 알려주지 않았다. 스스로 노예처럼 처절하게 모아서 스스로 공부했다. 스스로 투자를 시작했다. 이렇게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는 내가 바득바득 고민을 해 보았다는 것이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