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트로 커피
그렇게 나는
글자가 아닌 감정으로 하루를 정리해본다.
숲 속에 작은 오두막이 있다. 매일 가지는 못하지만 가게 된다면 내가 대장이 되고 상상 속의 주인공이 되는 그런 곳. 어릴적 작은 아이의 커다란 함성을 자아내게 만드는 미지의 공간은 오두막에서 시작되곤 했다.
세상은 점점 복잡해지고 새로워지지만 사는 공간은 점점 단순해지고 무미 건조해 지는거 같다. 네모난 공간 안에 사는 사람들은 조금 더 큰 네모를 갖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네모가 아닌 다른 모양의 공간을 보게 되면 입을 벌리고 그 공간을 찬양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해가 완전히 졌다. 청주의 도심을 빠져 나와 산당산성을 향해 엑셀을 밟는다. 도시는 저마다의 어둠으로 하루를 정리하고 있었다. 나는 짙어지는 어둠에 숨어 오두막을 찾는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돌로 쌓은 벽, 솥뚜껑처럼 넓고 둥근 천장, 그리고 그 안에 은은히 퍼지는 커피향. 입구에 들어서자 눈은 천장을 향했고, 마음 속으로 '와' 라는 단어를 연거푸 되뇌었다.
백제의 기운을 살짝 머금은 듯한 돌의 결, 흙의 숨결, 그리고 조심스러운 빛의 그림자들. 그곳은 딱 네모가 아니었다. 세로로 쌓인 벽돌이, 오목한 구조의 천장이 사람의 상상을 틔워주기에 충분했다.
'여기가 진짜야?'
아무렇지 않게 물음을 뱉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이곳의 영혼은 과거와 연결되어 있었다. 오래전 누군가의 손끝에서 태어난 듯한 돌난로는 조용히 온기를 품고 있었고, 굵은 실과 천으로 엮어 올려진 천정의 잔재는 그 시절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흙과 숨결, 손길과 기다림이 아직도 이 공간 한켠에 남아 있는 듯했다. 그럼에도, 이 공간은 철저히 지금이었다. 하얀 벽은 말끔하게 시간을 비워냈고, 검은 조명은 어둠 속에서도 선명한 질서를 그려냈다. 한때 연기와 나무 향으로 가득 찼을 이곳이 이젠 고요한 음악과 커피 향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현재라는 시간 속에 잠시 놓아둔 옛 시절의 모서리를 본다. 하얀 빛 안에 스며든 회색의 결, 정교하게 쌓인 돌틈 사이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들이 전해주는 무언의 목소리를 듣는다.
가만히 앉아, 잔잔한 커피잔 위로 하루를 되덮는다. 그렇게 나는 글자가 아닌 감정으로 하루를 정리해본다.