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첫 진료일이 다가올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하필 평일 낮 시간이었다. 연차를 쓰지 않으면 갈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지금 팀장과의 관계는 사적이라면 사적이고 공적이라면 공적인, 어중간하게 불편한 사이였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팀장 때문에 두 명이 사직서를 내고 한 명이 팀 이동을 신청할 정도면 사람이 문제라는 건 알겠다.
그 사람은 이제 나까지 본인의 개인적인 감정으로 나를 업무 관련 대화에서 배제하기 시작한 지 벌써 수개월이 지났다. 처음엔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근데 프로젝트 관련 업무를 진행하다가 콘셉트이나 일정이 변경되었다는 이야기를 뒤늦게 전해받으면, 그만큼 당황스럽고 기분 나쁜 일이 없었다. 이럴 때 사람들은 말한다.
"그럼 말해, 앞으로 전달해 달라고."
그렇게 말해서 알겠다고 하고 상황이 해결되면 이 세상은 아름답기만 하겠지. 내가 안 해본 건 아니다. 몇 번이고 같은 일이 반복되고 나서, 후임에게 전달받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생각에 조심스레 말했다.
"팀장님, 혹시 00건 일정이 변경되었는데 전달을 받지 못했습니다. 일정 관련된 건 단체 메신저로 전달해 주실 수 있을까요?"
"네? 00 씨가 말 안 해요? 안 되겠네. 근데 별건 아니라서 괜찮아요. 다음엔 말씀드릴게요."
다음엔, 다음엔. 그다음엔 이 몇 번째인지 이제 세는 것도 지쳤다. 당신이 바꿀 때마다 나는 처음부터 다시 했고, 그게 몇 번이 반복됐는지 본인은 알기나 할까.
차라리 대놓고 이 프로젝트에서 빠지라고 말해줬으면 나았을 것이다. 그랬으면 적어도 이유라도 알았을 테니까. 그것조차 못 하면서 웃으며 다음엔 이라고 말하는 사람한테, 진짜 꿀밤 한 대 딱 때리고 나도 퇴사하고 싶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무것도 몰랐다는 듯 말하는 그 뻔뻔한 얼굴이 너무 역겨웠다. 당신이 일부러 아무것도 모르는 후임한테만 말한다는 거, 팀원들 다 아는데 본인만 모르는가 보다.
이유가 뭔지는 정확히 모른다. 내가 뭔가 잘못 건드렸을 수도 있고, 내가 어울리는 사람이 마음에 안 들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처음부터 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진짜 이유는 본인만 알겠지. 어쩌면 본인도 모를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저렇게 역겹게 굴지 말고 제대로 말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는데. 요즘 그 유명하다는 회피형인지, 애써 모른 척 면담을 포함한 모든 소통을 차단해 버렸다. 팀원들과의 개인 면담을 진행하지 않은 지도 오래됐다.
그 팀장에게 한숨을 한 번 쉬고, 메신저를 열었다.
"팀장님, 검사받아야 할 게 있어서 다음 주 수요일에 연차 사용이 가능할까요?"
그 어떤 때보다 팀장이 더 이상 묻지 않길 바랐다. 일부러 그 주에 마무리해야 할 일을 미리 다 끝내고, 결과물을 함께 보고하면서 메신저를 보냈다. 나 열심히 하고 있어요,라는 걸 먼저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야 그냥 넘어가줄 것 같았다.
메신저는 한동안 조용했다. 분명 읽었을 텐데. 답장은 오지 않았다.
어떤 질문이 돌아올지 무서웠다. 팀장이 납득할 만한 대답을, 내 고과에 영향이 가지 않을 만한 대답을, 바로 할 자신이 없었다. 대화방을 나가서 목록 화면만 바라봤다.
'제발 알겠습니다, 딱 한 마디만.'
싫은 사람한테 이렇게까지 바라는 내 신세가 서글펐다.
답장이 왔다.
"네 그렇게 하세요."
안도했다. 감사합니다, 빠르게 답장을 보내고 연차 기안을 올리면 끝이었다.
다시 메신저가 울렸다.
"혹시 저번에 갑자기 병원 가셨을 때와 같은 이유이신 건가요?"
큰일이었다.
사람이 아픈 게 죄는 아니다. 근데 회사에서는 어쩌면 죄에 가까울 수 있다. 정당한 돈을 주고 톱니바퀴처럼 사람을 끼워 앉혀서 열심히 굴리는 판에, 갑자기 쥐똥만 한 톱니 하나가 "저 자꾸 삐걱거려서 정비 좀 받고 올게요"를 반복한다면. 처음엔 눈에 띄지 않던 그 톱니가, 어느 순간 가장 괘씸한 톱니가 된다.
더군다나 이 회사는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인사고과를 연 2회에서 분기마다 1회로 바꿨다. 어느 톱니가 슬슬 녹슬어가는지, 더 자주 더 날카롭게 들여다보겠다는 뜻이었다.
거기다가 그 날카로운 눈의 주인이 하필 나와 사이가 좋지 않은 팀장이었다. 평소에도 나를 못 마땅하게 여기던 사람이, 병원을 이유로 연차를 쓰는 일이 반복되기 시작하니 얼마나 눈에 불을 켰을까. 아픈 것도 서러운데, 아프다는 이유로 더 미운털이 박히는 상황이었다. 이게 다 무슨 일인지.
"아, 같은 이유긴 한데 큰 건 아니고 마무리 단계입니다. 주말엔 예약이 어렵다고 해서 부득이하게 요청드렸어요."
이 정도면 흠, 하고 뒤돌아서 가주지 않을까. 희망회로를 한 바퀴 돌렸다. 다음엔 어떻게든 주말에 잡아보리다, 다짐도 했다.
"네 알겠습니다. 병가로 사용하시면 진단서 제출 부탁드립니다."
됐다. 사실 됐다는 것도 내 혼자만의 착각일 수 있다. 이미 마음속으로는 혀를 여러 번 차면서 보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연차는 개인의 자유, 그게 우리 회사의 불문율이었고, 팀장도 그걸 대놓고 깨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결재 승인은 한참 후인 퇴근 10분 전에 떨어졌다. 이유는 모르겠다. 사실 알 것도 같다.
팀장 자리 쪽을 슬쩍 쳐다봤다. 모니터에 가려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어떤 표정인지, 어떤 기분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 짐작하고 싶지도 않았다.
팀장 입장에서 보면 이상했을 것이다. 평소에 병원으로 연차를 쓴 적도 없던 사람이, 갑자기 병원을 가야겠다고 근무 중에 뛰쳐나가더니,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돌아와서 근무를 하다가 얼마 안 있다가 다시 병원을 간다는데 병명은 알 수가 없다. 이러다가 내일 당장 그만둔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삐딱선 분위기에 마스크까지. 팀장 눈엔 얼마나 수상해 보였을까.
'아, 이참에 그냥 병원 같이 다니자고 할까.'
스스로 화도 나고 불안한 마음에 혼자 기분을 풀기 위한 농담을 마음속으로 했다. 웃기지도 않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